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조심해야 하는 뇌과학적 이유|불교와 거짓말, 구업(口業)

말을 조심해야 하는
뇌과학적 이유

박문호
뇌과학자, ‘(사)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대표


베르니케 영역, 브로카 영역, 궁상다발로 이루어진 두뇌 루프
현생 인류가 20만 년 전에 지구에 출현해 지배종으로 성장하기까지 가장 중요한 바탕은 언어 소통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언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사고를 표현하며 사회적 유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다른 동물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점이다.

물론 동물도 짧은소리를 통한 소통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가지고 있는 정교한 문장 구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어를 연결할 수 있고 주어, 동사, 목적어 등의 순서에 의해 정보를 세부적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단어에 악센트를 달리해 화자의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류의 언어 소통 능력은 고도로 진화한 뇌에서 비롯된다.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은 베르니케 영역(Wernicke’s area)과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은 신경세포의 일종인 궁상다발(arcuate fasciculus)로 연결되어 있다.

베르니케 영역은 뇌의 두정엽과 측두엽이 만나는 특정 부위로 청각피질과 시각피질로부터 전달된 언어 정보의 해석을 담당한다. 베르니케 영역은 주변 뇌피질과 연합해 소리, 단어와 의미를 결합해 말과 글을 이해하는 기능을 한다. 독일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카를 베르니케(Carl Wernicke)가 1874년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통해 이 영역이 손상되었을 때 언어 장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 영역이 손상되면 환자는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는 유창한 말을 늘어놓지만 자신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의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

브로카 영역은 좌반구 전두엽에 위치하는 특정 부위로 언어 생성을 제어하고 말을 발음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프랑스 외과 의사인 폴 피에르 브로카(Paul Pierre Broca)가 1861년 사망한 간질 환자의 부검을 통해 밝혀냈다. 이 영역이 손상되면 주어와 목적어가 구분되지 않아 문법적으로 복잡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 환자의 경우 언어 구사 능력은 떨어졌지만 언어 이해 능력에는 결함이 심하지 않았고 지능 또한 정상 수준을 유지했다. 말을 더듬게 되는 것은 이 영역의 활동이 저하되어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궁상다발은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을 연결하는 언어 고속도로라 할 수 있다. 음가와 발음기관을 연결해 음운의 루프(loop)를 생성하며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하면 강화된다. 궁상다발로 연결된 뇌피질 영역이 언어 처리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효과적 해결 방법은 계속 중얼거리면서 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면 베르니케 영역, 브로카 영역, 궁상다발로 이루어진 두뇌 루프가 작동해 오래전 대뇌피질에 저장된 학습 내용과 연결되어 해결책이 떠오르게 된다.

언어 관련 뇌 부위를 해부학적으로 연결한 그림을 보면 말하기와 관련된 뇌 영역은 21곳이나 된다. 우리가 말을 하게 되면 이 영역에서 감각 단계, 의미 단계, 행동 단계를 거쳐 목적 지향적 인간이 된다. 워낙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각 단계를 의식할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말을 잘하는 훈련이 무척 어려운 것이다.

효율적 대화를 하려면 ‘호응을 잘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90% 이상 대화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드물다. 효율적 대화를 하려면 ‘호응을 잘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원칙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친구를 병문안 갔을 경우 다른 암 환자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주제는 같을지 몰라도 호응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하는 행위이다. 또 최근 파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에펠탑을 보고 왔다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자기는 과거에 루브르 박물관을 보았다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대화 방식은 호응이란 탈을 쓰고 대화의 주도권을 가지고 오기 위한 무의식적 전환 반응이다. 진정한 호응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고 화자의 다음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유도해 화자가 의도하는 주제 속으로 깊이 들어갈 때 이루어진다.

그러면 호응이 왜 어려운 것일까? 사람은 대화의 주도권을 가질 때 뇌 속의 쾌감중추가 자극을 받는다. 쾌감중추는 한번 작동되면 멈추기가 어려워진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단점과 비밀까지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범인이 자신의 말에 취해 범죄를 자백하는 사례도 있다. 원래 사람의 생리적 반응은 비용과 이득을 저울질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인데 쾌감중추로 인해 이 기능이 정지되는 것이다. 쾌감중추 자극 이익이 자기 노출 손해보다 더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느 책에서는 이 현상을 ‘사람은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과 말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두 종류뿐’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요즘은 가히 휴대폰의 전성시대이다. 사람 간의 대화는 휴대폰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타인의 얼굴’ 속에서 살아왔다. 맨얼굴을 대하면서 미소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며 사회를 형성했다. 얼굴을 통한 감정 전달이 스마트폰 속에 갇혀버렸다. 인류의 감정 교류의 마당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뇌과학에 따르면 말은 뇌의 신경망을 변화시키고
생각, 감정, 행동에까지 영향을 준다
말하기는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뇌과학에 따르면 말은 뇌의 신경망을 변화시키고 생각, 감정, 행동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뇌과학적으로 맞는 말이다. 뇌는 말을 하면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기억한다. 부정적 말을 자주 하면 실제로 자신의 능력 발휘를 방해하고 긍정적 말은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감정 상태에도 큰 영향을 미쳐 부정적 말은 불안, 스트레스, 우울감을 높이는 반면 긍정적 말은 자존감, 행복감, 만족감을 높인다. 나아가 말은 행동까지 변화시킨다.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해야 한다’라고 계속 되뇌면 실제로 운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정적 말이나 상대를 저주하는 말은 결국 자신을 해치게 되므로 반드시 삼가야 한다.

좋은 대화법이란 어떤 것일까? 대화에는 스포츠와는 정반대의 게임 규칙이 적용된다. 대화라는 게임은 ‘내가 져야 이긴다’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화술보다는 듣는 사람의 심리 상태가 더욱 중요하다. “말은 화자의 화술이 아니고 청자의 심리학이다”라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화살같이 상대를 향해 날아간다. 과녁의 중심에 꽂힐지 외곽에 꽂힐지는 듣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화는 말의 내용보다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핵심이다.

박문호|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30년간 재직하면서 반도체 레이저, 반도체 통신소자를 연구했다.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방대한 양의 자연과학서를 섭렵하면서 삶의 근원을 캐는 공부에 매진했다.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사)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www.mhpark.co.kr)을 개설해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뇌, 생각의 출현』,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 『박문호 박사의 뇌과학 공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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