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
마음이 존재하는 자리는
따로 있을까?
『의식이라는 꿈』
과학자들이 드디어 인간의 DNA 구조를 해명했다는 기사를 읽고 기대감에 부풀었던 적이 있다. 막상 읽어보니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 속에 없다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과학자들의 설명하는 DNA 구조만으로는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미스터리, 즉 ‘인간은 왜 아무런 실용성이 없는 문학과 예술과 철학과 종교를 원하는가?, 인간은 왜 불가능한 이상을 꿈꾸는가?, 나는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 인간은 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작은 조각들을 찾아 헤매는가?’ 같은 내 평소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 원하는 것(영양분의 흡수, 노폐물의 배출 등등)과 우리의 ‘의식’이 원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걸까? 아무리 세포에 대한 연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해도, 우리 의식의 구조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과학의 질문(세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과 철학의 질문(의식 혹은 마음은 무엇을, 왜 원하는가)은 끝내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일까? DNA 구조를 아무리 연구해도, 우리는 베토벤 교향곡의 아름다움과 고흐의 해바라기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없다. 나의 세포 하나하나는 저마다 매우 단순한 활동을 기계처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나 ‘우리’라는 존재 자체는 꿈과 희망, 사랑과 열정, 예술과 문학과 같은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것들을 끊임없이 열망하는 걸까? 나의 의식은 끝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갈망하는데, 왜 내 세포 하나는 아름다움이나 철학이나 문학 같은 의식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순한 생물학적 운동만을 계속하는가?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몸은 정말 전혀 다른 것일까? 이런 질문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대니얼 데닛의 『의식이라는 꿈』을 만났다. 대니얼 데닛은 철학자의 문장과 과학자의 두뇌로 우리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는 철학과 과학이 힘을 합쳐 인간의 의식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고 믿는다. 과학만능주의나 철학자의 사변에 빠지지 않으면서, 대니얼 데닛은 과학과 철학의 장점 모두를 활용해 인간의 의식을 밝혀내려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생물학인 신체와 인간의 의식이 분리된 것이라고 믿었다. 과학의 원리로는 인간의 ‘깊은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대니얼 데닛은 다른 모든 과학적 대상들처럼 인간의 ‘의식’도 과학으로 밝혀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의식이 존재하는 자리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생각이 바로 ‘데카르트적 극장 모델’이다. 이 관점은 의식을 영화를 감상하듯 객석에 앉아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정신과 물질은 서로 완전히 다르며, 정신과 내적 자아가 자리하는 공간이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이다. 하지만 대니얼 데닛은 우리의 뇌에 그러한 공간이 따로 없다고 주장한다. 대니얼이 데카르트적 극장 모델에 맞서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다중 원고 모델’이다. 의식이 발생하는 자리 따위는 없다는 것. 다만 뇌의 모든 정신 활동은 감각 입력이 각각 독립적으로 처리되고, 연속적으로 편집되고 수정되고 해석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계속 편집 중인 수많은 원고가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의식’은 끝없이 계속 쓰이는 여러 개의 다중 원고처럼 살아 있는 한 끝없이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본다.
대니얼 데닛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의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란 정말 작가가 원고를 쓰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작가가 ‘글을 쓴다’고 하면 뭔가 번개처럼 섬광처럼 아이디어를 떠올려 일필휘지로 글을 쓰는 것을 연상한다. 뭔가 뇌 속에 ‘지도’가 그려져 그 지도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저절로 원고가 써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간단한 원고를 쓸 때도 고치고 또 고치고, 여러 개의 파일을 합쳐 그중에 절반 이상이 삭제되기도 하고,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다 갈아엎고 새롭게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끝없이 만들어지고 고쳐지고 통째로 수정되기도 하는 원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의식’인 것이다.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다’는 듯이 모든 세포 위에 군림하는 정해진 의식 따위는 없다. 그리하여 많은 오류와 실수가 있다 해도 결국에는 더 나은 작품으로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원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의식’이 아닐까. 끝없이 만들어지지만, 끝없이 삭제되고 고쳐지기도 하는 그런 존재. 그것이 ‘의식’이라면 우리 인간에게는 더 커다란 희망이 있지 않을까. 오늘 실수했을지라도 내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오늘 아픈 마음일지라도 내일은 괜찮아질 수 있는 마음. 슬픔과 상처조차도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나 미술이나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눈부신 영감과 끈기를 지닌 존재, 인간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