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만으로 해탈을 얻는
위대한 가르침
『티베트 사자의 서』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죽음은 절망일까? 기회일까?
작년 여름 80세에 가까운 노부부가 염불선을 배우겠다고 송덕사를 찾아왔습니다. 20년간 간화선을 수행했다고 하셔서 그에 걸맞은 방법으로 염불선을 알려드렸습니다. “지금부터 스님이 제 스승님입니다!”라고 하며 웃으면서 헤어진 것이 기억납니다.
이후 몇 번의 왕래가 있었는데 최근 갑자기 병세가 악화해 응급실로 향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는데, 임종을 맞이하기 전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방문해 1시간 정도 유쾌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여전히 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으셔서 질문을 많이 하시니, 옆에서 간호하던 부인이 만류했습니다.
“스님들 바쁘셔서 인제 그만 가셔야 해요. 질문은 그만하세요.”
그러자 법우님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 마음이 제일 급해!”
이 말을 듣고 병동 안에 함께 있던 모두가 많이 웃었습니다. 사실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진지한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된 상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소에 염불선을 실천했던 임종자에게 죽음은 절망스러운 끝이 아닌 극락에 왕생하는 새 삶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 여부에 따라 병실의 분위기는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의 본래 명칭과 목적
19세기 말 서양의 학자들은 동양 문화 그중에서도 불교에 대해 급격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때 소개된 대표적인 불교 텍스트 중 하나가 바로 『티베트 사자의 서』입니다. 죽음 이후의 경험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책은 서양의 지성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티베트 불교가 서양에 전파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중음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해탈을 얻는 위대한 법』입니다. 이 제목은 책이 담고 있는 가르침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은 죽음의 과정을 겪고 있는 임종자와 임종자를 돕는 조력자들, 그리고 임종 이후의 중음신이 되었을 때 해탈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책입니다. 심지어 임종자가 생전에 이 가르침에 무지한 상태였다 하더라도 오직 이 내용을 듣는 것만으로도 임종 시 큰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독특합니다.
이 책은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 蓮華生上師)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티베트에 밀교를 전했다고 알려지며, 제2의 붓다로 칭송받는 고승입니다. 그는 성실한 수행자들을 위한 가르침뿐 아니라 수행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해탈의 가르침인 ‘닦지 않고 해탈에 이르는 가르침’을 다양하게 언급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책입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대자비심으로 미처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범부까지도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일종의 ‘죽음 수업’입니다. 이 가르침과 인연이 닿는다면 각자의 신심과 근기에 따라 죽음의 과정에서 다가오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고 평화로운 최후심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으며, 죽음 직후 다가오는 인생 최고의 해탈 기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다림이 아닌 임종자를 돕는 문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장례식장으로 시다림을 다녀오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가서 목탁을 치며 『금강경』을 독송하고 왔는데, 그때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정말 영가에게 도움이 될까?’
이후 공부하면서 ‘시다림’이라는 명칭은 인도에서 시체를 화장하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장례 문화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더니, 현시점의 한국 불교의 장례 문화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장례 문화는 임종자가 죽음을 맞이한 후에 영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임종자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마음이 안심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죽음 수업’이라는 주제로 몇 년간 법문을 지속하며,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임종자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임종 직전이라는 점입니다. 최후심이야말로 죽음 이후의 경험과 다음 생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요건이 됩니다. 그렇기에 부처님 당시의 임종자를 돕는 문화는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사망한 이후 영가를 돕는 문화는 최선의 순간을 놓친 이후의 차선책이라고 판단됩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노부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노부부가 반복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극락왕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수행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알려주세요.”
“희로애락 어떤 감정이 일어나든 ‘나무아미타불’ 하세요. 광명상이 보인다면 기꺼이 광명을 따라가세요.”
며칠 뒤 전화가 왔습니다. 임종자는 인터뷰 이후의 모든 시간 염불 수행을 했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 모두 조용한 분위기에서 임종자를 보내줬다고 합니다. 장례를 마친 뒤 노부인은 찾아와 고백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남편을 도왔지만, 조금만 더 죽음에 대해서 알았다면 더 잘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 또한 아쉬운 점이 남았습니다.
한국인을 위한 ‘죽음 수업’의 필요성
한국의 불자들은 죽음에 대해 너무 무지해 혼란스럽고 또 외로운 임종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임종자를 돕는 문화가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조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마음을 편안하게 돕는 것, 둘째, 가능하다면 임종 직전과 직후 광명상의 기회를 통해 의식의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 셋째, 죽음 이후 영가가 겪게 될 경험 속에서 가르침의 안내를 받는 것입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의 과정과 임종 전후, 그리고 죽음 이후의 경험을 안내하고 있는데, 이 중 임종 전후의 안내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 이제 그대가 진실의 대도를 찾을 때가 왔다. 그대의 숨이 멎으려 하고 있으며, 스승은 그대에게 청정한 빛을 대면시키려 한다. 중음 세계에서 그대가 직접 청정한 빛의 실상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 이 순간 그대는 청정한 빛을 인식해서 그 속에 머물러야 한다. 나도 동시에 그대를 도와 깨달아 들어가리라.”
이 책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만약 극락왕생에 대한 법문과 더불어 이 책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국만의 ‘죽음 수업’을 만들 수 있다면 불자들의 임종은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대부분 한국인에게 티베트 문화는 낯섭니다. 한국 문화에 걸맞은 의역과 주석이 필요합니다. 둘째, 임종의 과정부터 죽음 이후의 여정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옆에서 이 가르침을 읽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텍스트가 아닌 오디오가 포함된 콘텐츠로 제작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상상해보세요. 다행히 문화적 거부감이 없는 내용의 ‘죽음 수업’ 오디오 콘텐츠가 있어서 이를 100일간 미리 들을 수 있는 겁니다. ‘죽음 수업’을 반복해서 계속 듣는 동안 죽음의 순간을 준비하고, 죽음의 경험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예습합니다. 최후심 속 안심의 중요성을 상기하면서 남은 삶 동안 모든 이들을 용서하며 후회 없는 마무리를 준비합니다. 이때 임종자는 이런 안내를 듣게 됩니다.
“실상 중음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미 공포의 환상이 모두 자신의 식이 반영되어 이루어진 것이고, 중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걸 깨달아 알았노라. 이제는 두려운 생각이 다 없어졌다. 따라서 성취를 기약하는 중요한 시기이니, 모든 자신의 식이 변화해 나타난 안락과 분노의 불보살 존자들에 대해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나는 결정했노라.”
감각이 흐려져 바로 옆에서 손잡고 있는 가족조차 인식이 어려운 마지막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광명상을 놓치지 않기를 권장하기에 임종자는 일심으로 따릅니다. 꿈을 꾸듯 시작되는 중음의 기간에 극도로 두려운 경험이 이어지지만, 중간중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이러한 핵심적인 조언을 해줍니다.
“존귀한 아무개여, 그대가 보는 광경이 아무리 공포스럽다 해도, 자신의 심지 활동이 투사해서 낳은 환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빛이 자기 심령의 본질적 광휘임을 체험해 인식하라. 그대가 이 모든 것을 체험해 인식할 수만 있다면, 털끝만 한 의심도 없이 즉각 불과를 증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찰나 사이의 원만한 깨달음’이니 가슴속에 새겨두라.”
육도윤회가 결정되는 순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가르침의 기준으로 갈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정말 큰 행운이 아닐까요? 준비되었다면 평화로운 죽음과 기쁜 환생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분명히.
원빈 스님|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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