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자비와 관용으로 인류 평화를 심다|세계의 선사로부터 배우는 불교

달라이 라마
자비와 관용으로
인류 평화를 심다

허우성
경희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1935~ )


티베트의 운명

14대 달라이 라마(1935~ )는 정치적 불교도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정치와 불교는 분리될 수 없다. 스스로도 종교적 은둔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가 대승불교 전통에 있다는 점, 최근 300여 년의 티베트 전통에서 달라이 라마의 직위가 종교적, 현세적 지도자였다는 점,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티베트의 슬픈 운명이었을 것이다.

티베트 현대사는 참 슬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폭압은 일본의 조선 탄압보다 10배, 100배 더 무자비해 보인다. 1950년 10월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던 그 무렵, 8만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 서부 지역을 침공했다. 달라이 라마는 1987년 미의회 인권대회 연설(워싱턴D.C.)에서, 과거 수십 년 동안 총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100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대학살을 당하고, 최소한 그만큼의 티베트인이 종교적 신념과 자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고 말한다.1) 1958년 캄과 암도 지역에서 티베트의 자유 투사와 중국군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다. 달라이 라마는 자서전에서 중국군의 잔혹 행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2) 

달라이 라마는 자서전 말미에서 마오의 총구에 자비의 빛을 맞세운다. “마오 주석은 정치적인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부분적으로만 옳았다.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일시적일 뿐이다. 결국에는 진실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사람들의 사랑이 승리한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인간의 정신은 승리하고야 만다. (…) 나는 기도했다. 자비와 깨달음의 빛이 전 세계를 비추고 공포와 억압의 어둠을 쫓아내기를!”(『자서전』, p.383, 일부 수정) 그는 여기에서 진실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이 승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티베트의 독립 대신 자치라는 중도적 해법조차 거부해왔다. 그의 기도는 언제 실현될까?


한국은 주권국가인가?

한국 정부와 언론은 중국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비판을 종종 외면한다. 그를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칭송은 한다. 하지만 중국식의 중앙집권적 민주주의 곧 반자유적 전체주의 체제에는 자유, 민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달라이 라마의 비판은 외면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그랬다. 1959년 망명 이후 최근까지, 달라이 라마는 유럽과 미국, 남미, 소련, 일본과 대만 등 총 62개국을 방문한 것 같다. 일본은 1967년부터 2018년까지 여섯 번 정도 방문했다.3) 하지만 한국 불교도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0년에는 방한 일정까지 잡았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인간 본성에 맞다

이는 달라이 라마가 세계 곳곳을 방문해서 사람의 행·불행을 관찰하며 얻은 신념이다. 그는 ‘불성’이란 말 대신에 인간 본성, 마음, 정신, 열망, 사랑이라는 말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1994년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는 자유·진실·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우리 인간 본성의 핵심에 있다고 했다.4) 그는 동유럽의 평화 혁명을 그 열망의 힘으로 얻어낸 결과로 본다. 

동유럽의 평화 혁명은 그에게는 자비, 정의, 평등이라는 불교 원리를 실천한 것이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에게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는 종종 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혁명 이전의 동유럽, 중국과 북한의 민주주의는 거짓 민주주의다. 중국식 민주주의는 중국 인민에게는 자유 없는 전체주의이며, 폭압적인 정권 아래 살아가는 티베트인과 같은 소수 민족에게는 한족(漢族) 우월주의가 겹쳐서 더욱 폭압적으로 된다. 그런 곳에는 자비, 정의, 평등이라는 불교 원리도 없고, 삼권분립도 없고, 사상, 표현, 행동의 자유도 없다.



정당한 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달라이 라마는 「전쟁의 현실」이라는 글에서 전쟁과 대규모 군사시설, 군국주의, 핵전쟁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당한 전쟁은 옹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의 폭압으로부터 문명을 구원했으니 정당했고, 한국전쟁은 부당한 공격에 대항했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기회가 되었으니 정당한(just) 전쟁으로 본다.(『정치철학』, p.756)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비판은 매섭고 깊다. 그 체제가 의식주를 제공한다고 해도 “우리 속 더 깊이 있는 본성을 지탱할 소중한 자유의 공기”를 주지 않고, “(우리를) 그저 반쪽짜리 인간”으로, “단지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만족하는 짐승”으로 취급한다고 보고 있어서다.(『정치철학』, p.767)


