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 자비 | 자비 6

 자비 6


공과 자비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공(空)이란 무엇인가

초기 불교에서 공(空)은 무아(無我)와 관련되어 설해지고 있다. 초기 경전에서는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은 모두 공하며 세계 또한 공하다고 가르친다. “세상은 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세상이 공이라고 말씀합니까?” “아난다여, 나와 나에게 속하는 것이 공이기 때문에 세상이 공이라고 한다.” 공은 (我)와 아소(我所)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은 무아를 의미한다. “계행(戒行) 을 갖춘 비구는 오취온(五取蘊)을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병든 것이고 종기와 같고, 통증이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괴멸하는 것이고, 공(空, suññato)이고, 무아(無我, anattato)라고 이치에 맞게 사유합니다.” 오취온과 관련해 공과 무아가 동등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동의어로 이해되고 있다.공은 선정과 관련해 사용되고 있다. 공삼매는 무원삼매(無願三昧)와 무상삼매(無相三昧)와 더불어 삼삼매로 초기 경전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어떤 것이 공삼매인가? 이른바 성스러운 제자는 세상은 공하다고 여실히 관찰하고,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은 ‘나’도 아니오 ‘나의 것’도 아니라고 보면, 이것을 공삼매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과 무아를 증득하는 것이 공삼매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삼매에 머물면 ‘나(我)’, ‘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하지 않게 되어 해탈에 이르게 된다. 공삼매에 의해 마음이 해탈하는 것을 공심해탈(空心解脫)이라고 부른다. “비구가 숲속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성찰합니다; ‘나와 나에게 속하는 것이 비어 있다고.’ 벗이여, 이것을 공심해탈이라고 합니다.” 오취온이 공하다는 공삼매에 의해 마음이 해탈한 것을 공심해탈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은 번뇌의 부재를 전제하고 있다. 사물이 공하다고 관찰하는 공관(空觀)은 사물에 대한 탐욕 제거와 무집착을 의미한다. 공은 청정한 마음을 낸다는 것으로 바꾸어서 표현될 수 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생겨난 마음이 바로 청정한 마음이고 이것이 바로 공이다. 초기 불교에서의 공은 단견이나 허무주의가 아니라 제거되어야 할 번뇌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삼독, 오하분결, 오욕락, 오취온 등의 번뇌는 공의 대상으로서 제거되어야 하는데 비해 오근, 오력, 칠각지,사마타, 비파사나는 성취되어야 할 선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자비란 무엇인가1)

1) 자비에 관한 글은 다음의 서적을 참조했다. 안양규, 『붓다, 자기사랑을 말하다』, 올리브그린, 2019, p6p~.895

자비라는 말은 중생의 행복을 바라는 자(慈, mettā)와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비(悲, karunā)가 결합된 복합어이다. 인도 불교에선 mettā(慈)karunā(悲)가 구분되어 사용되었지만 한자 불교 문화권에선 자비라는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어왔다. 자(慈)와 비(悲)가 중생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한다면 구분해서 엄격하게 사용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자비는 사랑이 넘치는 이타적 태도로,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비(慈悲)의 ‘자(慈)’는 팔리어(pāli)인 ‘mettā(산스크리트어 maitrī 또는 maitra)’의 한역이다. mettā는 어원적으로 ‘친구(友)’, ‘친한 자’를 뜻하는 ‘mitra(벗)’라고 하는 말에서 파생한 것으로서 추상화되어 ‘우정’, ‘우애(友愛)’를 뜻한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 발견되는 우애의 기본적 속성은 평등과 공감이다. 진정한 우정 내지 우애는 평등하면서도 이해관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존재한다. 자비(慈悲)의 비(悲)는 팔리어와산스크리트어(Sanakrit)의 ‘karunā’의 번역으로 kara(to make, to do)에서 파생된 것으로 고통을 제거하려는 행위,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남의 고통을 보고 자신도 같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지니는 공감이 바로 비다.

자비는 사무량심 중 첫째와 둘째를 이룬다. 자신을 포함한 일체중생을 향하는 사랑이 자비이다. 자비는 사무량심의 두 가지 기본 요소로 일체중생에 대해 미움도 다툼도 없는 사랑의 마음이다.

자비의 대상은 일체중생이다. 자비는 인간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계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적용되고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든 태어나게 될 것이든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안락하고 안전하고 행복하라.” 자비의 정도(程度)는 무량이다. 자비는 사무량심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자비는 무조건적으로 모성애와 연관되어 비유되고 있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보호하듯이 모든 살아 있는 존재(bhūta)에 대해서 무량한 마음(慈)을 일으켜야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다른 어떤 조건이나 계산에 근거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든 중생에게 확장해 일체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비다.


공과 자비의 상관관계

초기 불교에서 공은 무(無)를 의미하며 번뇌를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번뇌의 근본은 자아에 대한 잘못된 집착에 있다. 이러한 자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 무아다.

공은 자비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 공의 실천이 자비라고 할 수 있으며

진정한 자비행은 공, 즉 무아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아는 통속적인 ‘나[我]’라는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나’라는 개체의 독립적 실체가 있다는 거짓 인식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는 ‘나’ 아닌 무수한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나’라는 독특한 실체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그 ‘나’ 아닌 것들과의 관계성을 바로 깨닫는 것이 무아의 가르침이다.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자연에서 온 것이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모든 존재는 수많은 인연으로 존재하는데 ‘나’라는 존재도 바로 그 인연의 산물이다. 무아의 가르침은 ‘나’라는 아상(我相)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하며, 협소한 자기 인식을 벗어버리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나’를 자각하는 것이다.

 공, 즉 무아는 자타불이(自他不二)를 가르치고 있다. 자타불이란 나와 네가 둘이 아니라는 것으로, 남을 내 몸과 같이 느끼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자리(自利)의 완성이 곧 이타의 실현이 되는 것은 자타불이에 근거해서 보면 당연하다. 나와 남이 각각 별개의 존재로 단절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므로 나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이 될 수 있고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리(自利)와 이타가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호혜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입장에서 보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선후 관계 없이 동시적으로 나타나며 자리가 곧 이타이며 이타가 곧 자리이다.

자비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사랑이지 자기나 자기 가족, 자신의 종파, 혹은 자기 나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애착은 대상이 한정되어 자기나 자기 가족,자신의 종파나 자기 나라에 대한 집착이다. 자비가 애착과 구별되는 특징으로서애착에는 친소의 차별이 있다. 자신의 몸에 가까운 것, 친근한 것에 대해서는 남을 정도로 애정을 쏟지만, 자기와 먼 것, 소원한 사람들에 대해선 깊이 고려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비의 입장은 이것을 초월한다. 자비는 일체중생을 위한 것이며, 거기에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공은 자비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 공의 실천이 자비라고 할 수 있다. 자비의 실천은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관계되어 존재하며 개별성을 지닐 수 없다고 하는 공의 증득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공의 수증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무상에 대한 자각과 탐욕 등의 번뇌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진정한 자비행은 공, 즉 무아의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불교 공동체, 즉 상가는 공과 자비에 근거한 이상적인 공동체다. 상가는 오계 등 계율을 지키며 공을 자내증하며 자비를 중생에게 구현하는 모임이다. 공사상에 근거해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공동체의 삶으로 진행된다. 동고동락에는 자타분별 의식을 떠난 자타불이의 삶이 실천되고 있다.



안양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편입학해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도쿄대에서 연구했다. 서울대와 동국대 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 『불교의 생사관과 죽음 교육』 등이 있고, 『부처님의 생애』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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