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신경과학의 세계 4
행복한 마음과
행복한 두뇌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추구는 단순한 철학적 가치가 아니라 삶의 의미이며 인간의 기본적 권리 중 하나다. 그런데 행복이 두뇌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행복이 특정한 두뇌 상태로 정의되거나 두뇌의 활동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행복과 두뇌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신경과학의 입장에서 행복을 바라본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행복에 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대략 세 가지 종류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먼저 즐거움의 행복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즐거움의 행복이란 행복한 삶은 즐거운 삶이라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 즐거움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쾌락이다. 쾌락이란 글자 그대로 즐거운 느낌이다. 그러나 쾌락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느끼는 쾌락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감각적 쾌락(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예술적 쾌락(예를 들어 좋은 예술 작품을 즐기는 것)도 있고 영혼과 깨달음의 쾌락(예를 들어 종교적 경험의 쾌락)도 있다. 그렇지만 신경과학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 모든 쾌락은 대부분 도파민(dopamine)의 활동을 통한 심리적 각성 상태를 통해 나타난다. 도파민은 뇌세포들이 신호를 전달하고 받아들일 때 쓰이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이 도파민이 많이 생성되고 세포 주변에서 활동을 활발하게 유지하면 쾌감의 강도가 증가한다.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도 행복과 관련이 있다. 세로토닌은 마음의 안정감, 만족감과 관련된 화학물질이다. 두뇌에 세로토닌이 충분히 생성되지 않거나 순환되지 않으면 우울감이나 좌절감을 느끼기 쉽다. 뇌세포 근처에 퍼져 있는 화학물질에 우리의 행복감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두뇌는 인간의 마음과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은 두뇌의 기관이 아니라 두뇌의 활동을 돕는 화학물질이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은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사용되고 순환되고 그리고 재활용된다. 그런데 인간의 쾌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두뇌의 기관도 있다. 그것은 측좌핵(Nucleus Accumbens)이라는 기관인데 이 기관은 다양한 종류의 강한 쾌감(맛있는 음식, 좋은 음악, 중독성 약물, 도박, 쇼핑, 온라인 게임 등등)을 일으키는 데 관여한다. 우리가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면 그것은 대부분 도파민과 관련된 측좌핵의 활동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나 만족감 이상의 것일 수 있다. 행복은 즐거움과 같은 느낌이 아니라 마음과 의식의 변화된 상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깨달음이나 지혜를 통해 근심과 걱정에서 마음이 해방되어 안정을 얻는 상태가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종류의 행복이다. 궁극적 진리나 깨달음을 얻는 행복은 어떤 방식으로 두뇌와 연결될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이가 있다.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생물학을 연구한 학자였지만 티베트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된 마티외 리카르(Matthieu Ricard)다. 리카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칭호를 미디어로부터 받게 된 이유는 그가 명상을 할 때 나타나는 뇌파가 강하고 지속적인 감마파(gamma wave, 25~100Hz 영역의 상위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두뇌파)였기 때문이다. 감마파는 고도의 의식 상태에서 나타나는 뇌파로 인간의 두뇌에서 측정된 적이 거의 없는 파장이다. 이 빠른 파장은 깊은 의식의 집중 상태에서 나타나는데 깨달음이나 의식의 초월적 각성 상태를 나타내는 파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한 빠른 파장이 두뇌 활동의 다양한 파장들을 하나로 동시화(同時化, synchronization)시켜 의식을 통일적으로 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명상이 두뇌의 활동을 변화시키고 마음을 집중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감마파가 되는 강한 집중의 상태가 명상을 할 때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명상을 통한 감마파의 현상은 정신적 집중이 두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집중의 결과는 불교에서 말하는 적멸(寂滅)이나 적정(寂靜)의 고요하고 깊은 깨달음의 상태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태는 즐거움의 행복과는 다른 깊은 삼매(三昧 Samādh)와 평안의 행복이다.
