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하는 줄기세포,
공(空)한 줄기세포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때 불로초같이 마법처럼 들렸던 줄기세포(Stem Cells)에 대한 연구는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 기술에 힘입어 그 연구와 응용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골수에서 추출한 혈구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의 성공 이후, 1990년대 초기 배아에서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하며 배아 줄기세포의 연구는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현재는 성체의 골수뿐만 아니라 탯줄, 지방, 피부, 모발, 장, 뇌, 근육세포 등 여러 조직에서 성체 줄기세포를 추출하며 재생의학을 비롯한 많은 과학 분야에서 줄기세포의 연구와 활용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대단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하는 줄기세포의 정의가 확실하지 않다고 밝히며, 줄기세포는 본질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연기(緣起)하고 따라서 본질 없이 공(空)함을 논의한다.
지금까지 줄기세포는 초기 배아 발생 시기 배반포 안에 덩어리로 있는 세포들(내세포 집단)이나 성체의 특정 조직에만 있는 매우 적은 수의 특별한 세포들로서 불멸한다고 여겨졌다. 줄기세포는 ‘줄기성’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특정한 장소에 실재한다고 이해했다. 줄기성을 내재한 줄기세포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나 물리적 공간과 같은 조건에 의해 변화하지 않고, 다시 말해, 연기(緣起)하지 않아 생멸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줄기성은 다양한 조직에서 추출되는 여러 줄기세포들을 동일한 줄기세포로 규정짓고, 줄기세포가 아닌 세포들과 줄기세포를 구분한다. 이처럼 우리가 이해하는 줄기세포는 줄기성이라는 본질을 가진 실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줄기세포의 줄기성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줄기세포는 미분화된 세포로 자가재생(Self-renewal) 능력을 지니고 있어 끊임없이 스스로를 만들어 미분화 상태의 ‘저장 창고’를 유지한다. 동시에 줄기세포는 분화(Differentiation) 능력이 있어 스스로를 다양하게 특정화된 세포로 성숙시켜 여러 조직들을 만들 수 있고, 그래서 상처받은 여러 조직을 재생할 수 있다. 이렇게 자가재생능력과 분화능력이라는 두 종류의 특성이 줄기세포만이 가진 본질적 속성이라고 규정된다. 그래서 줄기세포는 환경의 변화나 물리적 공간에서의 위치에 상관없이 그 본질인 줄기성, 즉 자가재생능과 분화능을 고정불변 불멸하게 지니고 있다고 이해되고 있다.
지금부터 줄기세포의 뜻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논의하기 위해, 우선, 줄기세포의 본질적 속성이 자가재생능뿐만 아니라 분화능도 포함한다는 정의에 주목해보자. 이 정의는 각각의 자가재생능과 분화능 따로 따로는 줄기세포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가재생능만이 줄기세포의 본질이라면, 이 속성을 갖는 세포는 줄기세포 이외에도 암세포나 간(liver)세포 등 다수가 있다. 그리고 분화능만이 줄기세포의 본질이라면 다양한 성체 줄기세포가 모두 분화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성체 줄기세포들이 생체내(in vivo)에서는 분화하지 않고 멈춰 있다. 따라서 자가재생능과 분화능 각각은 다양한 줄기세포를 하나의 동일한 줄기세포로 규정하고 줄기세포가 아닌 세포로부터 구분하는 본질적 속성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생명과학자들은 생체외(in vitro) 실험 조건에서는 모든 줄기세포들이 분화능을 보인다는 사실로 반론할 수 있다. 실험실에서 인위로 조작된 환경에서 배양된 줄기세포는 분화능을 가지고 있어 만능 줄기세포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만능성이 있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실제로는 아무 특정한 본질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와 같은 셈이다. 줄기세포 안에 어떤 특정한 본질이 있다면 이것이 실험실에서 조작된 세포 환경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세포로 분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인위로 조작된 환경에 의해 줄기세포의 분화능이 어떤 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특정한 세포로 분화한다. 줄기세포의 분화능이 환경의 조건에 의존해서, 다시 말해, 연기하기에 분화능이라는 본질 또는 자성(自性)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가재생능과 분화능 각각이 줄기세포의 본질적 속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있다. 논의를 여기서 끝내지 말고, 처음에 제기된 줄기세포의 본질적 속성이 자가재생능뿐만 아니라 분화능이라는 경우를 살펴보며 문제점들을 더 논의해보자.
