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만나 삶의 현장을 수행의 장으로 삼다 | 나의 불교 이야기

나의 불교 이야기


불교를 만나 삶의 현장을 

수행의 장으로 삼다


성태용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성태용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자 양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故 임창순 선생에게서 5년간 한학을 연수했다.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 교수로 있다. (사)한국철학회 회장,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우리는선우 대표를 역임했고, 『EBS』에서 ‘주역과 21세기’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과 21세기』, 『어른의 서유기』,  『오늘에 풀어보는 동양사상』(공저) 등이 있다.

나는 유학(儒學)을 전공한 사람이다. 대학교수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불교에 대한 애정과 비판의식이 있었기에 불교 언론에 꽤 자주 기고했고, 또 재가 불자 신행 단체의 대표를 맡아 오랫동안 재가 불자 운동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불교 학자인 줄로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또 부족한 식견으로 좀 분수에 넘치는 말을 할 때 스스로를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말이 있다. “저는 불교계의 무식한 도깨비입니다. 불교 학자가 아니라서 좀 무식하고, 또 불교 학자 아니니까 틀려도 좀 봐주세요!”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을 몰라본다고 하는 말을 바탕으로 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무식한 도깨비 부적 몰라본다는 말에 걸맞을 정도로 좀 겁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애교스럽게 봐줄 수 있고, 나름대로는 어떤 신념에서 나온 이야기 몇 개를 들어보겠다.

“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上求菩提 下化衆生]”란 말을 모르는 불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현실의 불교 풍토에 대한 비판의식 때문인지 이 말이 거슬렸다. ‘깨달음’은 높이 있는 고귀한 것이고 ‘중생’은 낮은 곳에 있는 것인가? 우선 고상한 깨달음을 먼저 구한 다음 중생을 교화하러 나서는 순서인가?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식한 도깨비 소리라 하면서 “아래서 깨달음을 구하고 위로 중생을 교화한다[下求菩提 上化衆生]”라는 말을 지어냈다. 우리 가까운 현실에서 깨달음을 구해야 되지 않는가? 우리 구체적인 삶이 바로 수행의 장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중생을 부처님처럼 받들면서 나가야 하지 않을까? 

“깨달음 측정기라도 만들어야겠다”라는 말과 “깨달음도 민주주의로 하자”는 말도 했다. 깨달음을 너무 절대화하고, 깨닫기 전에는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 수도 없으니 실천에 나설 수도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좀 미워서 한 말이다. 중생과 부처가, 깨달음과 번뇌가 둘이 아니라는 말을 쉽게 하면서도, 왜 우리 자신에게는 중생의 모습만을 뒤집어씌우는 것일까? 깨달음을 절대적인 것으로 높여놓고, 오직 수행에만, 그것도 삶을 떠난 수행에만 몰두하는 분들은 뭔가 수행의 지향점과 전제를 잘못 설정한 것이 아닐까? 그런 수행으로 높이 받들어지는 분들에게서 정작 우리의 삶에 절실한 참된 지혜의 빛과 자비의 실천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건 무엇을 위한 수행인가? 깨달음을 너무 권위적으로 내세우고, 우리와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의 지혜를 모아나가는 과정에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환하게 드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한 무식한 발언이다.

이렇게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에 딴지를 거는 식으로 나가서 결국 무식한 도깨비 소리를 하는 데는 전공이 철학이라는 점이 작용하는 것 같다. 철학의 근본은 남들이 느낌표(!)를 붙이는 데 물음표(?)를 붙여보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건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들이 어느 해의 과 축제 구호로 사용했던 말이다.) 그리고 불교는 무조건적인 믿음보다는 이런 물음표 붙이기를 통해 확고한 믿음에 도달하는 종교라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도 무조건 믿기 이전에 의심하는 것을 권하지 않으셨던가?

그런 물음표를 붙여나가다 보니 많은 불자가 애송하는 이산 혜연 스님의 발원문에서도 문제를 발견했다. “이 세상의 명과 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 세상 불법 지혜 무럭무럭 늘어나서”라는 구절이다. 이 세상에서는 기복을 하고, 불법 지혜는 내생에 닦는다? 이건 참으로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법 지혜를 미루는 법은 있을 수 없다. 불법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발원이란 마음에 목표를 새기는 것인데, 이런 발원을 하면 계속 불법 지혜 닦는 것을 미루는 버릇만 들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부처의 종자를 썩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성태용 거사는 재가 불자 단체 ‘우 리는선우’ 대표를 맡는 등 재가 불 자 운동을 펼쳤다(사진은 재가 불 자의 신행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왼쪽 두번째 필자 모습).

지금의 이런 생각들을 하는 나, 무식한 도깨비 소리라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도 제법 괜찮은 말들이잖아?”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 나…. 그런 내 모습에 스스로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런 나의 불교 신앙의 여정을 보면 참으로 이리저리 헤매면서 비틀거린 자취가 드러난다. 대학 시절까지 나의 불교적 삶은 치열한 선(禪) 수행에 몰입되어 있었다. 백봉 김기추 거사의 지도 아래 여름 겨울 용맹정진을 여러 차례 했는데, 두 달 가까이 눕지 않고 참선하는 장좌불와의 수행이었다. 여름에 졸음을 쫓으려 마을 가까이 있는 공동묘지에 가서 밤새워 수련하기도 했다. 그 당시의 구도심! 젊음의 열정이 모두 구도심으로 뻗쳤는지,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한 수행으로 나름 견처(見處)도 생겼던지, 선지에 대해서도 툭툭 트이는 그런 경험을 했다. 남들이 보기에도 참으로 도사 끼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나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졌다. 깨닫지 못한 것이 분명한데 뭔가 아는 척하고, 참된 수행에서 떠나 있으면서 겉멋만 풍기는,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 하나 보였다. 너무도 부끄러워 부처님께 절하고 아뢰었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저 이제 불교 모르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이런 망종의 모습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정말 10여 년 이상을 절에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또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불교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못난 내가 이 정도 사는 것도 다 부처님 덕인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조금씩 실천하며 회향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재가 불자 운동에 동참해 계속 힘을 쏟았다. 그러기에 지금 나의 불교관에는 재가 불자 운동의 기본 신념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삶의 현장을 수행의 장으로 삼는다”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몇 가지 무식한 도깨비의 소리란 것도 결국 그런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보면 되겠다. 

이런 역정이 있었기에 나의 불교적 삶의 바탕에는 젊은 시절부터 이어온 선 수행의 체험과 오랫동안 계속해온 재가 불자 운동의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약간 상반된 것 같은 이 두 요소가, 아직 완전한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그 긴장 관계가 무식한 도깨비 소리를 쏟아내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모습에서 벗어나고자 10여 년을 불교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지금도 여전히 말만 앞세운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모습 때문에 불교에서 달아날 생각은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라도 조금씩 보다 나은 모습을 찾아가는 길, 오늘보다는 조금 멋진 내일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그 길이 바로 부처 되는 길이라고 스스로 변명하고 위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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