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뱀과
공주탑 이야기
춘천 오봉산 청평사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국민 가요 ‘소양강 처녀’의 배경이 된 춘천에는 시문과 설화가 어우러진 사찰로 유명한 청평사가 있다. 고려 광종 24년(973년)에 창건된 청평사는 창건 이후로 한동안 폐사가 되었으나 문종 22년(1068) 춘천 도감창사로 있던 이의(李顗)가 옛 절터에 절을 다시 짓고 보현원(普賢院)이라고 불렀다. 그 후 이의의 장남으로 거사 불교를 일으키고 선을 공부하며 청평사를 중건한 이자현은 이곳에서 37년간 머물면서, 절 이름을 고려 문수원(文殊院)으로 개칭하고 주변 일대를 선원의 정원처럼 가꾸었다. 이 고려 선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불교 정원’이라 한다. 조선 명종 5년(1550) 허응당 보우대사가 머무르면서 개칭한 청평사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공주 짝사랑했던 청년 죽어 상사뱀으로 윤회 환생
중국 원나라 순제의 딸은 천하일색의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공주였다. 궁중을 출입하는 자들은 저마다 연정을 품고 있었지만, 신분의 차이가 있어 감히 마음을 표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한 말단직의 청년 관리는 궁전을 거니는 공주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짝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공주에게 사랑의 고백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마침내 상사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청년은 죽으면서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내 죽어서라도 몸을 바꾸어 그녀를 사랑하리라”고 맹세했다.
어느 날, 낮잠에서 깨어난 공주는 몸이 이상함을 느꼈다. 난데없이 뱀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공주를 짝사랑했던 청년이 죽어 상사뱀으로 윤회 환생했던 것이다. 머리는 배꼽 밑에, 꼬리는 하체에 붙어 있어 잠시도 떨어지질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과 왕후가 갖은 수단 방법을 동원해 뱀을 떼어내려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공주의 몸을 휘감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공주의 병이 심해지고, 상사뱀은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부왕은 마지막 방법으로 전국의 명산대찰을 순례하면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도록 했다. 공주는 부왕의 뜻에 따라 전국의 많은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참배하고 청년의 넋을 위로하며 지극 정성으로 부처님께 빌었다. 그래도 공주의 병은 낫지 않았다. 결국 공주는 부왕의 체면도 있고 해서 자신의 나라를 떠나기로 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 중국 여러 지역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사계절의 산색이 가히 천하 명산이라는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어 고려로 왔다. 그런데 금강산을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오봉산으로 갔다 도착한 곳이 지금의 청평사였다.
공주의 간절한 기도와 가사불사 공덕으로 상사뱀 공주와 인연 끊고 해탈
청평사 근처에 도착한 공주는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범종 소리가 들려오자 공주는 계곡물[공주탕]에서 몸을 정갈하게 씻고 절로 향했다. 청평천을 건너 회전문[佛門] 앞에 이르렀다. 그때 상사뱀은 공주가 걸음을 걷지 못하도록 유독 발광하며 요동을 쳤다. 10여 년 동안을 함께 있었지만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공주는 이상히 여기며 타일렀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 번도 너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가 좋아하는 절 구경을 못 하게 하느냐? 만일 절 안에 들어가기 싫거든 잠깐만 이곳에 떨어져 있어라. 그러면 내 속히 절 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너와 함께 가리라.” 이 말을 들은 뱀은 순순히 몸에서 떨어져 나와 넓은 바위 아래 똬리를 틀고 앉았다. 10년 만에 홀몸이 된 공주는 절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배를 드린 후, 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마침 밥때가 되어 스님들은 대중 방에 모여 있었다. 공주는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던 빈방을 발견했는데 그곳에는 아름다운 비단 조각과 바늘이 널려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옷인 가사[無上福田衣]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공주는 아무도 없는 그 방으로 들어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뜨며 가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부처님께 하소연하고 심경을 달랬다.
부처의 은덕에 감사하며 청평사에 삼층석탑 세워
하지만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섰다. 뱀이 절 입구에 도착해 회전문[佛門]을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벼락이 떨어졌다. 그러자 상사뱀은 검게 타 죽어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던 공주는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해 정성껏 묻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했던 청년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49재를 올리고 또한 백일 천도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 마지막 날, 공주 앞에 상사뱀이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간 함께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공주의 간절한 기도와 가사불사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했던 것이다. 마침내 상사뱀으로부터 해방된 공주는 부왕에게 자초지종을 아뢰었고, 부왕은 부처의 은덕에 감사하며 청평사에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삼층석탑이 일명 ‘공주탑’이다.
유사 설화와 달리 이곳 설화와 관련된 공주탑, 회전문, 공주탕 등과 같은 유적들이 존재함으로써 청평사의 전승력은 한결 의미 있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가사불사’의 공덕과 애틋한 사랑의 미학이 서려 있는 이 설화는 애욕과 집착으로 돌고 도는 윤회의 삶에서 벗어나 경이롭게 열리고 닫히는 원융회통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백원기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불교설화와 마음치유』,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사진|cheongpyeong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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