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만큼이나 강력한 인드라망의 세계|연세대학교 국제대학 초청 강연

인터넷만큼이나 강력한

인드라망의 세계


그레이엄프리스트교수


“대승불교에서 가장 흥미로운 형태 중 하나인 화엄(華嚴)은 모든 것이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 관통한다고 바라봅니다. 인드라망 비유는 이러한 형태의 불교의 핵심 경전인 화엄에 자주 언급된 가장 흥미로운 비유이지요. 이 비유에서 보석들은 산과 겨자씨, 해양과 머리카락과도 같은 현실적 대상이며 각각은 다른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모든 것은 무진법계 안에서 서로 관통하고 상호 연관적인 것들의 총체가 됩니다.”

그레이엄 교수는 인드라망 비유가 아름답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며, 최신 수학을 참고해 자신만의 다소 특이한 답을 제공하겠다고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 설명의 범위는 화엄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부연 또한 잊지 않았다.

“현실 요소들 간의 관계는, 화엄에서 상즉상입 등으로 규정됩니다. 이러한 규정은 약간의 도움은 되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지요. ‘관계’의 의미로 사용되는 학자는 즉(卽)인데,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다양합니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여기서의 의미는 전문 용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설명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만일 건물이 서까래와 동일하기에, 나머지 널빤지, 타일, 그리고 기타 등등은 모두 서까래와 동일한 것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반적으로 그들은 모두 서까래와 동일하다고 가정해봅시다. 정체성의 특징은 그것들이 대개 그와 동일한 것들로의 대체를 돕는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X와 Y가 같다면, X와 관련해서 참인 모든 것은 Y에게 참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법장 논리는 이러한 결론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논리는 만약 R이 서까래고 P가 널빤지라면, 그리고 B가 건물 전체라면 R=B이고, P=B, R=P입니다. 이는 동일한 것들로의 대체의 예시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해석이 곧잘 쇄말주의(trivialism)로 연결되기 쉽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P의 아무 특징이나 잡아서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은 탐구하지 아니하고 사소한 문제를 상세하게 서술하려는 태도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개념은 공(空)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것과 저것의 특징이 공통적이라는 이유로 그것들이 같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잘 익은 딸기와 신호등의 빨간 불은 붉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모든 것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관계를 진부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공함, 즉 비어 있는(empty) 것은 대승불교에서 핵심적인 비유적 개념입니다. 그 중요성은 중관학파의 창립자인 용수에 의해 처음 표현되었습니다. 공하다는 것은 자성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는 번역하기 어려운 용어인데 종종 ‘자기존재’ 혹은 ‘내적본성’ 등으로 번역됩니다. 막연하게 자성적인 존재는 형이상학적인 원자(atom)입니다. 그것은 본성이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라는 것, 반대로 비자성적 존재는 본성에 부차적이라는 것 - 그 존재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 덕분에 소유한다 - 그리고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공하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물질들은 확실한 실체가 아닙니다. 그들의 본질은 무 - 본질입니다. 즉 본질이 없는 것이 그들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은 모든 것이 바로 이 성질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러한 연유에서 불교의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B에 관해 많이 알지 못하고도 A에 관한 모든 것을 알면 A와 B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인드라망은 인터넷만큼이나 강력한 것이라는 것이 그레이엄 교수의 주장이다.

“이제 흥미로운 전개를 할 수 있습니다. 북극의 자성 N을 생각해보세요. 이는 단지 남극 S와 관계가 있기에 특정 방식 P 측면에서 북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극은 남극이 없다면 북극 그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의 구조적인 수형도는 이럴 것입니다. 예상할 수 있듯이 S의 수형도는 N의 수형도에 속하지요. 하지만 역시 S는 N과 대칭적으로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형도를 더 그려보자면 N의 수형도는 S의 수형도의 일부인 것입니다. 두 대상은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섞입니다. 각각의 구조는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의 일부입니다. 참고할 것은 N과 S 둘 다 무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둘 중에 하나라도 유한하다면 이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겠지요.”

그레이엄 교수는 모든 경우에 두 대상이 ‘상호 관통한다’는 것보다 잘 설명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각각의 존재론적 구조는 서로의 존재론적 구조를 잘 담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하위 수형도가 되는 두 그림 간의 관계는 대칭적이고 타동사적인(transitive) 관계라는 것이다. 화엄의 상호 관통성 개념 또한 정확히 이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 모든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대승불교에는 두 가지 현실에 관한, 세속적인 것과 승의적인 것의 구분이 있지요. 세속적 실재는 수미산이나 머리카락 비유처럼 공유하는 경험의 현상적인 대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공(空)합니다. 궁극적 실재는 세속적인 생각에서 구체화를 벗는 것입니다. 즉 공함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적되었듯이 이를 다시 구체화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입니다. 모든 것처럼 그 또한 공하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궁극적 실재가 공허하기 때문에 그것은 관계적인 본성만 있을 뿐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관계적인 본성은 자기 수형도의 근본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과 관계를 맺는가? 바로 세속적 실재의 대상과 맺어지는 것이다. 그것들은 가장 깊은 방법으로 관계를 맺는다. 각각의 현상적인 대상은 궁극적 실재의 현현이 없다면 지금대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궁극적 실재의 이러한 현상들로 현현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의 저서 『금사자상(Treatise on the Golden Lion)』에서 법장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자상의 비유를 이용해 그 둘의 관계를 설명한다. 현상적인 세계는 사자의 외관이고 서로는 타자 없이 자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 실재와 현상적 실재의 목표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각자는 서로가 있어야 그 존재로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상호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있어 남과 북입니다.”

논의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레이엄 교수는 또 하나의 수학적 예시를 들었다. D다이어그램을 생각해보면 E는 그것의 뿌리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E의 수형도는 다른 수형도들의 하부 수형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을 무제한으로 좌측을 향해 연장할 수 있다. 이를 계속해나가거나 혹은 반복을 없애고 화살표들의 방향을 살짝 정리하면 인드라망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무진법계의 그래픽적 묘사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금사자상』에서의 법장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강연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각각 사자의 눈, 귀, 팔다리, 관절, 그리고 머리카락 하나하나에서 황금 사자가 존재한다.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의해 둘러싸인 모든 사자들은 동시에 그리고 즉시에 머리카락 하나가 된다. 따라서 모든 머리카락 하나하나에 무한한 수의 사자가 있고 모든 머리카락 하나하나는 무한한 수의 사자와 함께 머리카락 하나가 된다. 이러한 방식대로, 마치 천상의 신 인드라망처럼 기하학적인 발전은 무한한 것이다.’”


취재·정리|박은주(객원기자)


이 글은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 초청으로 방한한 세계적인 논리학자인 그레이엄 프리스트(Graham Prist)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가 연세대학교 새천년관에서‘화엄불교와 인드라망(The Net of Indra)’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취재,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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