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합리성│불교와 신경과학

명상과 합리성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대 니액 연구 교수


합리성의 두 가지 의미
명상이 정신적, 종교적 수행 이외에도 인간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명상은 심리적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인지 능력을 강화시켜 부정적 감정을 조절하게 하고 긍정적 자세를 갖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두뇌를 활성화시켜준다. 물론 명상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는 데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러한 명상의 놀라운 효능과 관련해 이번 호에서는 명상과 특별히 연관이 없는 듯이 보이는 합리성을 명상과 연결시켜 논의하고자 한다. 즉 명상은 우리를 합리적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명상의 합리성은 단순한 계산적 이성의 합리성은 아니고 감성과 이성을 아우르는 마음에 대한 깊은 관찰이 가져다주는 합리성이다.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합리적이라는 말은 어떤 일의 궁극적 목적이 올바른 이(理)치에 들어맞는다. 즉 합(合)치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것은 목적의 합리성 혹은 도덕적 합리성이다. 올바른 목표와 방향이 정해진 일은 합리적인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합리적인 일, 즉 미친 짓이다. 한 황제가 그의 즐거움을 위해 많은 백성을 생매장했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한 인간의 쾌락을 많은 인간의 목숨 혹은 고통과 맞바꿀 수 있다는 것은 올바른 이치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리성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목표의 효율적 달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수단의 합리성 혹은 경제적 합리성이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은 수단의 합리성이다. 수단의 합리성에서는 주어진 수단이 얼마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벼룩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 전체를 태우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 아니다. 최소한 경비를 들여 최대의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다. 목적의 합리성과 수단의 합리성의 차이는 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Hannibal Lector) 같은 사이코패스의 행동을 보면 잘 드러난다. 한니발 렉터는 올바르지 않은 목표(살인 혹은 상해를 통한 자기만족 혹은 쾌감의 성취)가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우 효율적으로 행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니발 렉터는 수단적으로는 합리적이나 목적적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 일반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아우르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 두 의미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합리성이라는 말을 쓴다.

명상은 사실 이 두 가지 합리성과 모두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먼저 목적의 합리성 혹은 도덕적 합리성 측면에서 명상은 합리적 사고를 돕는다. 그 이유는 명상이 우리에게 궁극적 깨달음을 제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을 통해 명상은 목적의 합리성을, 즉 삶의 궁극적인 혹은 올바른 목표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의미의 합리성(수단의 합리성 혹은 경제적 합리성)이 명상과 잘 연결된다는 점은 조금 놀랍다. 어떻게 명상이 우리를 수단적으로도 합리적이 되도록 (즉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명상이 우리의 판단과 행위에서 최적 효율을 달성하도록 할 수 있을까? 현대 과학, 특히 최근 급격하게 발전한 신경과학(Neuroscience)은 명상의 합리성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명상에 관한 현대 과학적 접근의 전반적 의미를 먼저 논해보자.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그 중요성
명상의 다양한 효과는 최근 심리학이나 신경과학에서 매우 자세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서구 각국에서는 심리적 장애를 치료하는 목적으로 명상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명상에 관한 임상적 실험이 (명상을 수행하는 환자나 사람들의 심리적 행동적 변화를 조사하는 실험이) 자주 행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이러한 임상 실험은 명상이 많은 심리적 장애(초조, 우울증, 심리적 압박 등)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치료 목적 이외에 명상의 인지적 효과들에 (명상이 지각, 기억, 판단, 결정 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매우 활발하다. 특히 두뇌 영상술이 발달하면서 명상의 일반적 인지 효과뿐만 아니라 (즉 명상을 하면 집중이 잘되고 지적 능력이 잘 개발된다고 하는 일반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명상이 특정한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예를 들어 감정·정서 기능, 기억 기능, 판단 기능 등등의 인지 특정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특정한 인지 과제(기억, 판단, 혹은 지각 테스트)가 주어졌을 때 두뇌의 일정 부분이 활성화되거나 혹은 장기적인 인지 활동을 통해 (예를 들어 독서나 퍼즐을 주어진 기간 동안 매일 실행하는 것을 통해) 두뇌의 일정한 구조가 물리적으로 증가하거나 강화된다면 이러한 변화는 인지 활동과 두뇌가 상호 연관됨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데 이것은 두뇌 영상 기법(예를 들어,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술[fMRI]이나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을 통해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특별히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술(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은 두뇌의 활성화 정도를 (혈액 집중과 이동을) 관측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데 이를 통해서 (물론 피험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어떤 인지 기능과 두뇌 기능이 주어진 과제와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험자들에게 사람의 얼굴 사진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그들의 두뇌 활동을 촬영하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두뇌의 부분이 활성화되면서 (혈액이 집중되면서) 동시에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도 활성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결과는 사람 얼굴에 대한 시각적 인지 기능은 감정 기능도 부분적으로 포함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얼굴의 이해가 눈, 코, 입의 구성과 크기 같은 시각적 이해뿐만 아니라 감정적 반응도 포함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두뇌 영상술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두뇌에 대한 이러한 연구는 우리가 이제까지 잘 알고 있지 않은 우리 마음의 실체를 두뇌 활동을 직접 촬영함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두뇌 활동을 촬영하는 방법에는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술 이외에도 다른 방식이 있음을 밝힌다).

