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화합의 길로서의 중도, 그리고 화쟁 사상|세대 갈등의 불교적 해법

세대 화합의 길로서의
중도, 그리고 화쟁 사상

박수호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교수


사회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며 갈등이 발생하는 층위도 천차만별
사회 갈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개인 사이의 사소한 감정적 갈등부터 국가 사이의 전쟁까지 갈등이 발생하는 층위도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 개인 수준에서 해결하기 어려워 사회적 차원의 개입이 필요한 갈등을 흔히 사회문제라고 한다. 사회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사회가 해체될 수 있으므로 모든 사회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일부 사회학 이론에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문제는 상대적이라서 바라보는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똑같은 현상이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 출산율이 높던 1960년대에 다자녀 출산은 사회문제였지만,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지금은 다자녀 출산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연령대에 따라 입장 상충하는 세대 갈등은 복합적이라 해법 단순하지 않아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낙서가 남아 있을 만큼, 세대 갈등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회문제로 여겨졌다. 이념 갈등과 계급 갈등을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취급하던 한국 사회에서도 2000년대 이후 세대 갈등이 주요한 사회문제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일자리와 연금, 복지 서비스 등 경제적 자원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갈등은 선거철이 되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기 일쑤이다. 세대 간 갈등 못지않게 같은 세대 내에서도 성별이나 계층에 따라 갈등이 존재한다. 얼핏 보기에는 연령대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이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대 갈등은 다른 어떤 사회문제보다도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세대 갈등의 해법이 단순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회문제 해결하는 방식으로 대증적 접근과 과학적 접근 있으나 둘 다 문제 남아
일반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증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증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해소에 집중한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가 일자리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 각 세대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지원을 하거나 두 세대가 일자리를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대증적 접근은 갈등의 원인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미봉책에 머물 수밖에 없다. 과학적인 접근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이럴 경우는 경제구조, 혹은 세대 간의 문화나 가치관 차이를 원인으로 보고 구조적 변화나 세대 간 이해를 위한 소통 등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학적 접근도 하나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 요인의 영향력을 동시에 고려하더라도 해결 방안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핵심적인 몇 가지 원인의 제거만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갈등의 원인 일부가 남아 있고, 또한 갈등하는 주체의 내적 원인보다는 갈등의 외부적 조건과 원인에만 주목하기에 과학적 접근도 절반의 실패를 피할 길이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세대 화합에 필요한 새로운 관점 정립할 수 있어…
중도의 가르침과 화쟁 사상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세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묘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분명히 경전 속에서 세대 갈등을 해소하는 여러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세대 갈등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경전 속에 나타나는 세대 갈등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현대 사회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세대 화합에 필요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할 수는 있다. 특히 갈등하는 주체의 내적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과학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의 원인이나 양상에 대한 진단에 따라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교사상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중도의 가르침과 화쟁 사상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세대 갈등은 대체로 기성세대와 미래 세대, 혹은 청년층과 노년층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기성-미래, 청년-노년 같은 세대 정의는 개념상 이항 대립으로 보이고, 불교에 관해 약간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쉽게 ‘중도’를 불교적 해법으로 떠올릴 것이다. 6년의 고행을 통해 극단에 치우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통해 극단을 여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중도의 가르침이 구체화되었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중도의 가르침을 세대 갈등에 적용하면 얼핏 제로섬(zero-sum) 상태, 다시 말해 갈등하는 모든 세대가 손해도 없고 이익도 없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애초에 자기 세대의 이익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충돌하는 세대 갈등 상황에서 이익도 손해도 없는 상태는 모든 세대에서 거부될 수밖에 없다. 자기 세대의 이익이 극대화되거나 모든 세대가 균등하게 이익을 얻지 못하면 세대 갈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도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 둘러싼 세대 갈등의 완화와
세대 화합의 계기 조성될 수 있을 것
따라서 세대 갈등을 넘어 세대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도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이해가 요구된다. 중도에서 극단을 여읜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여실하게 봄을 의미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인연을 따라 생멸하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집착은 나와 남, 유무 등을 구분하고, 무상한 본질을 가려버린다. 갈등하는 각 세대는 현재 상태를 고정된 것으로 인식한다. 미래 세대는 자신들이 곧 미래의 기성세대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영원히 현재 상태에 머무를 것이라고 착각한다. 중도를 인식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역지사지의 자세를 갖게 할 것이고, 기성세대에게는 비우고 떠남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둘러싼 세대 갈등의 완화와 세대 화합의 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대립과 분열 종식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한 화쟁의 논리는
각 세대 중심의 관점을 우리 모두의 관점으로 전환시켜
화쟁 사상은 또 다른 관점에서 세대 화합을 위한 접근법을 제공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하면서, 인도에서는 부파불교가 일어나고 중국에서는 종파불교가 부상했다. 부파불교와 종파불교는 불가피하게 교리 해석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초래했고, 원효는 불이 사상을 바탕으로 모순과 시비의 쟁론을 불식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견해를 회통하는 화쟁 사상을 제시했다. 따라서 화쟁은 대립과 분열을 종식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한 불교적 논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원효의 화쟁 사상은 변증법의 논리와 유사하다. 다만 서양의 변증법이 정과 반의 조율을 통해 합에 도달하는 논리라면, 화쟁은 정과 반이 근원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음을 밝힘으로써 둘의 동화를 통해 합에 이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갈등하는 각 세대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갈등을 대하는 관점 자체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 각 세대의 입장에서 진단하고, 도출한 갈등의 원인과 해법은 각자의 관점을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 해법이 아무리 다른 세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더라도 모든 세대에 평등한 결과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화쟁의 논리는 각 세대 중심의 관점을 우리 모두의 관점으로 전환한다. 각 세대가 불이의 존재임을 인식하는 순간 개별 세대의 문제는 모든 세대의 문제가 되고, 세대 갈등은 무의미해진다. 추구하는 해법의 지향점도 달라진다. 세대별 이해관계가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구조와 공평한 분배를 보장하는 제도를 추구하게 되고, 세대 간 문화 차이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상호 인정을 통한 화합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중도와 화쟁 사상이 그 자체로 세대 갈등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도와 화쟁 사상은 갈등하는 주체들의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세대 갈등을 대하는 관점과 자세를 변화시킬 뿐이다. 중도와 화쟁 사상에 기반을 둔 불교적 관점에서 세대 갈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그동안의 해법들을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나와 우리 모두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사회구조와 제도를 변화시켜야 비로소 세대 화합의 길이 열릴 것이다.

박수호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정보사회에서의 종교 변화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교수로 있다. 불교의 사상과 교리를 통해 서구 중심적인 사회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교사회학의 정립을 통해 불교와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학문적 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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