여느 세포와 같이 미분화된 줄기세포는 세포분열해 딸세대의 세포들을 생산한다. 이런 과정에서 줄기세포가 자가재생능을 지닌다는 사실은 미분화 부모 줄기세포가 딸세포 세대에서도 스스로와 같은 미분화 줄기세포를 만들어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세대를 넘는 미분화 상태의 통일성은 딸세포 세대의 줄기세포들이 특성화되는 분화능을 억제해야만 가능하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분화란 부모 줄기세포보다 세분화된 성숙한 딸세포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세포가 세분화하는 것은 세포가 특성화하는 방향으로 성숙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따라서 분화능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미분화의 부모 줄기세포가 딸세포 세대에서 부모와 동일한 미분화 줄기세포를 만들지 않고, 즉 자가재생을 하지 않고 특성 지어진 딸세포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가재생능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분화능을 억제해야 하고, 분화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가재생능을 제한해야 한다는 흥미로운 결론이 도출된다. 줄기세포의 본질적 속성이 자가재생능과 분화능이라면 이렇게 상반되는 작용을 가진 두 가지의 속성이 줄기세포의 본질적 속성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어떤 이는 자가재생능과 분화능을 잘 조절하는 것 자체가 줄기세포의 본질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할지 모르나, ‘잘 조절하거나 균형 잡힌 두 상반된 속성’이라는 말은 너무 두루뭉술해 불변 불멸의 본질로서의 자격이 없고 설명력도 부족하다.
만약 어떤 것이 다른 조건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스스로이게끔 해줄 수 있는 그 무엇, 즉 본질을 지닐 수 없다. 그런데 보고된 수많은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이, 줄기세포는 이식된 곳의 조직과 그 조직의 발생 시기에 따라 자가재생능과 분화능이 다르게 측정되었다. 다시 말하면 줄기세포가 본질을 지닌다면 이식된 곳의 조직과 그 조직의 발생 시기에 관계없이 동일한 유전자들을 발현해야 하는데, 이와는 반대로 다양한 여러 유전자들을 발현하는 것이 보고되었다. 특정한 유전자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줄기세포를 결정짓는 본질이 없다는 증거다. 결국 줄기세포에는 불변하는 본질이 없다. 줄기세포는 공(空)하다.
또한 줄기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이 줄기세포가 특정 세포로 분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실험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생체 밖에서 성장호르몬과 여러 화학물질을 달리하며 줄기세포를 배양해보면, 이 줄기세포가 심장, 신경, 혈액, 뼈 등 여러 다양한 조직을 이루는 세포로 분화된다. 줄기세포에는 그것을 어떤 특정한 세포로 발생 또는 분화하게 해주는 본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어진 줄기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 세포를 둘러싼 주위에 있는 환경(조직과 조절 신호 네트워크와의 작용)과 줄기세포가 위치한 물리적 공간과의 관계다.
그리고 자가재생능과 분화능이 영원히 실재하기에 줄기세포는 불멸한다는 생각도 위의 논의를 통해 잘못된 가정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줄기세포는 끊임없이 주위의 조직들과 물리적 그리고 시간적 조건에 의존하며 생성·지속·소멸한다. 줄기세포는 연기(緣起)한다. 모든 사물은 불교가 가르쳐온 연기의 진리대로 오직 조건에 의해서만 생성하고 지속하며 소멸될 뿐이다. 줄기세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유선경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세포분자생물학과 박사 과정 및 텁스대학교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과학철학과 과학철학 및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홍창성 교수와 공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가 있고 홍창성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를 영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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