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緣起)의 법칙 |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 A에서 Z까지


(3) 불교의 근본 진리


연기(緣起)의 법칙 


화령 정사  

불교총지종 정사, 보디미트라 ILBF회장



석가모니 붓다께서 한결같이 추구하고 가르친 것은 고(苦)로부터의 해탈이었으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깨달음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지혜란 무엇을 깨닫는 지혜인가?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인가? 

붓다께서 깨치신 것은 한마디로  ‘연기법(緣起法)’ 혹은 ‘연기의 법칙’이라는 진리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단순히 ‘법(法)’ 혹은 ‘다르마(dharma, dhamma)’라고도 한다. 붓다라는 말은 ‘진리를 깨달은 자’라는 의미인데 이때 깨달았다는 것은 바로 이 연기의 법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불교에서 ‘법’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진리’라는 의미다. 붓다께서 깨달으신 연기의 법은 우주와 인생의 보편적 진리로서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붓다의 출현에 상관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일종의 법칙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법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차별 없이 적용되는, 글자 그대로 ‘진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 지혜를 ‘깨달음의 지혜’라고 한다. 

그러면 진리라는 이 보편적인 법칙성, 즉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연기(緣起)’ 혹은 ‘연기의 이법(理法)’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는 이 ‘연기’라는 법에 의해 다른 모든 종교와 차별성을 가지며, 또 연기법에 의해 불교는 불교로서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연기는 또 다른 말로 공(空)이라고도 표현된다. 

이 연기법은 불교의 모든 교리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이론이다. 그리고 연기법은 불교의 실천적 배경이 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흔히 집착하지 않는다, 분별하지 않는다,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연기의 철학이 실천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실천적으로 나타난 연기의 이법을 특히 ‘중도(中道)’라고 한다. 

이 ‘연기’라는 진리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며, 중심이 되는 교리이고 또 불교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께서도 “연기를 보는 자는 법[진리]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했다. 이 연기라는 진리는 불교 독자의 사상이며,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는 설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연기법은 붓다 당시로부터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 종파를 막론하고 불교에 일관해 흐르는 사상이다. 따라서 이 연기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불교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석가모니 붓다께서 출가하신 동기는 고(苦), 특히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극복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근원적인 인간의 고를 해결하기 위해 석가모니 붓다께서는 출가 후 6년 동안의 온갖 난행과 고행을 거쳐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그 해답을 찾았던 것이다. 그 해답이 바로 붓다께서 깨달으신 진리, 즉 연기의 법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조건]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연기의 법, 혹은 ‘연생(緣生)의 법칙’이라 불리는 이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는 붓다로서 거듭 태어났던 것이며, 모든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언뜻 보기에 간단하게 보이는 이 법은 실제로는 매우 심오한 진리다. 그리고 모든 불교 철학과 수행 체계의 근본이 되는 원리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곧 이 연기의 법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연기라는 이 진리를 드러냄으로써 불교는 다른 종교나 사상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교의 교리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시대와 지역, 그 대상을 초월해 만고불변의 진리로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연기라는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와 현상을 분석하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 진리인 연기를 통해 우리는 고의 실체를 파악하며 거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즉 연기의 법에 의해 비로소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점, 즉 인간의 본질적인 고의 실상을 파악하고 또 그것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기의 이치를 앎으로써 고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해결책도 나올 수 있었다. 불교에서의 모든 교리와 수행 체계는 사실은 이 연기의 법에 근거해 조직되고 구성된 것이다. 공(空)이라고도 말해지는 이 연기의 진리는 불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깨달음의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이 연기의 이해와 체득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연기의 진리에 기반을 두고 모든 교리가 조직되고 수행 체계가 이루어진다.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는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말에서 왔다. 모든 현상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멸한다는 의미다. 인(因)이라는 것은 직접적 조건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연(緣)이라는 것은 간접 조건에 해당된다. 이러한 조건들에 의해 모든 현상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을 연기라고 한다. 연기라는 것은 ‘조건이 갖추어짐으로써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설명한 말인데, 이것은 사물이나 현상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상호 의존의 관계를 말한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서로의 관계 속에서 모든 사물이 나타나고 현상이 나타난다는 의미다. 즉 다른 무엇인가에 의존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면밀하게 관찰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나 사물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서로의 관계 위에서 일시적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그 상호 의존의 관계가 변하면 현상이나 사물도 모습을 달리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은 독자성이 없는 무상한 것이며 항상 생멸 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불규칙적이거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일정한 결과를 낳는다는 엄연한 법칙이 있다. 달리 표현하면, 어떤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은 그 조건이 변화하거나 소멸하면 거기에 따라서 그 현상도 변화하거나 소멸한다는 것이다. 즉 그 조건에 합당한 결과를 낳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데, 이것을 ‘연기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다. 

