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佛法)의
핵심은 무엇인가?
최유진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고타마 싯다르타의 핵심적인 가르침, 연기의 법칙, 삼법인(三法印), 사성제(四聖諦)
불법(佛法)의 핵심을 간단히 말하기는 쉽지 않다. 8만 4,000 법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교의 가르침은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부처님 법이라고 하면 불교의 창시자인 역사적인 부처님, 즉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가르침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핵심적인 가르침이 있다. 그것은 연기의 법칙, 삼법인(三法印), 사성제(四聖諦)라고 말할 수 있다.
연기의 법칙
불교는 부처의 깨달음에서 시작한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인생은 괴롭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고 난 후 인생의 괴로움에 대해 어떻게 하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탐구해 그 방법을 깨닫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면서 불교가 성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가 깨달은 진리가 바로 불법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진리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불교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여러 스승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고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는 스스로의 방법에 의해서 수행을 해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온다. 그 깨달음의 내용이 가르침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핵심은 일반적으로 연기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연기에 대해서 일반적인 공식으로 정형화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게 되고 이것이 일어남으로부터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도 해 연기의 법칙이 가장 중요한 진리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연기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삼법인(三法印)
다음으로 초기 불교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이 삼법인(三法印)이다. 삼법인이란 말의 뜻은 세 가지 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연기의 법칙과의 연관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 즉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은 우선 우리의 경험에서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러하고 대상이 되는 사물들도 그러하다. 논리적으로 볼 때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연기의 법칙에 의해서 보아도 무상할 수밖에 없다. 다른 것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것은 다른 것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괴롭다고 하는 것은 한역 경전의 번역어인 고(苦)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지만 고통이라는 것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불만족스럽다는 뜻에 가깝다고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 되고 불만족스럽다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무상의 진리에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못한데도 영원한 행복을 꿈꾸므로 불만족스럽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거나 만족스러운 경우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행복을 느끼더라도 결국은 불만족으로, 괴로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는 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가르침이다. 내가 없다면 누가 살고 누가 깨달음을 얻는가? 내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다. 우선은 영원불변의 내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무아다. 그리고 행위의 배후에 행위의 주체가 되는 어떤 것이 따로 있고 그것이 자아라는 것을 부정한다. 행위자 따로, 행위 따로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에 따라서 내가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아가 완전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무아설의 핵심인 셈이다. 붓다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거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영원한 자아를 부정했지만 연속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사성제(四聖諦)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에서 불교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이다. 괴로운 이 세계에서 어떻게 하면 깨달음의 세계,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가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다.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의 네 가지가 사성제인데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괴로움의 진리인 고제는 앞의 삼법인에서의 괴로움이라는 진리와 같은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것을 말할 때는 네 가지 괴로움(四苦)과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을 말한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이 네 가지 괴로움(四苦)이고 여기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 좋아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五蘊)에 대한 집착의 괴로움이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이다.
둘째의 고귀한 진리인 집제는 괴로움의 원인이다. 괴로움이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원인은 갈애(渴愛)라고 한다. 감각적 욕구에 대한 갈애와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 즉 허무에 대한 갈애의 세 종류가 있다고 설명한다.
셋째의 고귀한 진리는 멸의 성제다. 이는 갈애가 남김없이 멸한 상태다. 일체의 번뇌가 멸한 상태, 즉 열반을 말한다. 열반은 불교의 이상적 경지다. 탐욕과 어리석음이 모두 사라져서 더 이상의 괴로움이 없는 상태고 윤회에서 벗어나서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넷째의 고귀한 진리는 도의 성제다. 고의 멸을 달성하기 위한 수행 방법을 말한다. 괴로움은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인이 있어서 생겨난 것이므로 그 원인을 없애면 괴로움이 없는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방법으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은 팔정도다. 그것은 정견(正見; 올바른 견해)·정사유(正思惟; 올바른 마음가짐)·정어(正語; 올바른 말)·정업(正業; 올바른 행위)·정명(正命; 올바른 생활)·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정념(正念; 올바른 기억)·정정(正定; 올바른 정신통일)이다.
대승불교
이제까지 설명한 연기의 법칙, 삼법인, 사성제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에 이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기 불교에서 더욱 발전해 대승불교가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방의 나라들은 대승불교가 중심이고 우리가 잘 아는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등 대부분의 경전은 대승의 경전이다. 대승불교는 초기 불교와는 좀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대승의 교리를 대승(大乘), 즉 큰 수레라고 부르는 것은 첫째로 그 가르침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대승불교는 재가와 출가를 일관하는 불교다. 셋째로 대승불교는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또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두를 구제하려는 폭넓은 입장의 불교다. 이것을 난행도(難行道; 어려운 길)와 이행도(易行道; 쉬운 길)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대승불교가 불타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이기 때문에 이행도가 있다. 대승불교에는 믿음의 불교와 수행의 불교라는 양면이 있고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폭넓은 불교가 된 것이다.
최유진|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정년퇴직해 명예교수로 있다. 원효를 중심으로 한국의 불교사상에 대해 연구했으며 저서로 『원효사상연구』, 『원효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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