혼합경제 시스템 선호

달라이 라마는 자유의 공기가 온전한 인간의 필수 조건이라 했지만, 자유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고, 혼합경제론을 주장한다.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가 실제로 실현되기만 하면 불교에 가깝다; 그런데 현실을 보니, 노력의 결실이 자신에게 직접 오는 경우 개인적인 동기가 더 커진다; 그런데 사회 전체를 위하라고 하면 그런 동기는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미래 경제 시스템은, 우리가 양쪽 시스템의 좋은 점을 포함한 혼합경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정치철학』, p.135) 달라이 라마에게는 무조건의 자유도 문제가 있지만, 반시장적 통제 경제에서 개인적 동기 무시와 비효율성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본적 인권의 박탈이다. 시장통제는 정치 검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 것 같다.


달라이 라마의 네 가지 책무

달라이 라마는 슬픈 티베트에 태어난 사실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전생에 나쁜 업을 쌓은 탓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로 본다.(『정치철학』, p.129 참조) 그는 최소 네 가지 책무를 희망을 갖고서 수행하고 있다. 첫 번째 책무는 자비심, 용서, 관용, 만족, 자기 훈련 같은 인간적 가치를 증진하는 것이다. 내 삶 속에서 이런 가치를 증진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얻어진 내면의 평화가 국가 간의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구현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정치철학』, p.731 참조) 두 번째 책무는 세계의 주요 종교적 전통들 사이에 종교적 화합과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다. 그는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연설(2001)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교리와 철학의 내용상의 차이와 상관없이, 세계 모든 주요 종교들은 한 개인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종교는 사랑, 자비, 인내, 관용, 용서, 겸손, 자기 훈련 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 분야에서도 다원성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정치철학』, p. 325~326)

세 번째는 티베트인에 대한 책무이다. 그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로서,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티베트인의 자유로운 대변인 역할을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티베트인과 중국인 사이에 상호 호혜적인 해결책이 마련되면 그의 세 번째 책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정치철학』, p.851) 네 번째 책무는 불교와 과학의 공동 연구다. 그는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연구하는데, 티베트 불교 전통이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정치철학』, p.458~459)


자비와 공을 가르치는 달라이 라마의 지혜

달라이 라마는 자비와 공을 가르친다. 하지만 그에게 진정한 자유민주국가와 독재국가의 차이는 허상(虛像)이 아니라 현실이고 진실이다. 자비, 정의, 평등을 불교 원리라 하고, 이를 다당제와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 체제와 연결한 것은 불교 경전에서가 아니라 격동하는 세계사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얻은 관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티베트인으로서 그는,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그것이 행복에 필수적임을 알았다.

한국인, 한국인 불자는 무슨 책무를 지는가? 자비심, 용서, 관용, 만족, 자기 훈련 같은 인간적 가치를 내 삶 속에서 증진하는 것이 첫째 책무이다. 두 번째는 다른 종교인과 잘 지내는 것이고, 세 번째는 자유, 평등, 민주,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를 잘 지키고 발전시키며, 중국과 북한에 당당해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인류의 스승인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탐진치를 잘 다스려 자비심을 기르는 것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그 자비심을 확장해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그에게 자비심과 자유, 그리고 평화는 모두 하나다.


‘허공계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중생계가 존재하는 한

나 역시 그곳에 머물 겁니다.

세계의 고통을 물리칠 때까지.’(달라이 라마 성하의 기도)  


<참고>

1) 『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 (『The Political Philosophy of The Dalai Lama: Selected Speeches and Writings』 ed. by Dr. Subhash C. Kashyap, New Delhi: Rupa Publications 2014) 허우성·허주형 역, 운주사, 2022, p.499 참조. 이하 ‘정치철학’.

2) 텐진 갸초, 『달라이 라마 자서전: 유배된 자유를 넘어서』 , 심재룡 옮김(정신세계사, 2012), p.196 참조. 이하 ‘자서전’.

3) Wikipedia, “List of overseas visits by the 14th Dalai Lama outside India”, 2022. 12. 16.

4) 『정치철학』, p.657~658 참조.


허우성|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주립대 객원 교수, 일본 도쿄대 외국인연구원, 미국 UC 버클리대 방문교수,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와 동 대학 비폭력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불교문화』, 『철학과 현실』 편집위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등이 있고, 『달라이 라마의 정치 철학』(공역)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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