명상의 인지적 효과를 두뇌 영상술로 밝히는 일반적인 방법은 특정한 인지 과제를 주고 일반인의 두뇌와 명상 수행자들의 두뇌가 반응하는 방식을 촬영하고 그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명상을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들과 방금 시작한 이들의 (혹은 명상 수행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들의) 두뇌 반응의 차이를 조사하기도 한다. 이런 연구는 명상의 인지 발달 과정을 조사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들은 대부분 명상이 인지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인간의 정신 과정에서 일으킨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서양 과학의 시각에서 이러한 연구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로 거의 불가능이라고 여겨진 마음의 체계적 변화가 (특별히 정서적이며 인격적 변화가) 명상에 대한 두뇌 연구를 통해 가능하다고 밝혀졌다. 즉 명상은 단순한 심리적 안정을 위한 요식 행위나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환자들이 설탕 알약 같은 아무런 의학적 효과가 없는 것에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때 나타나는 것과 같은 비실질적 심리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수행 방법이라는 것이다. 명상의 신경과학적 연구를 통해 명상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에서 경탄의 자세가 나타난 것이다. 명상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명상이 진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서양 의학이나 식품영양학의 검증이 없던 시절에도 인삼이 기력에 좋고 된장이 몸에 좋다는 것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특별히 명상 같은 것은 종교적인 수행이므로 과학적 검증과는 독립적으로 그 중요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다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연구로 불교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개방적 접근이 더욱 강화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신경과학 분석 기술로 명상의 구체적인 모습이 잘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둘째로, 명상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두뇌 촬영술과 같은 최신 기술이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명상이 갖는 독특한 특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 철학과 과학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음을 몸과 구분하고 마음 내부에서는 이성과 감성을 나누는 입장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신경과학 연구로 드러난 명상은 이러한 구분을 기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나누지 않고 이성과 감성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한 인간의 마음과 전인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은 명상에 관한 신경과학적 연구와 임상적 연구로 드러난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명상이 인간의 다른 정신활동과는 달리 몸과 마음을 모두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명상의 통합적 접근 때문이 아닌가 하고 학자들은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는 과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훈련이고, 다른 하나는 설득이다. 훈련은 주로 행동적 변화를 유도하는 과정이다. 상과 벌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동물도 이런 방법으로 그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깊은 마음의 자세와 생각을 바꾸는 경우에는 훈련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설득이나 교육이 필요하다. 감동을 받거나 깨달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설득의 방법으로 주로 지목되는 것이 이성적인 이해이다. 즉 한 사람의 생각과 시각을 바꾸는 과정에서는 이 사람에게 새로운 생각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즉 이성적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마음에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생기면 이 사람은 자발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것이 이성의 힘이며 합리성의 힘이다. 서양 철학은 이러한 이성의 힘을 믿는 전통이다.

그런데 명상은 이성적 이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 사람 전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 명상에서는 이성적 이해를 발전시키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는 출발점이 되는 신체적 조건이나 지각적 기반으로 내려가서 그 뿌리를 관찰하는 일이 벌어진다. 즉 몸과 마음, 그리고 이성과 감정이 연결되는 기본 고리를 집중적으로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명상에서 벌어진다. 이러한 명상의 특이성은, 이성적 이해와 설득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자기 변형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명상에 대한 신경과학 연구는 단순히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나 마음 수행법에 대한 관심만이 아닌 그 이상의 중요한 학문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마치 석유 이외의 방식으로 (즉 태양광이나 조력으로)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열리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놀라고 환호하게 되는 상황과 유사하다. 마음과 정신의 동력이 서양적 전통에서는 이성과 이해의 힘이었다면, 명상은 그 동력을 이성적 이해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경과학으로 명상이 이성적 이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변화나 변형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드러났으며 이를 통해 명상이 학문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이성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하다고 여겨진 합리성을 다른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음을 명상이 보여줄 수 있을까? 이성적 이해와는 다른 방법으로 한 사람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석봉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Alvernia University)에서 니액 연구 교수(Neag Professor of Philosophy)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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