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건강
김종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한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만족한 안녕의 상태”다. 건강은 일차적으로 신체적 문제다. 눈에 보이는 바와 같이 몸에 병이 없다면 건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정신이 추가되었다. 정서나 마음이 신체적인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환경 역시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정신적인 것과는 다르게 독립적으로 ‘영적’이라는 개념이 포함되기도 한다.
영적 건강에 대해 영적 안녕 척도(Spiritual Well-being Scale)에서는 두 가지 특성을 측정한다. “나는 신이 나를 사랑하며, 나를 보살펴준다고 믿는다”와 “나는 내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이다”라는 문항이 있는데, 하나는 신에 대한 종교적 안녕 여부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 대한 실존적 안녕이다. 기질 및 성격 검사(The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 TCI)에서는 영성에 대해 “우주 만물과 자연을 수용하고 동일시하며 이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능력에서의 개인차”로 설명하고 있다.
영적 건강에 관해 중요한 가치는 ‘믿음’이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다. 하느님과 같은 명확한 대상이 설정되기도 하다. 그런데 종교에 따라서는 그 믿음의 대상을 특정한 것으로 두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자연, 혹은 법칙을 그 대상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대상이 한정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무엇인가가 나의 삶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또한 영적 건강이란 나와 다른 대상 간의 유대이고, 신이나 자연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 속에서 안정과 평화를 얻는 것이다. 종교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 자연 속에서 평화를 얻는 것의 저변에는 믿음이 있고, 또 그 대상을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천인상응(天人相應), 즉 자연과 인간이 서로 맞닿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자연을 닮아가는 것을 건강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영적 건강이 무엇인지에 대해 순례 길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브라질 청년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아름드리나무를 껴안고 자연과 교류하며 묵상에 빠져 있었다.
일본에서도 절을 도는 오헨로 순례 길에서 직장을 은퇴하고 혼자 걷기 여행을 떠나온 노년의 순례객을 만났다. 88개의 절을 한 달 넘게 걷는 중이었다. 순례 길에는 혼자 걷는 이들이 많은데, 순례를 통해 자신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불교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순례를 끝마치고 나면 새롭게 자신의 인생과 마주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가? 자신에 대한 실존적 믿음과 함께 ‘나와 친구’, ‘나와 자연’, 그리고 ‘나와 신’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사회 속의 인간들과 지구라는 자연 속에서 살고 있으며, 그 속에는 수많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결국 사람, 자연, 신, 그리고 우주의 보이지 않은 힘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 자연이, 신이, 그리고 우주가 존재하고, 그것에 대한 신뢰와 믿음 속에서 안정과 평화로움을 구축하고 있음을 믿는 것이다.
마음이 힘들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자신이 자연 속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고 그 가운데 일체가 됨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힘을 얻는다. 유한한 삶의 짧은 인생 속에서 영속되는 자연의 힘을 받아들인다. 자신에 한정된 것보다 훨씬 길고 넓은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을 동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영적 건강을 찾게 된다.
김종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교육연구부장, 기획진료부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며 한국명상학회 회장, 한방신경정신과학회, 신심스트레스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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