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 시 나타난 서산대사의 리더십 - 승병 활동을 중심으로 | 불교와 리더십 2

불교와 리더십 2


국가 위기 시 나타난 

서산대사의 리더십

- 승병 활동을 중심으로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장



리더십의 중요성이 대단히 실감나는 작금의 한국 현실이다. 조직은 리더에 의해 움직이고 그 리더의 행동은 조직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대 흐름에 상관없이 리더십에는 사람을 떠나게 하는 리더십과 사람을 모으는 리더십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모으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첫째, 열린 사고로 조직의 뚜렷한 비전 제시, 둘째, 현실 직시와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열정, 셋째, 신뢰와 존경받을 만한 높은 인품과 공감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리더십의 덕목은 국가 위기 시에 더욱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불교사에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뚜렷한 비전 제시와 현실 직시로 나라를 구하고 중생을 건진 분으로 추앙받는 대표적인 선승은 청허 휴정(1520~1604)이다. 오랫동안 묘향산 서쪽에 살았다고 해 묘향산인 또는 서산대사로 불리었던 휴정의 어린 시절의 이름은 운학이다. 운학은 15세에 진사시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친구들과 지리산의 화엄사, 연곡사, 칠불암 등지를 순례하다 원통암에서 부용영관(1485~1571)에게서 불법을 배우고, 숭인장로에게 출가했다. 휴정은 숭인장로의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해라”라는 가르침을 받아 용맹정진하던 중 용성(지금의 남원)의 친구를 찾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낮의 ‘닭 울음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달았다. 

휴정은 31세에 부활된 승과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그 후 중선(中選)을 거쳐 37세 때에 선교양종판사가 되었다. 또한 문정왕후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던 허응당 보우대사의 후임으로 봉은사의 주지가 되기도 했다. 한편 깨달음을 얻은 후 휴정은 끊임없이 보임(保任)을 하게 되는데, 신라 때 창건된 화개동천의 내은적암을 중수하고 ‘청허원(淸虛院)’이라는 당호를 짓고 그곳에서 주석하며 『선가귀감』 등의 저술 활동을 했던 10년이 그에게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곳은 휴정의 사상이 완성된 곳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휴정은 『삼가귀감』을 저술해 유·불·도 삼교가 모두 근원적인 마음을 구명하고 그것을 개발하는 데 역점이 있음을 부각해 대중들이 조화롭게 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와 백성을 지켜줘야 할 벼슬아치들은 정쟁을 그치지 않은 채 피난 가기에 급급했다. 묘향산에서 수행하던 서산대사는 “자비로써 도탄에 빠진 나라와 중생을 부디 구해달라”는 선조의 간절한 부름을 받았다. 비록 나라는 불교를 버렸지만 불법은 나라를 버릴 수 없음을 절감한 대사는 자신의 파계를 무릅쓰고라도 기필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대승 계율의 정신이요,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다운 길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7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승도들에게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격문을 보냈다. 늙고 병들어 싸움에 나아가지 못할 승려는 절을 지키게 하면서 나라를 구할 수 있게 부처에게 기원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의승병을 만들어 자신이 통솔해 전쟁터로 나아가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할 것을 호소했다.  

“여러분! 우리 불교에서는 살상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적이 여래의 가르침을 잊고 우리 중생을 살상하고 있으니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이 국토 안에서 살고 있는 이상 우리 모두가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나라가 있어야 불법도 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늙은 스승인 서산이 앞장서서 적진에 뛰어들어 죽음으로써 도탄에 빠진 백성과 나라의 운명을 구할 것이니, 전국 사찰에 있는 승려들은 지체 없이 주장자 대신 창검을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 보국진충(報國盡忠)하기 바랍니다.”

