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불교는? 3
티베트 불교를 말하다
양정연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부교수(HK교수)
티베트 불교는 7세기 송챈감포 시기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이후, 왕조의 지원을 통해 승가가 형성되고 경전이 번역되는 등 국가 불교의 성격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랑다르마의 폐불(9세기 중엽) 이후 지역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을 모색하던 티베트 불교는 이전과 달리 종파 불교의 특성을 띠게 되었다.
1959년, 달라이 라마 14세(텐진 가초)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자, 인도에 망명 정부를 세우고 정치와 종교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불교계의 지도자들과 티베트인들도 인도와 네팔, 유럽 등으로 망명과 이주를 하게 되면서, 티베트 불교는 서양에서 활동하는 불교 교단 가운데 가장 큰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티베트 불교는 아비달마와 인명론은 물론 무상유가탄트라까지 광범위한 불교 사상과 수행 내용을 체계화하고 있으며, 밀교 수행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현교의 가르침을 중시한다. 특히 겔룩파에서는 계율을 강조하고 밀교 수행을 하기 전에 보리심과 이타행을 먼저 수습할 것을 요구하는 등 엄격한 수행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승원의 교육 과정에서는 율과 구사, 중관, 반야, 인명학을 필수로 배워야 하며, 약 20년간 수학한 뒤에 자격시험을 거쳐 소수만이 ‘게셰(dge bshes)’ 칭호를 얻게 된다.
티베트 불교의 종파는 시기적으로 닝마파와 카르마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소의경전에 따른 구분으로서, 10세기 이후 불교가 부흥하면서 번역된 경전들을 이전의 고역(古驛)과 구분해 신역(新譯)이라고 지칭한 것에 따른다.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 가운데 닝마파를 제외한 사캬파와 카규파, 겔룩파는 모두 카르마파로서 신역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닝마파는 8세기에 티베트에 가르침을 전했던 파드마삼바바를 개조로 한다. 교법의 체계는 토번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매장 교전(埋藏敎典)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하다. 오늘날과 같은 교의 체계는 14세기 롱첸 랍잠파 이후에 다른 종파와 논쟁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것이다. 가장 먼저 형성된 닝마파는 구승(九乘)의 교의를 특징으로 한다. 성문, 연각, 보살 등을 포함해 최종적으로 아티요가를 최고의 가르침으로 하는데, 이 최종적인 수행이 ‘궁극적인 경지’를 뜻하는 족첸이다.
카규파는 ‘구전(bk’a)으로 전승(brgyud)된 가르침’이란 뜻으로,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가르침의 전통을 중시한다. 4대 지파와 8대 소파로 나뉠 정도로 분파가 많으며, 티베트 불교의 특징인 활불의 전통이 가장 먼저 이뤄진 종파이기도 하다. 카규파는 11세기, 샹파 카규파와 닥포 카규파 두 계통으로 나뉜다. 샹파 카규파는 큥포 날조르파를 개조로 하고, 닥포 카규파는 마르파와 밀라레파를 이어 감포파에 이르러 크게 성장했다. 카규파의 주요 교의는 나로6법과 대수인법으로 이것을 방편도와 해탈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캬파는 쾬 꾄촉 걜포가 1073년에 짱 지역에 사캬 사원을 건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캬파의 교의인 도과법은 보리도(lam, 道)와 그 결과(’bras, 果)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현교와 밀교의 가르침을 모두 포함한다. 용수의 중관사상과 미륵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현교의 가르침, 그리고 공성과 정광명의 합일을 수행하는 밀교의 가르침을 통해 궁극적으로 불과를 얻는 수행을 한다.
겔룩파는 역사적으로 가장 늦게 개창되었지만, 승려수와 신도수가 가장 많으며 현재의 달라이 라마 14세도 겔룩파에 속한다. 총카파(1357~1419)를 개조로 하며 본산은 간덴 사원이다. 겔룩파는 인도 불교의 여러 전통의 성과를 축적하고 현교와 밀교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람림을 수행의 전통으로 하며, 중관파 가운데서도 귀류논증(歸謬論證)의 견해를 궁극적인 것으로 하고 있다. 간덴 사원과 함께 세라, 데풍 사원은 3,300명, 5,500명, 7,700명의 출가승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겔룩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다람살라에 망명 정부가 세워지면서 각 종파의 주요 사원들도 인도의 각 지역을 중심으로 중건되었다. 겔룩파의 간덴 사원과 세라, 데풍 사원은 인도 남서부에 위치한 카르나타카 지역에 중건되었고, 닝마파의 민죌링과 카류 계통의 지궁 카규파의 쟝춥링, 사캬 사원과 센터는 데라 둔 지역에 세워졌다.
