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생기와 지리산의 생명과 함께하는 하봉길 감독의 천 일 수행|슬기로운 수행 생활

내 안의 생기와
지리산의 생명과 함께하는
하봉길 감독의 천 일 수행

함영 작가

하봉길 감독

백 개의 생기체들과 소통하며 이뤄가는
‘천 일의 약속’
새벽 6시, 눈이 떠지기 무섭게 안부를 챙기는 친구들이 있다. 호흡과 더불어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넨 후 아침 일기를 쓰고 식사를 마치면 도시락을 싼다. 반숙 달걀 두 개와 떡 두 개면 족한 도시락 메뉴가 요즘은 ‘신(GOD) 님’들이 택배로 보내준 먹을거리로 풍성해졌다. 과일 몇 쪽과 곶감까지 곁들이니 더할 나위 없이 푸짐하다. 여기에 따뜻한 차를 담은 보온병을 챙기면 이제부터는 내 안의 친구들을 다시 하나하나 일깨우며 산행하는 시간이다.

“나는 생기발랄하고 유쾌하고 상쾌하고 명쾌하고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멋지고 품격 있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자상하고 (…) 활발하고 활기차고 용감하고 용맹하고 당당하고 기품 있고 열정적이고….”

근원의 기운인 생기와 더불어 활력과 기력, 정열, 정화 등 이른바 ‘생기 5총사’로 시작한 것이 어느 사이 백 개로 증식되었다. 언제나 내 편인 생기 친구들을 어느 하나 빠트리는 일 없도록 차분하게 출석을 부르며 호흡과 함께, 걸음과 함께, 혹은 묵상과 함께 온몸에 회로를 돌려 그들을 느끼는 이 특별한 만트라 수행은 하봉길 감독이 천 일 수행을 시작한 이래 가장 중요시 여기는 루틴이다.

“흔히 호흡을 운기한다고 하는데, 에너지를 모아 그 진기를 돌리는 호흡법이 있어요. 처음엔 그걸 시도해보다 인격체처럼 성격을 지닌 에너지체들을 만들어 차크라별로 모아 하나씩 느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생기(生氣)’예요. 기존 이론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생기를 원하는 위치에 모아 숨 쉴 때마다 회로를 돌리며 느끼는 거죠. 내가 어떤 에너지를 어디에서 붙잡고 있느냐에 따라 에너지는 그쪽으로 몰리게 되어 있어요. 자기장이 형성되는 거죠. 그걸 어느 경로로 돌릴지 정해 그대로 옮겨가며 느껴보는 거예요.”

생생한 캐릭터의 인격체로 성장한 생기들과의 소통은 즐겁고 경이롭고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다. 그것들은 또 다른 나이고, 허상이며, 염체(사념체)이기도 하다.

“염체는 물론 부정적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염체 아닌 것이 있던가요. 매일 보는 내 가족의 얼굴조차 우린 염체로서 인식하죠. 그렇다면 내게 고양감을 주고 성장하게 하고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평생 내 편인 든든한 친구들을 안 만들어낼 이유가 없잖아요. 내게 유용한 건 잘 활용해야죠. 사실 종교라는 것도 유용성 측면에서 우리에게 이익이 되니까 믿는 게 아니겠어요.”


연기와 명상을 접목하고 호흡과 오감의 기억을 활용한 의식 전환을 실습하는 ‘양자도약유저아카데미’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한 경북 지역 신 님(유튜브 방송 구독자)들과 함께

무리 없이, 시부지기하게
하 감독의 창의력이 접목된 이른바 생기 회로 수행은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계속된다. 그런 후 몸풀기 체조를 하고 출출해지면 도시락을 까먹고 차 한 잔 음미하며 묵상을 하다 보면 산중에서의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하산 직전, 하 감독이 빼놓지 않고 챙기는 또 하나의 루틴은 자신의 유튜브 구독자인 ‘신(GOD) 님’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영상으로 담는 일이다.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종교며 직업이며 사는 지역도 각양각색인 신 님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던진 질문들 중 심오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은 이때 영상에 담곤 한다.

영성과 양자역학을 주제로 한 그의 유튜브에 접속하면 누구든 신이 된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신 님’ 하며 불러주는 덕에 내가 곧 신이고 부처임을 자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한편 수행에 지칠 것을 염려해 안부와 응원을 전해오고 온갖 먹을거리와 방한용품까지 챙겨 보내는 신 님들 덕에 하 감독의 천 일 결사는 외롭지 않다.

『너는 절대 잘못될 일 없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그가 수행을 하게 된 계기는 출판 기념 겸 전국의 신 님들을 만나러 다니는 모임을 강행하다 체력이 고갈되어서였다. 처음엔 매일 네 차례 간단한 숨쉬기부터 시작했다. 그다음은 회음 호흡을 했는데, 그것이 자연스레 명상으로 연결되었다. 기력이 회복되면서 산책과 산행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일련의 습관이 루틴이 되어 천 일 수행까지 이어졌다. 말하자면 ‘시부지기하게(시부적하게)’ 성사된 천 일 결사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더위 속이나 강추위 속이나 아랑곳없이 매일 지리산을 오르다 보면 물론 지치고 힘들 때가 많다. 겨울철 눈 쌓인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굴러떨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고, 여름철 산모기와 진드기에게 과도한 수혈을 당할 때는 인욕 수행이 따로 없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린애가 진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그냥 징징대면서 올라가요. 무기력이 찾아올 땐 그런 모습도 신 님들에게 여과 없이 공유하며 허심탄회하게 고백하고 하소연을 하죠. 그 어떤 내 모습도 편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부처든 예수든 그 어떤 성자도 사실 지질한 동네 형아 같은 너무나 인간적인 시기가 있었는데, 우린 그런 모습은 부정하거나 좋아하지 않잖아요.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고. 근데 지나고 보면 그런 모습조차 얼마나 사랑스러운지가 보여요.”

