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리더십 1
리더십으로서
원효의 화쟁 회통 논법
– 주도면밀(一心)과 솔선수범(無碍)의 지도자상(和會)을 보이다
고영섭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갈등을 해소하는 논법과 화법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갈등이 있다. 모두가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갈등은 내가 언제나 동일한 본성[常一性]을 가진 존재이자 언제나 주관적 본성[主宰性]을 지닌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나는 원인과 조건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독자적인 자아가 있다는 오해에 근거해 저마다 자기를 세움으로써 갈등을 일으킨다. 갈등을 해소하는 화법이자 지혜를 터득하는 화쟁 회통 논법으로 리더십의 독자적 지평을 연 한국 불교의 사상가, 분황 원효(617~686)에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도자상’으로 옮겨지는 리더십은 국가나 단체 혹은 조직 속에서 서로의 갈등을 효율적으로 통솔하면서 새로운 시야(vision)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능력이다. 리더십은 한 국가나 단체 또는 조직의 지도자나 영도자, 통솔자의 지도력이나 영도력 또는 통솔력을 일컫는다. 반면 지도력의 상대 개념인 팔로어십은 조직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지도자를 따르는 구성원의 역량을 가리킨다. 이러한 리더십과 팔로어십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현대 사회의 리더십 관점에서 볼 때 원효의 리더십은 주도면밀(一心)과 솔선수범(無碍)의 지도자상(和會)이다. 원효는 일심 사상과 화쟁 회통(和諍會通) 논법 및 무애 실천의 기호로 탁월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심은 그의 사상적 기호이고, 화쟁 회통은 그의 논리적 코드이며, 무애는 그의 실천적 핵심 키워드다. 여기서 화쟁 회통은 일심과 무애를 이어주는 매개항이다. 그를 화쟁국사(和諍國師)라고 부른 근거 또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의 제목에서 비롯되었다. ‘치밀한 사고력(주도면밀)’으로 구성한 일심의 지형과 ‘넘치는 인간미(솔선수범)’로 펼쳐낸 무애의 지평은 화쟁 회통의 ‘활달한 문장력(지도자상)’을 통해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활달한 문장력으로 펼쳐낸 화쟁 회통은 리더십으로서 어떠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원효는 그의 『십문화쟁론』을 필두로 하여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소』, 『열반경종요』와 『무량수경종요』 및 『본업경소』 등에서 화회, 즉 화쟁 회통의 방법과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원효는 인간들이 발견해낸 언어와 문자로부터 먼저 방편적인 언교들을 모아내서[先會權敎] 뒤에 실제적인 도리들로 소통시켜[後通實理]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앞서 글이 서로 다른 것을 통합하고[初通文異] 이어 뜻이 서로 같은 것을 회합하는[後會義同] 과정으로 이끌고 나아간다.
화쟁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가
원효는 『열반경종요』의 ‘열반문’에서 화쟁문(和諍門) 항목을 만들어 열반(涅槃)의 네 가지 덕에 대한 다른 쟁점을 화쟁하고, ‘불성문’에서는 회통문(會通門) 항목을 만들어 불성(佛性)에 대해 모르는 것을 서로 물어 다른 것을 회통하고 있다. 원효의 화쟁 논리와 회통 논법에서 화쟁은 회통을 성립시키는 근본 원리가 된다. 화쟁의 전제 위에서 비로소 회통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장이 다른 것을 풀어내어[解異諍]’ ‘경문을 모아내어 화쟁하고[和會文]’, 이어 ‘글월이 다른 것을 통합하여[通文異]’ ‘의지와 취향이 같은 것에 회통하는[會義同]’ 것이다. 그의 화쟁의 논리는 ‘해(解, 異諍)의 과정’과 ‘화(和, 會文)의 과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회통의 논법은 ‘통(通, 文異)의 과정’과 ‘회(會, 義同)의 과정’으로, 원효는 해(이쟁)→화(회문)의 단계 이후에 통(문이)→회(의동)의 단계처럼 화쟁(해→화)하고 회통(통→회)하는 순서로 전개하고 있다.
대개 리더십은 국가나 사회 또는 기업의 다양성과 갈등 관리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기업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구성원 개개인의 성과의 산술적 합을 넘는 조직적 역량의 발휘에 집중한다. 조직의 다양성은 조직의 역량 발휘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 중 하나다. 다양성의 여러 맥락적 측면은 성과를 예측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다양성의 효과는 흔히 ‘양날의 검’으로 비유되듯이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을 아울러 지닌다. 그리고 정보 및 의사 결정 이론을 배경으로 하는 관점에서는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의 향상 등에서 긍정적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원효의 화쟁 회통 논법은 기업의 다양성과 갈등 관리에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방편적인 언교들을 모아내서[先會權敎] 뒤에 실제적인 도리들로 소통시켜[後通實理]내야 한다. 물론 원효의 화쟁 회통 논법의 전거는 문헌을 전제로 한 해법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문헌의 전거로 이해하는 이들의 언어 문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가고 있다.