중국에서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를 포함해 티베트 민족의 주요 거주 지역인 쓰촨(四川),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윈난(雲南) 지역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장학연구센터(2008년)에 따르면, 티베트 불교 사원은 3,000곳, 활불은 1,700여 명, 출가자는 약 13만 명이며, 연령대는 18~50세가 79.8%를 차지하고 여성 출가자가 급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다양한 문제와 갈등이 증가하면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청·장년층의 한족들도 중국 불교와 티베트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 티베트 불교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티베트인들의 이주 시기에 따른다. 스위스는 1963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티베트 난민 1,000명을 받아들였다. 이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던 쿤 형제의 지원과 달라이 라마의 협력으로 1968년, 유럽 최초의 티베트 사원이 리콘에 건립되었다. ‘티베트연구소(Tibet-Institut)’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이곳은 인도의 다람살라와 함께 티베트 불교의 국제적인 거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티베트 불교 신자는 전체 불교 신자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위스에는 150곳이 넘는 불교 단체 가운데 약 50%가 티베트 불교와 관련 있으며, 독일에는 300여 곳, 프랑스에는 150여 곳의 티베트 단체가 설립되어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카르루 린포체의 방문 이후, 관련 단체 가운데 약 60% 정도가 카규파와 연관된 활동을 벌일 정도로 카규파의 영향이 크다.
1969년 부탄을 방문한 오레 나이다르와 한나 나이다르는 카르마 카규파 16대인 걜와 카르마파와의 만남을 계기로 코펜하겐에 카르마 카규파 센터(1972년)를 최초로 건립했다. 카르마 카규파의 17대인 친래 타얘 도제와 오레가 중심이 된 다이아몬드 웨이 불교재단(Diamond Way Buddhism Foundation)은 전 세계에 650여 곳에 센터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네팔에 본거지를 두고 설립된 FPMT(Foundation for the Preservation of the Mahayana Tradition)는 현재 국제 본부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다. 1970년대 초, 툽텐 예셰와 툽텐 쇠파 린포체에게 명상을 지도받은 서양인 제자들이 각자 고국에 센터를 설립하면서 서로 연계된 국제 조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40여 국에 160곳이 넘는 센터가 있으며 이들은 티베트 문헌 번역, 출가자 지원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의료, 봉사 활동 등 다양한 자선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서 티베트 불교는 게셰 악왕 왕걜이 1958년 서양 최초의 티베트 불교 사원인 ‘랍쑴 셰줍 링’을 뉴저지 워싱턴 지역에 세운 이후에, 겔룩파의 달라이 라마 이외에도 닝마파의 다르탕 쮤꾸 린포체, 사캬파의 데슝 린포체, 카규파의 최걈 중빠의 노력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카규파의 최걈 중파는 카규파의 11대 중파 활불로서, 1967년 스코틀랜드에 삼예링 명상 센터를 세우고 1974년에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시에 나로파대학을 설립해 교학과 수행 활동을 전개했다. 이곳에서는 불교와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와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달라이 라마 역시 명상과 수행을 주제로 하는 뇌과학이나 심리학 등 학술과 토론 모임에 30년 넘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티베트 불교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세계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평화와 행복, 종교 간 대화를 강조한다. 2014년 라다크에서 이뤄진 칼라차크라 관정에 15만 명이 넘게 모인 것은 그의 태도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티베트 불교가 세계적으로 이와 같이 크게 환영받는 이유에는 종교와 정치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달라이 라마 등 불교계 지도자들의 지도력과 함께 평화, 행복, 인권 등 공동의 가치가 그들의 활동과 서적들을 통해 표현되고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명상 수행이 MBSR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고,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들과 관련 단체들 역시 명상 수행과 연계해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티베트 불교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밀교 수행에 몰입하며 즉각적인 효과를 취하려는 대중들의 요구가 증가하면서 일부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도 우려하고 있듯이, 일부 지도자에게 집중된 관심은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티베트 불교가 다른 종교 전통의 문화와 사회에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수준의 윤리성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와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의 티베트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전통의 전법 활동에도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정연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부교수(HK교수) 및 동 대학 생명교육융합과정(대학원) 부교수로 있다. 주요 역저서로는 『대승 보살계의 사상과 실천』, 『동양 고전 속의 삶과 죽음』(공저), 『(한 권으로 보는) 세계불교사』(공저), 『죽음의 성스러운 기술』(역서), 『자살 대책의 이론과 실제』(역서), 『현대 생사학 개론』(공역) 이 있고, 「현대 생사학을 위한 불교 생사관의 제언」, 「자살 대책을 위한 지역 공동체 특성 고찰」, 「마음치유에 대한 불교 수행과 심리학적 태도의 차이」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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