사실 그는 누구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하고 사회적 이력만 봐도 산 생활이나 수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햄릿’이라는 극단을 창단한 이래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롯해 K-pop 아이돌 그룹 콘서트며 송해 90주년 헌정 공연 등 그는 많은 작품들의 기획과 연출을 맡은 바 있다.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아이들을 무상 지도하고, 소외되었거나 자폐증이나 ADHD가 있는 아동들을 비롯해 학부모들을 무대에 올려 치유 연극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유튜브 운영 초기에는 ‘양자도약유저아카데미’라는 모임을 갖기도 했다.

천 일 결사 전 지리산의 한 선방에서 하 감독이 신 님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고민 상담과 명상을 지도하는 모습

도교와 불교와 양자역학으로 만난 신
어느 날 그가 감독으로서의 이력과 사업체까지 접고 종교와 영성에 귀의한 것은, 성경을 백 독 하며 체험한 영적 각성이 그만큼 강렬하기도 했고 신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우연찮게 보게 된 『도덕경』은 그때까지 쌓은 신에 대한 이해와 믿음 체계를 한순간에 뒤엎었다.

“무엇보다 ‘태상하지유지(太上下知有之 가장 훌륭한 임금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는 임금)’라는 구절에서 큰 충격을 받았죠. 기독교의 신은 우리의 창조주로서 은혜의 하나님이고 영광과 찬양을 받는 존재인데, 『도덕경』 기준에서 보면 그런 신은 최상이 아닌 한 수 격이 낮은 신이였어요. 그때부터 성경 백 독 한 걸 다 무시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다시 보이더라고요. 기독교에서 말한 하나님은 입자적 관점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인격 신, 우상이었죠. 하나님도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처럼 어떤 상이나 이름을 만들지 않아야 진짜 모습이 보이겠구나 싶었죠.”

『도덕경』에 어퍼컷을 맞은 후 그다음은 양자역학과 불교가 이어 그에게 돌려차기를 했다.

“소름이 돋았죠. 지금까지 신의 영역이나 초월적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선을 그어온 것을, 양자역학이 양자도약이며 양자중첩, 불확정성 원리 등 실험으로 검증한 물리법칙으로 에너지 차원에서 설명하니까요. 양자역학을 알고 나니 불교가 보이더라고요. 불교 용어들이 어렵긴 하나, 주옥같은 구절들 속에 깨달음의 핵심이 담겨 있어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금강경』만 보더라도 불교는 영적 세계의 수학이고 과학 같아요. 양자역학이니 뭐니 하는 것이 없던 시대에 부처님은 대체 어떻게 현대의 양자역학자들이 얘기하는 물리적 현상과 미시세계의 일들을 한 큐에 전부 설명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코끼리의 코나 다리 하나 만져본 것을, 그것이 코끼리의 전체 모습인 줄로 착각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불교와 기독교, 도교의 모든 사상에 양자역학까지 합치고 보니, 하나님이기도 성모이기도 하고 부처님 또는 ‘참나’이기도 한 근원의 에너지가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그것을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올 연말이면 천 일의 약속이 이뤄진다. 고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찾아온 무기력과 무력감에 몸을 내맡긴 채로 그 이유를 짚어본다. 무엇이든 명쾌하게 답을 주는 내 안의 생기에게 자문도 구해본다. 그랬더니 이렇게 되묻는 게 아닌가. “나만으로는 안 되겠니?”

“며칠 전 일기를 쓰는데, 지리산에 오르면서 있었던 일들과 수련했던 모든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죠. 비 올 때 길목에서 마주친 대왕 지렁이들까지. 제가 명상하며 걷는 코스에 그 녀석들이 지나가면 자칫 밟게 될까 봐 주의해 도는데, 너무 천천히 가니까 ‘대체 언제 지나갈래’, ‘맨날 왜 이 길로 다니냐’며 잔소리를 하거든요. 그러면 어떤 녀석은 억울한 듯 ‘저는 이번에 처음 지나가는 건데요’ 하고 대꾸를 하기도 하죠. 다양한 캐릭터의 산고양이들과 마주치는 일도 종종 있는데, 처음엔 경계심이 역력했던 대장 고양이가 이젠 한동네 주민으로 인정해주듯 순순히 길을 내어주더라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힘들다고 징징대며 산에 오르는 나를 길목의 지렁이며 소나무며 복사꽃이며 산고양이며 온갖 생명체들이 무심한 척 과묵하게, 다소곳하게, 또는 발랄하고 수다스럽게 지켜봐주고 있었다. 내 안의 생기만큼이나 살가운 그들과의 교감은 소소하지만 경이롭고 즐겁다. 그렇게 채워가는 하루하루가 천 일을 이루었을 때 백 개 생기체들이 지닌 성품 모두가 내 오라가 되고 나 자체가 되는 것,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그것을 강력하게 전염시키는 슈퍼 전파자가 되는 것. 고백하건대, 수행을 하다 보니 이 같은 바람이 내게 있었다. 그런데 요사이 또 다른 바람이 생겼다. 설령 그렇지 못할지라도 ‘그대로도 족한’ 나이기를….


함영|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기획 및 출판 등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