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우는가? | 자비 5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우는가?

허우성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초기 불교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자비의 가르침 중에 두 구절만 소개한다. 먼저 『숫타니파타』의 「자심경(mettā)」이다.

흡사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을 걸고 보호하듯, 모든 생명에 대해 무량의 마음 (mānasaṃaparimāṇaṃ)을 일으키시오. 또 모든 세계에 대해 높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넓은 곳로 무량의 자심을 일으키시오.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자심을 행하시오)(14950)

자심(慈心)은 비심(悲心), 희심(喜心), 사심(捨心)과 함께 사무량심인데, 사심은 세상의 모든 일을 자업자득으로 보는 평정심으로 이해하자. 이 경은 어머니가 외아들을 보호하는 자심을, 모든 생명과 모든 세계에 심리적으로 공간적으로 확산하라고 한다. 그런데 자식에 대한 애착은 우리의 마음을 흔히 좁게 만든다.

 붓다는 어느 날 발이 돌조각에 찔려 통증을 느끼며 누워 있었다. 그때 악마 파순이 와서 비웃으며 “나태하게 누워 있는가?” 하고 묻자 붓다는 “나는 누워 있으면서 모든 유정에 대해 애민(哀愍)한다(sabbabhūānukampī)”고 응수했다.(『상응부경전』,「파편경」) 이는 생명에 대해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자비 명상의 하나다.

필자는 이 글에서 달라이 라마, 간디, 틱낫한이 행한 자비행의 특성을 살펴보고, 그들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물음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달라이 라마(1935~ )의 ‘우리’

달라이 라마는 『파편경』에 나오는 붓다의 자비 명상이 산스크리트 전통 내의 ‘주고받기 명상(똥렌, )’-즉 남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대신 자신의 행복을 준다는 명상-으로 계승되었다고 하며, 이 명상법으로 자비심을 길러서 티베트인을 탄압하는 중국인에게 보낸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에 1950년 침공 이래 중국인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일찍 예불을 올리면서, 나는 모든 유정들을 위해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을 발하기 위해 마음을 집중했다. 나는 우리의 적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되새겼다”고 한다. 여기에 적대감이나 원통함은 없고 대신 인내, 사랑과 용서가 있다. 달라이 라마는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1989년)에서도, 분노나 원한을 부추기거나 테러리즘을 선동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 상을 마하트마 간디—변화를 위한 비폭력 행동의 현대 전통을 창안한 분—에 대한 찬사의 표시로 수상합니다”라 하고, 다음과 같이 마친다. “나는 억압자와 친구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해, 인간적인 이해와 사랑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데, 우리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 여기 ‘우리’에는 중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는 기후변화에 대해 전 지구적 책임이 있음을 말하면서, ‘내면 개발’에만 집중하고 ‘세상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그 자체로 이기심의 하나’임을 강조하기도 했다.(『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간디의 우주적 내셔널리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힌두교도이지만 1924년 5월 18일 뭄바이에서 붓다 탄신 기념일에 이렇게 연설했다. “붓다는 진리와 사랑의 최종적인 승리를 신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힌두교와 세상에 준 그의 무상(無上)의 선물입니다.”(『간디의 도덕·정치사상 1』)

1925년에는 형제애(Brotherhood)를 주제로 기독교인 집회에서 연설했다. 그는“우리가 만일 원수까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형제애란 하나의 조롱거리”라 하고, “나의 내셔널리즘은 우주만큼이나 광대합니다. 그 범위 안에는 저급한 동물에서부터, 지상의 모든 나라까지를 포함”한다고 했다. 이는 우주적 내셔널리즘으로 불릴 만하다.

 간디에게도 열반은 최고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열반을 소극적인 무행위가 아니라 생동적인 평화로 이해하면서 그것이 애타주의에 연결될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간디는 「별보기(Watching the heavens)」라는 아름다운 글을 남겼다. 이 글이 「소공경」의 공무변처(空無邊處)를 떠올리지만 이해하기는 더 쉽다. 간디는 육신과 우주를 구성하는 지·수·화·풍·공(空, akash)이라는 오대(五大) 중 특히 ‘공’에 주목한다.이 무한한 공간 안에 지구는 겨우 모래알과 같고, 이 모래알 위의 우리 각자는 너무 작아서 얼마나 작은지 설명할 수 없다. 무에 가까운 인간의 육신에 그래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파람아트만(최고의 자아)과 진리의 신이 거주하는 처소이기 때문이다. 간디는 삶의 필수품을 공급하는 일이 완수될 때까지 히말라야로 들어가 휴식하지 않겠다고 했다. “삶의 필수품이란 안전감, 사람에 어울리는 생활 방식, 이를테면 분수에 맞는 의복・교육・음식・주거 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간디의도덕·정치사상 3』)

