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교를 보다
– 문학 속에서 ③
이수정
창원대학교 철학과 교수・대학원장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둘러보면 인간적 관심의 거의 대부분이 돈이나 지위, 업적, 명성 같은 것을 향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부귀공명이다. 여기에 우리의 행불행과 희로애락이 다 걸려 있다. 그런데 이런 건 사실 저 아득한 옛날 공자나 소크라테스의 말 속에서도 확인되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현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참 묘하다. 이런 지향이 그토록 강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관심과 지향은 그것으로 다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가치의 세계랄까 혹은 차원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문화라는 것도 있고 철학이라는 것도 있고 종교라는 것도 있다. 인간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다. 그 종교라는 것의 대표 중 하나로 불교가 있다. 이른바 지식인 혹은 학자라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불교라는 것에 대해 일가견을 피력한다. 그런 담론 자체가 한국에서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에 속한다. 불교에 대해 한마디는 해야 학자고 지식인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불교적 담론에서 과연 어느 정도나 ‘부처’를 의식하고 있을까? 불교는 애당초 ‘부처의 가르침’이건만, 이른바 현실 불교에는 부처의 가르침과 무관한 부분이 적지 않게 있다. 팔공산 갓바위에 가서 ‘우리 아들 수능 점수 잘 받아 일류대학에 붙게 해주세요’ 하고 108배를 하는 것도 그런 부류다. 그런 것이야말로 헛된 것에 대한 갈애로 고의 원인이 되며 부처가 저 초전법륜에서 가장 먼저 경계하고 배제한 내용이었다. 그래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불교의 원점으로, 즉 부처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원점에는 고집멸도라는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가 있다. ‘모든 것은 다 괴로움이다’, ‘헛된 것에 대한 갈애가 이 고의 원인이다’, ‘이 헛된 것에 대한 집착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고행이나 감각적 욕망의 추구 같은 양극단이 아닌 올바른 여덟 가지 방법으로 지혜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 것이다. 무릇 불교라면 부처 본인이 제시한 이 네 가지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기본을 우리는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34년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조선 출신의 한 일본군 학도병을 조명하는데, 그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을 다시 저 아득한 당나라로 끌고 들어간다. 소설 속에 또 한 편의 소설이 있는 흥미로운 구조다. ‘만적선사소신성불기(萬寂禪師燒身成佛記)’가 전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금릉 출신의 조기, 법명 만적이다. 그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만적은 법명이요, 속명은 기, 성은 조씨다. 금릉서 났지만 아버지가 어떤 이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 장씨는 사구(謝仇)라는 사람에게 개가를 했는데 사구에게 한 아들이 있어 이름을 신이라 했다. 나이는 기와 같은 또래로 모두가 여나믄 살씩 되었었다. 하루는 어미(장씨)가 두 아이에게 밥을 주는데 가만히 독약을 신의 밥에 감추었다. 기가 우연히 이것을 엿보게 되었는데 혼자 생각하기를 이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사씨 집의 재산을 탐냄으로써 전실 자식인 신을 없애려고 하는 짓이라 하였다. 기가 슬픈 맘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신의 밥을 제가 먹으려 할 때 어머니가 보고 크게 놀라 질색을 하며 그것을 빼앗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너의 밥이 아니다. 어째서 신의 밥을 먹느냐 했다. 신과 기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 뒤 신이 자기 집을 떠나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기가 말하기를 신이 이미 집을 나갔으니 내가 반드시 찾아 데리고 돌아오리라 하고 곧 몸을 감추어 중이 되고 이름을 만적이라 고쳤다. 처음에는 금릉에 있는 범림원에 있다가 나중은 정원사 무풍암으로 옮겨서, 거기서 해각 선사에게 법을 배웠다. 만적이 스물네 살 되던 해 봄에, 나는 본래 도(道)를 크게 깨칠 인재가 못 되니 내 몸을 이냥 공양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함과 같지 못하다 하고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데, 그때 마침 비가 쏟아졌으나 만적의 타는 몸을 적시지 못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불빛이 환하더니, 홀연히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었다. 모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크게 불은을 느끼고 모두가 제 몸의 병을 고치니 무리들이 말하기를, 이는 만적의 법력 소치라 하고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여졌다. 새전으로써 만적의 탄 몸에 금을 입히고 절하여 부처님이라 하였다. 그 뒤 금불각에 모시니 때는 당나라 중종 십육 년 성력(연호) 이 년 삼월 초하루다.
지극히 간략한 내용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명백히 불교적인 상황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고해 같은 삶이다. 조기도 사신도 기의 어미 장씨도 신의 아비 사구도 그 심중을 들여다보면 감당하기 힘든 삶의 고뇌가 있다. 특히 장씨의 욕망과 집착은 도를 넘는다. 불교의 출발점인 고성제와 집성제가 여기서 확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기를 출가로 인도한다. 그러나 출가 이후 취뢰, 운봉, 해각 밑에서의 수행도 여의치는 않다. ‘뼈를 깎고 살을 가는 정진’이라 했으니 그도 아마 나름의 8정도를 걸었을 터. 그래도 그게 곧바로 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거기에 더해 문둥병에 걸린 사신과의 재회…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신공양.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다. 여기서 약간의 소설적 한계가 있기는 하다. 소신공양이라는 것의 불교적 의미 내지 설득력이 약하다. 자신의 몸을 태우는 게 무슨 공양이 되랴. 부처님이 이걸 좋아할 턱이 없다. 오히려 아마 기겁을 할 것이다. 단, 억지로 의미를 찾자면 아예 없지는 않다. 자기의 육신을 스스로 불태움으로써 제법무아를, 오온개공을, 색즉시공을, 수상행식의 헛됨을 그는 실천으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모든 집착을 다 내려놓은 것이다. 물론 내리는 비도 타는 몸을 적시지 않았다느니, 원광이 비치었다느니, 그걸 보고 병을 고쳤다느니, 하는 것은 다 헛소리다. 법력의 소치라며 새전이 쌓였다느니 타다 남은 시체에 금을 입혀 금불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것도 부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걸로 사람들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부처의 가르침, 즉 불교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잘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의와 방편은 엄연히 다르다. 불교를 다시 본다는 것은 부처의 본의를 헤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바로 거기에 우리가 고로부터 벗어나는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고에서 멸로 향하는, 즉 ‘도(건넘)’라는 한 글자 위에 가로놓여 있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이수정 일본 도쿄대(東京大)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철학전문과정에서 석사 및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프라이브루크대 연구원을 지냈고,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창원대 철학과 교수·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향기의 인연』과 『하이데거-그의 생애와 사상』(공저), 『부처는 이렇게 말했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 도덕경의 새 번역, 새 해설』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