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일으켰다,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문화재의 시선으로 보는 절집 이야기

몸을 일으켰다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 



고요하게 다정다감한 전라남도 화순 

미국 CNN에서도 한국에 방문하면 한 번은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을 선정할 때 내가 있는 이곳을 순위에 올렸다고 한다. 평생 떠돌이 방랑객으로 살다 죽은 김삿갓도 세 번이나 들렀고, 마지막엔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과거에나 오늘에나 세랑지에서는 조용히 저수지 수면 위로 물안개를 뿜어내고, 산책로 양옆으로 뻗은 나무들도 맑은 공기를 뿜어내며 사계절 내내 누구에게나 품을 내어주는 곳. 전라남도 화순은 그렇게 드러내지 않고 고요히 다정다감한 땅이다. 

 

세계 불교 역사상 유일무이한 ‘화순 운주사’   

내가 있는 이곳은 불교 발생지 인도에도 없고, 불교가 널리 퍼졌던 중국에도 없는 곳, 세계 불교 역사상 유일무이한 곳이다. 현대에 들어 일주문이 생기기 전까지 천 년 세월 담장도, 경계도 없었던 사찰. 누군가 이곳이 사찰이라 생각한 이유는 천 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 각 일천 기가 있다.”

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 


누가 창건했는지 알 수도 없는 운주사의 이름에는 ‘항해하는 배 모양의 사찰(運舟寺)’이라는 뜻이 있다. 그 이름은 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지리 대가였던 도선국사(827~898) 때문에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풍수 지형이 떠가는 배와 같기 때문에 배가 물 위에 뜨려면 물건으로 배를 눌러주고, 키와 삿대가 있어야 배가 솟구쳐 엎어지는 것을 면할 수 있는데, 영남보다 호남에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으니 이 땅에 돌로 만든 불탑과 불상을 얹어 배가 뒤집히는 것을 진압한다는 비보풍수다. (『조선사찰사료』 中)


천불천탑을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무명씨들  

아침마다 나의 환희에 찬 눈물은 이슬이 되어 이들을 적신다. 누워 있는 돌부처, 못난이 부처, 부부 부처, 할머니 부처, 할아버지 부처, 아기 부처… 누가 깎아놓았는지,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알 수 없이 나무 아래, 바위 아래 앉아 있는 저 돌부처들은 저마다 그 사연이 어찌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은하수처럼 알알이 나의 마음에 박혀 아름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운주사 불상과 불탑들이 고려 시대 것이라 추정한다지만, 그것도 짐작일 뿐. 

지금 남아 있는 석불 80여 기와 석탑 21기는 참으로 그 생명 질기게 서민들의 염원을 지키고 있다. 수많은 문화재 지정을 받고, 보물이 되고, 국가 지정 사적이 되고, 10월에는 국가유산청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 신청을 한다고 한다. 나는… 그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항해하는 배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이름을 내세우지 않은 무명씨들, 내가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땅 위에 박아놓은 수많은 서민들의 염원이라는 점이다. 

나는 일어났었다, 단 한 명을 위해 고요히 

일제 강점기에 이익을 좇는 이들이 불상과 탑을 허물었지만(조선 후기 승려 설담 자우의 시문집 『설담집』) 잡초처럼 살아남은 민초들의 왕관 같은 운주사. 이곳에 내가 있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와불, 천불천탑이 향하는 정상에 누워 있는 돌부처다.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73호) 

내 모습이 평범한 본존불 한 구가 아니라 두 구인 것도, 세 구의 삼존불이 아닌 것도 미완이기 때문이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의 마지막에 나를 산 정상에 세워두려 했으나, 동자승이 일하기 힘들어 ‘꼬끼오’ 닭 우는 소리를 내니 석공들이 하늘로 가버렸다는 전설도 있고,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의 용화세계가 열린다는 전설도 생겼다. 

아무렴 어떤가. 

나는 일어났었다. 

저 산 아래 아주 후미진 곳, 지금은 흔적도 없이 이끼만 무성한 숲에 고사리손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성불을 기원하며 깎아놓은 가장 작은 돌부처의 주인, 그 아이를 위해 몸을 일으켰었다.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숨을 거둘 때, 작은 깨달음을 얻고 가라 이마에 축복을 내려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고, 다시 이 자리에 누웠다. 고요히. 

나는 누워 있는가, 일어서 있는가. 둘인가, 하나인가, 셋인가. 천 년인가 만 년인가. 어떤 질문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별처럼 빛나는 저 천불천탑의 염원을 매일 밤 가슴 저미게 바라보며 운주사 꼭대기에 누워 아름다운 마음에 울컥하고 있다.  



글|정진희 

방송작가, KBS <다큐온>, <다큐공감>, <체인지업 도시탈출>, EBS <요리비전>, <하나뿐인 지구>, <희망풍경>, MBC <다큐프라임>, JTBC <다큐플러스> 등에서 일했고,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을 출간했다. 

사진|마인드풀 외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