붓다 이전과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이 우주와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창조주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혹은 어떤 지배자, 초월적인 절대자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 창조주나 지배자는 이 우주를 자기의 뜻대로 관리하고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창조주나 지배자, 혹은 초월적인 절대자를 흔히 신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는 이러한 초월적인 절대자 혹은 창조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세계 3대 종교라고 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역시 바로 이러한 생각에 기반을 둔 대표적인 종교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우주와 세계를 창조하고 관리하는 것은 창조주인 신의 뜻에 달려 있다. 인간은 그저 피조물에 불과할 뿐이며 창조주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데에 불과하다. 인간이 신의 창조 행위를 비판하거나 관리의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신의 통치하에서 절대적인 복종과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돌출적인 행동에 대해서 신의 작용만으로는 설명이 어렵게 되자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자유의지’라는 것을 부여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신의 피조물이기는 마찬가지다. 창조주인 신이 피조물인 모든 인간의 행불행을 좌우하기 때문에 행복을 누리려면 신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이처럼 신의 뜻에 의해 우주와 세계가 창조되고 또 신의 뜻에 따라 모든 현상이 나타나고 변화한다는 것이 신의설(神意說)이다. 

다음으로는 우연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 세계는 어떤 법칙이 있어서 창조가 이루어지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창조된 것이며 우연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원인과 결과를 엄밀히 따져보지 않고 그저 나타나는 단편적인 현상만 관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이 우연설을 믿고 있다. 재수 좋으면 복권도 당첨되고, 재수 없으면 사고도 당할 수 있으며, 또 내가 저지른 나쁜 짓도 재수 좋으면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리는 이러한 생각은 심하면 인간에 대한 경시와 도덕 파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우주와 현상에 대한 문제를 이렇게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신의설과 어떤 법칙도 없이 우연히 그렇게 된다고 보는 우연설과는 달리 불교에서는 일정한 법칙 아래에서 모든 현상이 발생하고 소멸한다고 본다. 즉 어떤 조건이 이루어지면 거기에 맞는 현상이 나타나며, 그러한 조건이 소멸하면 그러한 현상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나 현상은 서로 의존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만으로 독자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라고도 한다. 연기의 법칙이라는 것은 이러한 상의상관의 관계로, 서로 의존해 있으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세계의 현상을 규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신의 뜻에 따른다든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라고 하는 식의 비합리적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불교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기의 법칙에 의해 모든 현상이 발생하고 소멸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러한 연기의 법칙은 붓다께서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상관없이 때와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항상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연기의 법칙을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기법은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서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는 볼 수 없는 이론이다. 또한 연기법은 초기 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할 것 없이 전 불교를 관통해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이며, 어떤 지역, 어떤 종파를 막론하고 연기법을 빼놓고서는 불교를 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법이야말로 불교를 불교답게 하는 사상이며, 연기의 진리를 제외하고서는 불교가 성립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불교의 근본 특징으로서 일컬어지는 삼법인(三法印), 사성제(四聖諦), 팔정도도 모두 연기의 법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화령 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철학 박사). 전 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 불교총지종 중앙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불교총지종 정사이면서 보디미트라 ILBF(국제재가불교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는 『근본불교개설』, 『현대인을 위한 불교 입문』, 『불교 교양으로 읽다』, 『내 인생의 멘토 붓다』, 『관세음보살 예찬문』, 『초발심자경문』, 『대일경 주심품』, 『생활불교, 재가불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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