코끼리의 전체와 코끼리의 부분
원효는 전체적 진리성[眞理]과 부분적 진리성[一理]을 코끼리의 전체와 코끼리의 부분 비유를 통해 화쟁하고 회통하고 있다. 그는 진리의 보편성과 타당성을 보편적 타당성으로 기술하면서도 차이의 측면과 공통의 측면에서 각 주장들을 구분한 뒤 화쟁하고 회통한다. 원효는 저술 곳곳에서 진리와 도리와 일리를 병행하며 화쟁 회통하고 있다. ‘진리’는 보편성과 타당성을 지닌 반면, ‘도리’는 보편성에는 상응하지 않지만 타당성에는 상응할 때 사용하며, ‘일리’는 보편성보다는 일반적 타당성이 있을 때 부분적 또는 제한적 타당성을 지닌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원효는 열반과 보리(菩提)의 다른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전체적 진리성은 없지만 일반적 타당성을 지닌 ‘도리’와 부분적 또는 제한적 타당성인 ‘일리’에 입각해 각자의 주장에는 모두 도리가 있다고 전제한다.
원효는 불성에 대한 종래 여섯 법사의 설을 각기 따로 의논해 자리매김을 시킨다. 그런 뒤에 불성의 본질과 그 밖으로 나타나는 모양에 대해 마무리하며 전체를 화해시킨다. 원효는 『열반경』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비유’를 원용해 여섯 법사의 주장을 보편성과 타당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장님들이 모여서 생전 보지 못한 코끼리를 손으로 만져본 뒤 각각 자신이 만진 부위에 따라 코끼리에 대해 말한다.
코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호스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두꺼운 기둥 같다 하고, 귀를 만진 장님은 거대한 부채 같다고 한다. 이것은 각 부문에서 설명한 여섯 법사의 주장 그대로도 아니고 그 여섯 가지를 벗어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장님들이 묘사하는 코끼리의 모습이 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비유는 각자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진리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보편성과 타당성, 즉 전체적 진리성인 진리와 일반적 타당성인 도리 및 부분적 또는 제한적 타당성인 일리에 입각해 말하는 것이다. 원효는 부처가 말하는 진리는 하나의 해석에 매이지 않고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중도로 제시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오직 눈을 뜬 사람만이 코끼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중도의 보편성과 타당성, 일반적 타당성 및 부분적 타당성
원효는 『열반경종요』에 나오는 여섯 법사의 다양한 주장, 즉 ‘다른 주장의 해명’ 위에서 ‘경문을 모으는 조화’로 펼쳐가고 있다. 앞의 두 가지 ‘다양한 주장의 화해 과정’을 거쳐 뒤의 세 가지 ‘경문을 모으는 과정’으로 전개하는 화쟁의 사례는 불교의 다양한 주장을 해명하고 다시 경문을 뜻이 잘 통하도록 해석하며 조화시키는 과정으로 화쟁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다.
장님들의 코끼리에 대한 설명과 여섯 법사의 불성에 대한 설명 모두가 적중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벗어난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이처럼 불성의 본질을 밝히는 마지막 부분에서 화쟁의 논법은 비교적 자세하고 치밀하게 드러나고 있다. 원효는 이러한 화쟁의 기반 위에서 다시 회통의 활로를 열어가고 있다.
『니건자경(尼犍子經)』 「일승품(一乘品)」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불자들과 달리 외도들이 비록 서로 다른 ‘외학(外學)’의 모습을 행하고 있지만 다 같이 ‘불법’이라는 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니 건너갈 다른 다리가 없다. 외학에는 보편성과 타당성을 지닌 전체적 진리성은 없지만 일반적 타당성을 지닌 도리와 부분적 또는 제한적 타당성을 지닌 일리가 있으므로 모든 중생의 성불을 위해서는 불성에 의지하게 해야 한다고 원효는 말한다.
이처럼 원효는 인간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화쟁 회통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화쟁 회통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無所有],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남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無執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남이 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無分別]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서로가 살아온 배경의 차이를 ‘인정’하게 되면 ‘배려’하게 되고 ‘대화’하게 되고 ‘소통’하게 되고 ‘행복(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리더십으로서 화쟁 회통 논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서로의 행복(건강)한 삶으로 완성하는 지혜의 화법이다.
고영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인도불교, 한국불교)을 졸업(철학박사)했으며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 과정(동양철학, 한국철학)을 수료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울대 외래교수 및 일본 류코쿠대(龍谷大) 교환 강의,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연구학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사)한국불교학회 회장과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소장, 한국불교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원효, 한국사상의 새벽』, 『한국불학사』, 『원효탐색』, 『한국불교사탐구』, 『한국불교사궁구』(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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