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사회참여 역사와 성찰|불교와 사회참여

한국 불교의
사회참여 역사와 성찰

박수호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

정토회의 해외 구호 활동 (출처|정토회)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개념적 이해
1990년대 이후 한국 불교계에서도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다. 민주화 이후 급속히 성장한 시민사회와 그들에 의해 전개된 사회운동이 불교계에 투영된 결과였다. 당시 불교계는 이들의 자극을 받아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고, 이런 현상을 일반적으로 불교의 사회참여라고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불교의 사회참여는 1990년대 이후 불교계에 의해 진행된 다양한 사회운동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이런 인식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불교의 사회참여는 불교 사회운동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모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겠다는 불보살의 서원 속에는 불교가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체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간주한다는 인식이 내재해 있다. 또한 불교는 연기법과 공업의 논리를 통해 개인의 문제가 개인을 넘어선 중중무진의 인연 속에서 동시에 해결되어야 함을 내비치고 있다. 따라서 불교는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사회운동과 공유한다. 불교의 사회참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다만 불교는 사회 문제를 불교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불교적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불교는 일반적인 사회운동과 차별화된다. 불교적 방법의 핵심은 괴로움의 원인이 인간의 욕망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깨닫고, 수행을 통해 이를 제거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고통을 여읜 열반의 경지에 닿을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평생에 걸친 전법교화를 통해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은 바로 이러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불교에 귀의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길을 따라 자비행과 보살행을 이어가는 것 그 자체가 불교의 사회참여이자 불교 사회운동이 된다.

실제로 전법교화로 일관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불교의 사회참여 그 자체였다는 점은 초기 경전의 곳곳에 나타나 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러 왕과 바라문, 장자들에게 끊임없이 법을 전함으로써, 전쟁을 막았고 굶주림과 질병에 고통받던 사람들을 도왔으며 이웃들과의 갈등을 멈추게 했다. 나아가 지금까지도 인도 사회를 강하게 억압하고 있는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 구현되는 승가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 모두가 당시 인도 사회를 개혁하는 사회운동이었고, 불교의 사회참여였다. 따라서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불교의 역사가 곧 불교의 사회참여 역사이고, 불교 신행이 곧 불교 사회운동이다.

불교환경연대 녹색사찰 협약식 (출처|『법보신문』)

한국 불교의 사회참여 역사
불교가 처해 있는 사회가 다르고, 각 시기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제기되는 주요 모순과 시대적 과제가 다르므로 구체적인 불교 사회운동의 내용과 형식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한국 불교의 사회참여는 역사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여기서는 한국의 근현대 시기에 국한해 간략히 살펴본다.

개항기부터 1940년대까지의 시기는 한국 사회가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조선의 개국 이후 오랜 기간 공적 영역에서 소외되었던 불교는 승가 공동체의 복원이 핵심 과제로 대두되었고, 한용운, 권상로, 이영재 등에 의해 다양한 불교 혁신 운동이 전개되었다. 여기에 일제의 식민 지배로 고통받던 민중을 위해 산업 장려, 민족교육, 무장 항일 투쟁 등 다양한 방식의 독립운동을 통해 당시의 사회 문제에 개입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전쟁의 상흔을 씻어내고 교단 내부의 문제 해결에 치중하면서 사회참여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운동의 흐름은 계급 투쟁에서 다양한 삶의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신사회운동으로 전환되었고, 불교 사회운동도 환경, 인권, 여성, 사회복지, 소비자 보호, 난민 지원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불교 사회운동은 시민운동적 성격을 표방하는 단체들-불교인권위원회(1990),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1991), 공해추방불교인모임(1992) 등-을 통해 전개되었다. 이들은 공명선거운동,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 각종 환경 캠페인, 비전향 장기수 및 양심수에 대한 인권운동과 반민주악법 철폐 등을 다루었고,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후원 사업을 벌인 나눔의 집(1992) 설립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988년 창립된 정토회도 (사)JTS, (사)좋은벗들, 불교환경교육원 등 산하 단체들을 통해 북한 주민을 위한 식량 지원, 탈북자 및 국제 난민 지원 사업, 환경운동 등을 활발히 전개했다.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불교 사회운동은 더욱 다양한 영역으로 전문화되었다. 이들은 참여불교운동으로 총칭되는데, 자비로운 마음을 키우고 실천해 이 세상에서 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증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이러한 참여불교운동은 성찰의 차원과 자비의 실천이라는 차원으로 구분된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 등에 의해 제시된 명상과 일상적 수행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등장한 평화운동이나 수행공동체운동, 기성 교단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주도한 교단자정센터 등은 성찰의 차원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비의 실천 차원은 대안문화운동 영역과 사회참여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귀농학교 및 대안학교인 ‘작은학교’, 불교생협운동본부를 통한 도농공동체운동 등 다양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대안문화운동의 대표적 사례이고, 사회참여 영역에서는 불교환경연대, 사찰생태연구소, (사)맑고 향기롭게 등이 참여하는 환경운동, (사)JTS와 (사)이웃을돕는사람들, 한국불교기아도움기구 등이 주도한 국제구호사업,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헌혈과 장기 기증을 주요 활동으로 삼은 생명나눔운동, 불교여성개발원과 전국비구니회와 한국비구니연구소의 여성운동,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참여불교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월주대종사에 의해 주창되고 조계종단이 종단적 차원에서 지원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이 운동은 불교를 제대로 믿고 실천하는 것이 곧 불교 사회운동이며, 이를 통해 불교와 사회가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일반 사회에서 전개되는 사회운동에 불교계가 동참하는 모양새로 간주되던 불교 사회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공헌했다.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성찰
급격히 팽창하던 한국의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은 2000년대 이후 성장 동력을 상실한 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망가 위주로 운영되면서 일반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기 어려운 점, 국가와 자본의 기부에 의지하면서 자율성이 축소되는 점, 사회운동 조직의 문어발식 영역 확장 등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인력 동원 중심의 기존 사회운동이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변화된 새로운 사회운동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주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불교 사회운동에도 유효하다. 덧붙여 불교 사회운동 내부의 문제들도 적지 않다. 운동의 목표, 방향성과 방법 등을 두고 나타난 출가자와 재가자의 인식 차이도 문제이다.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출가자 및 재가자의 수도 무시하기 힘든 문제이다.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를 우선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 모든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절실한 것은 일상의 모든 부분에서 정견을 드러내고 불자답게 행동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나와 남이 함께 고통을 여의고 정토를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며, 불교가 사회에 참여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박수호|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정보사회에서의 종교 변화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교수로 있다. 불교의 사상과 교리를 통해 서구 중심적인 사회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교사회학의 정립을 통해 불교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학문적 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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