사문에게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시주(施主)’의 은혜를 갚는 일이다. 창칼을 들고 전쟁터에 나아가는 것은 불살생 계율에 크게 어긋난다. 더군다나 출가 사문이 취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뭇 중생을 살리기 위해 자비방편으로 한 것이니 대승 계율 정신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이것은 곧 자비 실현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이 주장자를 놓고 칼로 바꾸어 쥔 서산대사의 시대정신이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경』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사람은 칼과 활을 들고 불교 교단을 지키고 수행자를 수호해야 하느니, 이는 결코 파계가 아니니라”고 하셨다. 위국효충(爲國孝忠)을 부르짖는 감동적인 명문의 격문에 따라, 금강산 유점사의 송운 유정, 해남 대흥사의 뇌묵 처영 등 전국의 승병들이 구국을 위해 일어났다. 서산대사 자신도 평안남도 평원 법흥사에서 1,500여 명의 승병을 모았고, 제자 사명 유정도 1,0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관동 지방에서 와서 팔도도총섭의 승군과 합세해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2년 후 서산대사는 그의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공수신퇴(功遂身退), 즉 “공을 이루면 물러난다”는 순수한 호국 불교 정신과 맑고 텅 빈 그야말로 무욕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임진란 때 목숨을 내놓고 왜군과 맞서 싸운 승군의 장수들은 모두가 서산대사의 제자들이었다.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대사의 제자들은 대부분 스승을 본받아 나라에서 제수한 관직과 녹봉을 사양했다. 또한 의승병들은 일본군도 중생이기에 그들을 죽인 것을 전공으로 삼아 후세에 전공비(戰功碑)로 세우는 것은 부처님의 불살생계를 범한 불제자의 입장에서 합당하지 않다는 취지로 전공비를 세우지 않았다. 이처럼 당시 의승병들은 속세의 명리에 초월했다. 

지도자는 물질적 보상에 대해 연연하지 말고 공심으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 지도자의 유일한 보상은 봉사하는 행복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보상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가이다”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이 말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전쟁만큼의 위중한 상황은 아니지만 최근의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은 분명히 국가적 위기다. 이러한 시기에 몇 개월 후면 우리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 대통령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정치권의 대선 풍향계가 요동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국가의 상황은 심각하다. 위정자들의 내 편, 네 편의 갈라치기로 구성원들은 양분되어 있고, 공정과 정의의 가치는 무너지고 ‘내로남불’이 판을 치며, 또한 금융 위기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유능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로마 제국의 현군이며 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지혜(wisdom), 정의감(justice), 강인함(fortitude), 그리고 절제력(temperance)을 강조했다. 지도자는 명철한 지혜로 보다 나은 국가의 미래를 기획하고, 공심으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해 실천에 옮겨야 하며,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절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깨워주는 유명한 시가 서산대사의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땐(踏雪野中去) /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不須胡亂行) /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은(今日我行跡) /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遂作後人程)”라는 것이다. 참으로 리더가 얼마나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주는 주옥같은 시다. 내가 남기는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이 시를 좌우명으로 삼고 하루에 세 번씩 낭송하고 실제로 몸소 실천했으며, 1948년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으면서도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한편 고 김대중 대통령은 이 시를 휘호로 즐겨 썼으며, 또한 여러 해 전 모 방송 연말 연기대상 수상에서 어느 연기자는 이 시를 인용하면서 배우 인생 끝나는 날까지 깨끗한 눈길 함부로 걷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시대를 초월해 지도자의 올바른 덕목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준다.

요컨대 올곧고 치열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승병을 모아 나라를 지키고 자비심으로 중생을 보듬고자 했다. 그 근간은 조직의 뚜렷한 비전의 제시, 현실 직시와 구국의 열정, 신뢰와 존경받을 만한 높은 인품과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한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리더십이었다 할 수 있다.  



백원기 동국대학교 영어영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 박사)하고, 동 대학 문화예술대학원(문화재 전공)을 졸업했다.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 및 중앙도서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 겸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숲 명상시 이해와 마음치유』, 『불교설화와 마음치유』, 『선시의 이해와 마음치유』,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등이 있고, 『직관』, 『아시아의 등불』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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