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숲길을 지나 적멸의 숲으로 월정사 ‘전나무 숲길’|치유의 숲, 사찰림을 가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적멸의 숲으로
월정사 ‘전나무 숲길’

글/사진 은적 작가

월정사 전나무 숲길.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1km 정도 되는 길에 1,700여 그루의 장대한 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전나무 숲길 맞은편의 순환로. 이 길과 전나무 숲길 사이로 오대천이 흐른다.
전나무 숲속의 월정사 부도전

문수보살로 상징되는 부처님 지혜의 성전을 향한 회랑, 전나무 숲길
천 년도 훌쩍 넘은 세월 저편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오대산으로 드는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자장 스님입니다. 문수보살의 진신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앞서 자장 스님은 636년(신라 선덕여왕 5)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공부 길에서 돌아오기 전 자장 스님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중국) 오대산을 순례했습니다. 태화지(太和池)에 이르러 문수보살의 석상에서 이레 동안 기도를 해 문수보살의 진신을 뵙고, “그대의 본국 동북방 명주 경계에 오대산이 있는데 1만 문수보살이 항상 머물러 있으니 가서 뵙도록 하라”는 부촉을 받은 터였습니다.

자장 스님은 계곡의 물소리가 풍경 소리가 되어 혼침을 물리치는 오대산 기슭에 띠집을 지었습니다. 이로써 오대산 월정사의 산문이 열렸습니다. 자장 스님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스님이 머물던 곳에 신효 거사와 범일 스님의 제자였던 신의 스님이 암자를 지었고, 훗날 수다사의 장로 유연 스님이 와서 큰 절을 이루었습니다. 한 지관이 말하기를 “나라의 명산 가운데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므로 불법이 길이 흥할 곳이라…” 했다 합니다.

월정사 앞 오대천의 금강연

월정사 적광전과 팔각구층석탑

자장 스님이 산문을 연 후 신라 신문왕의 두 왕자 보천과 효명이 각기 1,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오대산에 들었습니다. 두 왕자는 여러 날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문득 세속을 떠났습니다. 호위하던 사람들은 황망히 돌아갔고, 두 왕자는 각기 암자를 짓고 도업을 이루었습니다. 어느 날 두 왕자가 함께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동대·서대·남대·북대·중대—에서 5만 보살의 진신을 만났습니다. 훗날 성덕왕이 된 효명은 705년(성덕왕 4) 1만 문수보살을 만난 중대에 진여원을 창건하니 오늘의 상원사입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이리하여 오대산은 산 전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문수 성지로서 성지신앙(聖地信仰)의 문을 연 곳이 오대산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부터 금강교까지 1km 정도 되는 숲길을 말합니다. 1,700여 그루의 장대한 전나무가 이룬, 문수보살로 상징되는 부처님 지혜의 성전을 향한 회랑입니다. 이 길을 걷는 일의 의미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문장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길을 걷는 것은 장소의 정령에게, 자신의 주위에 펼쳐진 세계의 무한함에 바치는 끝없는 기도의 한 형식이다.”(『걷기예찬』 237쪽)

월정사 앞 오대천의 금강연

전나무 숲길을 나오면 활짝 적광(寂光)의 세계가 열립니다. 빛으로 장엄한 집, 월정사 ‘적광전(寂光殿)’이 거기 있습니다. 자장 스님이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문수보살의 진신, 정녕 그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 ‘빛’이겠지요. 월정사 전나무는 그 빛의 현현입니다. 그 광휘의 낙처는 적멸이겠지요. 그렇다면 전나무 숲길을 걷는 기도의 회향처는 부도전이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을 따라 500m쯤 가면 부도전입니다. 적멸의 숲입니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계는 알지 못합니다만, 숲과 부도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습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의 절정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만나본 전나무 숲 가운데 최고의 풍광입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걷는 기도는, 숲길에서 나와 다시 부도전 숲으로 드는 일입니다. 문수보살의 지혜에 귀의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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