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감옥을 탈출하면,
삶과 사랑에 빠진다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현재를 있는 그대로 만나라
과거의 생각으로 현재를 해석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의 현재는 날마다 새롭다. 사실 안다고 여길 뿐, 아는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놓여 있는 현재는 과거에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첫 번째, 생생한 날 것의 경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재와 비슷한 옛날의 기억과 생각을 끌어와 현재를 그것과 같다고 단정하고, 이미 아는 것이라고 규정짓는다. 이미 아는 것은 다시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 생생한 첫 경험은 과거의 익숙한 경험이라고 여겨진 채, 그저 사라져간다.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존재하지 못한 채, 앎, 지식, 생각이 삶을 과거로 고착화시킨다.
모든 경험은 새롭다. 모든 현재는 난생처음의 경험일 뿐이다. 사랑도 언제나 첫사랑뿐이고, 여름도 언제나 첫 번째 여름이며, 오늘 아침 눈을 떠서 만나는 아내는 어제의 아내가 아니다.
생각으로 해석된 세계는 늘 진부하다. 내 생각 속의 남편을 만나는 대신 눈앞의 진짜 남편을 만나보라. 해석된 자식은 늘 말썽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아들과 딸은 매 순간 투명하다. 내 생각 속에 기억되고 판단되고 인식된 사람 대신, 그 판단 이전의 순수한 무분별의 존재와 사랑에 빠져보라. 생각을 통해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만날 때, 그 만남은 곧 참된 자비요 사랑이 된다. 지혜가 된다.
지금의 호흡은 첫 번째 호흡이고, 차 한 잔의 향과 맛은 늘 첫 번째의 생경한 맛과 향이다. 나와 세상, 그 속의 모든 인연들은 항상 첫 만남이며, 생경하며, 첫사랑이다. 삶과 사랑에 빠져보라.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해석, 분별, 생각으로 현재를 걸러서 보지 말아보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해보라. 바로 그때, 삶은 새롭게 깨어난다. 심심하고 진부하던 일상이 날마다 새롭고, 신선하며, 여행지에서 난생처음 보는 풍경을 바라보듯,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삶과 사랑에 빠진다.
대상을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집착한다
대상에 집착하는 것은 곧 자기 생각에 집착하는 것과 같다. 사실은 대상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해 내가 해석하고 판단 내린 그 ‘대상에 대한 나의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내 식대로 판단하고 해석한 뒤에 그 나의 해석이라는 이미지, 상(相)을 그 대상이라고 믿어버린다. 그것이 우리가 대상을 알았다고 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진짜로 대상 자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나의 해석과 이미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하지 못하다. 허망하다.
진짜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 왜 거짓된 생각 속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그것이 분별의 습관이다. 평생을 그 분별에 속아, 그 분별이 진짜라고 여기며, 그 거짓된 전도몽상의 뒤바뀐 허망한 생각을 따라 살아온 것이 우리 인생이다.
한 여인을 사랑하고 집착한다고? 그렇지 않다. 그 여인에 대한 나의 해석, 나의 생각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죽고 못 살겠다고 여겨놓고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속았다고 말하곤 한다. 누가 누구를 속였을까?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그 사람에 대한 거짓 이미지에 속은 것일 뿐이다.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다. 생각이 진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진짜다. 그러니 생각으로 거르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무수히 많은 자기 생각을 집착하며, 그것을 진짜 세상이라고 여기는 이 허망한 착각에서 놓여나야 하지 않을까.
에너지 낭비가 없는 삶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바로 눈앞의 이 일에만 깨어 있으면 그뿐이다. 지금 이 일을 하면 된다. 과거 기억의 필터로 현재를 걸러서 해석할 필요도 없고,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이라는 필터로 지금 이 순간을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만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는 생각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필터로 현재를 바라보게 되면, 그것은 곧 과거나 미래라는 허상을 쫓는 것과 같다. 생각은 언제나 과거 아니면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존재할 때 당신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다. 생각으로 걸러서 현재를 보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그저 눈앞을 바라보라.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저 인연 따라 적절히 반응하며 살면 그뿐이다. 지금 여기는 한없이 단순하고, 소박하고, 평범하며, 별일이 없다. 생각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지금 여기를 살게 되더라도, 할 일은 저절로 다 하게 된다. 저절로 차가 오면 차를 피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할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한다.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벗을 줄 알며, 회사 일이 끝나면 저절로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 여기에서 단순하게 살 때, 우리는 실상에 뿌리내린 단순 소박하지만 명징하게 깨어 있는 삶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생각 속에서 헤매며, 눈앞의 모든 것을 생각으로 해석하고 좋으면 집착하고, 싫으면 거부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던 삶이 갑자기 단순해진다. 에너지의 낭비가 없다. 해도 한 바가 없어진다.
지금 이 순간, 그저 여기에 있으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삶의 해답이다. 이미 지나간 일을 끄집어내지도 말고, 오지 않은 일을 근심 걱정할 것도 없다. 물론 필요할 때는 잠깐씩 꺼내 쓸 수는 있겠지만, 그 또한 임시적이며, 필요에 따라 잠깐 쓰고 버릴 것임을 잊지 말라. 그 생각은 허상일 뿐이다. 잠깐씩 필요할 때만 쓸 수 있는 좋은 도구일 뿐이지만,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법상 스님|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16만 명의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고,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상주 대원정사 주지, 목탁소리 지도법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도표로 읽는 불교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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