행복의 세 번째 종류는 자기실현과 성취의 행복이다. 자기실현과 성취의 행복이란 자신의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고 완성하는 자기완성과 번영의 행복이다. 꾸준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고 주어진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자기실현과 성취의 행복도 두뇌의 활동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두뇌에는 배외측 전전두 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라는 두뇌의 최고 결정 기능(executive function)을 수행하는 기관이 있다. 전전두 피질(prefrontal cortex)은 두뇌에서 가장 진화된 부분으로서 인간 종에게 특별히 부여된 지적인 능력을 지원하며 두뇌의 가장 앞부분에 위치한다. 이 중에 배외측 전전두 피질은 논리적 판단, 전략적 계획, 의사 결정, 문제 해결 등등 고도의 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본능적 반응이나 습관적 행동을 넘어서서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고 순차적으로 이 계획들을 실행하는 과정은 인간이 가진 최고 수준의 복합적 인지능력을 필요로 한다. 배외측 전전두 피질은 바로 이러한 최고 결정 기능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도와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배외측 전전두 피질은 자기실현과 성취에 필수 불가결한 기능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행복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두뇌의 활동도 존재한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그의 『행복론(Conquest of Happiness)』에서 자기 몰입 현상을 행복의 최대의 적이라고 주장한다. 행복은 타인과 외부 세계와 열린 공감을 유지하고 상호 교감하면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만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은 행복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두뇌에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두뇌의 기관들이 연결된 이 복합체에는 두뇌의 가운데 부분에서 앞뒤로 길게 늘어선 피질 중앙선 구조(cortical midline structures)에 놓인 후위 대상 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과 내측 전전두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특별히 두드러진다. 이 네트워크는 마음이 특정한 연산이나 구체적 문제 해결 같은 인지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일시적 휴식 상황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특별한 주제나 내용 없이 그저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는 상황이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 영역이다. 이 연합체는 마음이 무작위적 자유연상을 하도록 하고 이것을 통해 자기 서술적 상상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 중얼거림이 러셀이 말한 자기 몰입 현상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자기 서술적 상상은 마음이 무작위적인 생각에 빠져 집중을 방해하는 경향을 띨 수 있다. 마음의 방황과 산만함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을 중단시키지 못해 나타난다는 연구 그리고 명상의 집중 상태가 이 디폴트 모드 네크워크의 활동을 약화한다는 연구는 바로 이 연합체가 생각을 분산하고 집중력을 떨어지게 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러셀의 주장처럼 행복이 자기 몰입이나 자아도취적 서술이 아니라면 또한 ‘자아’라는 실체적 대상에 집착하는 것이 (불교의 무아론에서처럼) 방황과 번민의 바탕이 된다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의 활동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눈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두뇌에는 행복과 관련해 흥미 있는 방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왼쪽 뇌는 긍정적이며 즐거운 감정과 관련이 있고, 오른쪽 뇌는 부정적이며 고통의 감정과 연결되는 뇌라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강한 감마파를 일으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 리카르의 명상은 좌측 전전두엽에서 강한 활동이 나타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명상을 할 때, 전전두 피질에서는 좌측이 우측에 비해 더 많이 활성화된다는 점이 최근 연구에서 관찰되었다. 또한 두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에서도 좌측에 놓인 기관들에 명상을 통한 활성화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연구가 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명상은 좌측 활성화와 긍정적 정서를 일으킨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좌측 긍정성이 두뇌의 모든 기관에 예외 없이 일반화될 수 있는지는 아직 확증되지 않았고 이 점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명상이 가져다주는 깨달음의 행복은 두뇌상에서 좌측 긍정성의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정서와 행복에는 좌측 (왼손 사용자는 우측) 방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두뇌를 통해서 살펴본 행복은 세 가지 종류의 행복만큼이나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성적순도 아니다. 그러나 행복은 두뇌와 연결되어 있고 일정한 방향성도 가지고 있다. 행복을 반드시 두뇌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행복은 다양한 방식으로 두뇌에 영향을 미치고 또 영향을 받는다.
석봉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Alvernia University)에서 니액 연구 교수(Neag Professor of Philosophy)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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