간디는 우리에게 숙제도 남겼다. 1909년 런던에 잠시 체재하던 간디는 이토 히로부미가 ‘어떤 한국인’에 의해 암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짧은 글을 남겼다. 그는 비폭력의 입장에서, 칼로 일어난 일본은 결국 망하고 말 것임을 예견하며, 이토의 침략과 안중근의 가해 행위를 함께 비판했다. 이 글은 이렇게 끝난다. “여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인민의 참된 복지를 마음속 깊이 생각하는 자라면, 오직 샤타그라하(진리파지)의 길을 따라서 인민을 인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간디의 도덕·정치사상 2』) 진리의 길은 물론 비폭력과 사랑의 길이다. 안 의사의 ‘가해’ 동기가 민족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서니까, 그를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간디의 글은 서양 문명과 폭력적 제국주의, 그리고 한반도를 덮고 있는 오늘날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깊이 반성하게 한다.


틱낫한의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

틱낫한(1926~ )은 승려이자 훌륭한 시인이다. 그는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Please Call Me by My True Names」)라는 시를 지었다. 그 뒷부분만 적어본다.

    나는 작은 배로 조국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가 해적한테 겁탈 당하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 열두 살 소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해적이다./ 볼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굳어진 가슴의 해적이다.// (…)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 그러면 잠에서 깨어나/
    내 마음의 문을, 자비의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이오.//

시인은 1978년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 대표단으로 활동하던 어느 날 끔찍한 뉴스를 들었다. 해적들이 보트에 올라 어린 소녀를 겁탈했고, 소녀는 스스로 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뉴스였다. 40년이 흐른 뒤에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날 밤 슬픔, 자비심, 연민 때문에 잠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행자로서 분노와 무력감에 빠질 수 없어서, 걷기 명상과 마음챙김 호흡을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명상을 통해 그는 태국의 가난한 소년과 하나가 되고, 비슷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 수백 명의 아이들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이들은 자라서 해적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러자 분노는 사라지고, 그의 마음은 자비와 용서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며 말한다. “나는 그 소녀만이 아니라 그 해적까지도 품에 안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공(空)과 공존(interbeing)을 숙고한 열매입니다.” 그는 공과 공존의 명상으로 자비의 문을 열고 스스로 변화해서 두 사람 모두를 안았다.

 틱낫한의 시를 읽으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들어 있던 아름다운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말은 그의 반대파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겨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허공으로 영영 사라진 것인가? 많이 늦었지만 그 약속을 소환해서 반대자와 만나 협치의 길로 나가야 한다. 이 세상에 전지전능한 지도자는 없어서다.


생각해야 할 물음들

사람의 탄생과 성장에는 어버이의 자비심이 필수이지만, 거기에는 종종 애착이 따른다. 달라이 라마, 간디, 틱낫한은 이런 애착을 일찍 여의고 뭇 생명의 고통을 보고 해소하는 데 전념했다. 자비심이 커지면 우리를 울리는 대상이 더 많아진다. 우리 불교도는 자비행의 필수 조건인 신구의(身口意) 악업을 정화하는 데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가? 달라이 라마가 그러듯, 이해와 사랑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함께 건설하는 일에 성공하도록 ‘적수’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을까? 간디의 우주적 내셔널리즘을 배워 한반도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순화할 수 있을까? 삶의 필수품을 만인에게 공급하는 일이 정치·경제 제도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베트남 전쟁과 그 이후, 현대 한국 정치에서 만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 신문, 방송과 소셜 미디어에서도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라고 속삭여야하지 않을까.

신축년 새해 우리 모두 이 시구를 부적으로 삼아 분열과 갈등의 골짜기를 건너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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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思經」 『중아함경 1』, 김윤수 역주, 운주사, 2019
「小空經」 『중아함경 5』, 김윤수 역주, 운주사, 2019
『南傳大藏經』 제12권 『相應部經典』 1
『마하트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 1·2·3, 허우성 역, 나남, 2018
달라이 라마/텐진 가초, 『달라이 라마 자서전』, 심재룡 역, 정신세계사, 1990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이현 옮김, 김영사, 2013
아날라요, 『자비와 공』, 이성동・윤희조 역, 민족사, 2018
Dalai Lama, 『The Political Philosophy of the Dalai Lama Selectde Speeches and Writings』, ed. Dr. Subhash C.
Kashyap, Rupa Publications, New Delhi, 2014
Joanna Macy & Chris Johnstone, 『Active Hope』, New World Librar,y 2012
Thich Nhat Hanh, 『Please Call Me by My True Names』, Paralax Prses, 1999
Thich Nhat Hanh, 『The Art of Living: Peace and Freedom in the eHre and Now』, HarperOne, 2017


허우성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뉴욕주립대 객원교수, 일본 교토대 종교학 세미나 연구원, 미국 UC버클리대 방문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는 경희대 부설 비폭력연구소 소장, 경희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초기 불교의 역동적 심리학』, 『표정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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