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의 힘에 관한 책들|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의 힘에 관한 책들

『멀고도 가까운』, 『옛이야기의 매력』, 『기억·서사』

정여울
작가

타인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잘 경청하는 법을 배우면, 고통을 다루는 능력 자체가 크고 깊어지게 되며, 고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삶의 본질이 고통임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는 나의 이야기’를 바라볼 줄 아는 혜안도 열리게 된다.

고통의 외적인 원인을 근절하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만물에 공감할 것을 강조
인간의 마음을 끊임없이 아프게 하는 고통의 원인에 관해 부처님은 수많은 해답을 내놓으셨다. 부처님은 『초전법륜경』에서 말씀하셨다. 태어남도 괴로움, 늙음도 괴로움, 병도 괴로움, 죽음도 괴로움이라고.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도 괴로움이고, 싫어하는 것들과 만나는 일도 괴로움이라고. 좋아하는 것과 떨어져 있는 일도 괴로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라고. 다섯 가지 집착이 모두 괴로움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괴로움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인간의 존재는 온갖 종류의 불쾌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다.

불교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인류 보편의 열망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은 뜻밖에도 ‘나의 괴로움을 없애는 법’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고 ‘타인을 돌보고 만물에 공감하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진정한 매력인 것 같다. 내 아픔을 없애려는 직접적인 노력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 타자의 슬픔에 집중함으로써 내 아픔을 치유하려는 욕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러니까 타인의 아픔을 열심히 돌보다 보니 저절로 내 아픔이 함께 치유되는 듯한 느낌. 나의 아픔이 그저 내 인생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만물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는 것. 내가 내 희로애락만 돌보는 삶이 아니라 세상 만물과 이어진 존재임을 깨달으며 고통의 뿌리인 집착으로부터 해방되고, 더 나아가 내 안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존재로 변모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생의 아름다움이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반비, 2016

◦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나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법,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반비)에서 불교의 이러한 매력을 정확히 짚어낸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의 괴로움을 다스리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고 있는데,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의 외적인 원인을 근절하기보다 타인을 돌보고 만물에 공감할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방법인데, 많은 스님들은 평소의 수행 속에서도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가부좌를 틀고 오직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는 불교의 기본 수행은 ‘오직 이 순간 속에만 존재하기’를 배우는 동작이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오직 현재에 집중하다 보면 ‘나만의 이야기’에만 빠져들지 않고 ‘다른 존재의 이야기’에 공감할 줄 알게 된다고 한다. 즉 ‘타인의 이야기, 다른 존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이야말로 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세상을 더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는 실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다 보면, 이러한 불교식 수행법이 ‘작가의 글쓰기 방법’과 매우 비슷함을 알게 된다. 자신의 호흡을 세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호흡을 하며 내 이야기를 흘려보내기,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바라보는 것. 이 모든 수행의 과정이 작가가 글을 쓰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다 보면 배고픔이나 통증 같은 신체적 괴로움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계속 호흡에 집중하며 자신의 감정이 드나드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이제는 내 몸의 고통조차 예전과는 다르게 바라보는 능력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내 몸의 아픔을 지켜보며 타인의 아픔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 또한 커지게 된다. 타인과 나, 우리는 ‘고통’으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타인의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잘 경청하는 법을 배우면, 고통을 다루는 능력 자체가 크고 깊어지게 되며, 고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삶의 본질이 고통임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는 나의 이야기’를 바라볼 줄 아는 혜안도 열리게 된다.

브루노 베텔하임 지음, 김옥순·주옥 옮김, 시공주니어, 1998

◦ 우리가 수많은 이야기책에 열광하는 이유 알게 해주는, 『옛이야기의 매력』
나에게 그런 혜안을 가르쳐준 또 하나의 명작이 『옛이야기의 매력』(시공주니어)이다. 이 책은 우리가 수많은 이야기책에 열광하는 이유가 단지 지혜로운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마침내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임을 깨우쳐준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것 같은 상투적인 승자 독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침내 내면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변치 않는 감동을 주는 깨달음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교유서가, 2024

◦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환상일지라도 ‘이야기를 듣고,
만들고, 해석하는 일’의 소중함 잊어서는 안 돼, 『기억·서사』
나에게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됨을 가르쳐준 또 하나의 책은 오카 마리의 『기억·서사』(교유서가)다. 이 책은 기억이라는 것이 서사로, 이야기로, 내러티브로 짜여질 때 얼마나 많은 진실이 왜곡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어떤 ‘관점’을 전해주기 마련인데, 승자와 패자의 관점이라든지, 남성과 여성의 관점이라든지,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관점이라든지, 모든 것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의 관점은 이야기의 본성과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를 좌우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관점’으로 채색된 이야기의 색안경을 쓸 수밖에 없기에,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라는 것은 결국 너무도 순수한 환상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서사』의 핵심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해석하는 일’의 소중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 아름답고 찬란한 이야기의 힘에 다다르기 위해. 나보다 더 고통받는 자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이야기, 고통받는 이들 당사자의 피맺힌 이야기로 마침내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더 많은 이야기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들’에 다가가기 위한 읽기와 쓰기의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토록 수많은 스토리텔링의 홍수 속에서 정작 ‘내 삶을 대변하는 이야기는 없을까’라는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되며, ‘세상에 왜 이런 이야기는 없을까’라고 고민하는 작가라면 상상력과 관찰력과 묘사력을 발휘해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바로 그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마침내 우리의 불완전한 기억이 아름다운 서사로 영글어갈 때까지, 마침내 우리의 불완전한 기억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네트워크로 세상 끝까지 퍼질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이야기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정여울
작가.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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