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오래된 질문』 | 책 읽기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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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할 때 더욱 아름다운 사람 

『오래된 질문』



한국 사찰을 지키고 있는 스님들을 찾아가는 세계적인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 교수의 사찰 기행. 기획만 들어도 이미 가슴이 설레는 이 아름다운 만남의 주인공은 단지 유명한 스님들과 세계적인 석학만이 아니다. 사찰 기행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의기투합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며, 명상과 수행을 통해 삶의 변화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될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서울 봉은사에서부터 시작해 통도사, 실상사, 백양사 천진암을 거쳐 한반도 땅끝에 위치한 미황사까지. 방방곡곡의 유서 깊은 사찰들을 방문하며 ‘템플스테이’를 한 데니스 노블 교수와 스태프들은 촬영이 끝날 때쯤은 모두 아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되었을 것 같다. 단지 사찰을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템플스테이를 한 것이 놀라웠다. 스님들의 일과와 똑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하고, 점심 공양을 만들기 위해 채소를 함께 채집하고, 행자들과 함께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청소하고. 이 모든 것을 함께함으로써 그들은 인류의 오래된 질문,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통도사의 성파 스님, 실상사의 도법 스님, 미황사의 금강 스님과 함께하는 데니스 노블 교수의 대화와 산책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영화처럼 스펙터클하다. 특히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은 데니스 노블 교수에게 ‘맛을 통한 깨달음의 기쁨’을 전해준다. 정관 스님의 보물 1호인 장독대는 ‘진짜 장맛’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보물 창고였으며, 그 깊고 순수한 맛과 세월을 통해 더욱 짙게 발효되는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고, 숲길을 걷고,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들은 단 몇 시간 만에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어느 순간 통역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한국의 스님들과 서양에서 온 과학자’의 모습은 독자들의 가슴을 포근하게 어루만져준다. 

금강 스님의 선방생활 이야기는 특히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스무 명 정도의 스님들이 한방에서 함께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참선도 하던 시절, 무려 석 달 동안 계속된 이 강도 높은 수행 기간 동안 젊은 금강 스님은 행동이 무척 거친 한 스님을 만나게 된다. 그 스님이 저쪽에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트는 것을 발견한 뒤, 금강 스님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왜 내가 저 스님을 피했을까. 그런 경계심이 오래전부터 자신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날부터 남들보다 늦게 출가한 그 스님이, 남들보다 더 깊고 복잡한 고민을 붙들고 씨름하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멋대로 판단하며 ‘저 사람은 대하기가 힘들 거야’라고 짐작했던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자, 비로소 그 거칠어 보이는 스님이야말로 좋은 도반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스님뿐 아니라 함께 선방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스님들 하나하나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소나무만 편애하며 다른 나무들은 외면해버리던 자신의 편협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금강 스님은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소중하고 찬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별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세상 만물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우주의 신비를 체험한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개념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용감하게 논박한 데니스 노블 교수의 차별 없는 시선처럼, 유전자를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로 나누어 차별하는 인간의 마음 또한 편협한 이기심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진실에 다다를 수 있다. 명상과 수행으로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챙김 수련으로 세상을 차별 없이 바라보는 훈련을 계속하는 한, 우리 모두는 이 ‘오래된 질문’, 즉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붙들고 고행을 함께 하는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우리 모두가 멀리 있어도, 서로의 슬픔과 기쁨과 눈물과 미소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따스하고 다정한 도반이기를.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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