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감정 치유와 명상
김정호
덕성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감정’은 무엇이며 ‘기분’, ‘느낌’, ‘정서’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
심리학자의 어려움 중 하나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연구를 한다는 점이다. 물리학자들의 연구는 많은 경우 일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용어를 사용하고 정의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는 많은 경우 맥락에 따라 달라지거나 말하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감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분’, ‘느낌’, ‘정서’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 관련된 영어로 mood, feeling, affect, emotion 등의 용어가 있는데 번역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필자는 기분(mood), 느낌(feeling), 감정(affect), 정서(emotion)로 번역하며 정서를 좀 더 공식적 용어로, 감정은 좀 더 일상적 용어로 사용한다. 느낌은 불안, 우울, 분노 등의 특정한 정서로 규정되지 않는 정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기분은 일반적으로 정서보다 덜 구체적이고 특정한 사건이나 자극에 덜 영향을 받으며 정서보다 오래 지속하는 상태로 본다.
감정은 욕구의 상태를 나타내는데
명상이 욕구와 생각에 영향을 줌으로써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줘
감정은 동물도 느끼고 인간도 느낀다. 그러면 감정은 왜 느끼는 걸까?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갖춰진 것이다. 감정은 욕구의 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바로미터다. 욕구는 ‘동기’와 같은 의미의 일상적 용어다. 동기는 ‘목표’와 ‘목표를 이루거나 유지하고자 하는 추동력’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이, 인간도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다만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생물학적 욕구처럼 타고난 욕구 외에 살면서 다양한 욕구를 형성하고 추구하게 된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인정이나 존중을 보내고 받는 심리적 욕구는 타고난 욕구이기도 하지만 다른 욕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비중으로 추구되는지, 어떤 대상들과의 관계에서 추구하는지 등에 있어서 학습과 인지의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인간의 삶이 욕구 추구의 과정이기 때문에 욕구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나타내는 감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생각’이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인지’가 인간에게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특정한 욕구의 형성이나 소멸뿐만 아니라 욕구의 상태에도 인지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구가 좌절될 것으로 생각되면 불안이라는 부적 감정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그것을 제거하려는 행동, 즉 욕구가 좌절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첫 번째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은 욕구의 좌절로 우울이라는 감정을 일으키지만, 대부분 다음 대학 입시에서 합격이라는 욕구의 충족을 위해 매진한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 실패한 사건을 자꾸 생각하게 되면 우울한 감정이 지속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판단하는, 즉 인지 작용을 하게 되면 우울감은 더 깊어지고 일상에서 만연하게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감정의 치유, 혹은 감정의 관리에 욕구(동기)와 생각(인지)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부적 감정을 느낄 때 특정한 욕구와 생각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상은 욕구와 생각에 영향을 줌으로써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준다.
‘마음 수행’이라는 포괄적 개념 밑에 명상을 하나의 수행법으로 분류
여기서 명상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야 한다. 요즘 명상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알려지면서 항간에 상당히 많은 종류의 명상들이 소개되고 있다. 호흡 명상이나 설거지 명상, 걷기 명상 등의 행위 명상 등 전형적인 명상 외에도 감사 명상, 자비 명상, 죽음 명상, 부자 명상, 성공 명상, 다이어트 명상, 확언 명상, 자신감을 키워주는 명상, 글쓰기 명상, 그림 그리기 명상, 연필 명상, 그림책 명상, 숙고 명상, 성찰 명상 등 많은 명상을 접할 수 있다. 명상의 정의는 명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학자들도 명상의 정의에서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마음챙김을 명상의 일종으로 보는 측도 있고 명상과 동일어로 보는 측도 있다. 또한 마음챙김 자체도 수행자들이나 학자들마다 서로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명상의 개념과 관련된 문제는 대체로 명상을 지나치게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향에서 온다. 이것이 명상의 개념을 불명료하게 하고 명상의 연구와 교육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필자는 ‘마음 수행’이라는 포괄적 개념 밑에 명상을 하나의 수행법으로 분류한다. 이 밖에도 마음챙김 수행, 긍정 심리의 수행을 마음 수행법으로 분류한다. 명상 수행, 마음챙김 수행, 긍정 심리 수행은 간략히 정의하면, 각각 마음을 쉬고, 보고, 쓰는 마음 기술을 연마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명상과 긍정 심리는 욕구와 생각을 각각 쉬고 쓰는 수행법이다. 이렇게 보면 명상과 마음챙김은 서로 구분되는 수행법이며, 감사나 자비의 마음을 양성하는 수행법은 건강한 욕구와 생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명상 수행보다는 긍정 심리 수행에 속한다.
명상은 욕구와 생각을 쉬는 마음 기술이자 그러한 마음 기술을 연마하는 수행법
지면 관계상 명상, 마음챙김, 긍정 심리의 수행법 모두를 다룰 수는 없으므로, 본고에서는 명상 수행이 감정을 다스리는 데 주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한다. 명상은 욕구와 생각을 쉬는 마음 기술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한 마음 기술을 연마하는 수행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감정은 나쁜 것이 없다.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마음의 요소다. 문제는 동기의 좌절이나 좌절 예상을 나타내는 부적 감정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오래 지속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다. 혹은 주어진 상황을 불건강하게 인식함으로써 부적절하게 동기 좌절이나 동기 좌절 예상의 부적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명상은 부적 감정을 일으키고 키워주고 지속시키는 생각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감정은 일종의 불로 비유할 수 있다. 불은 계속 타지 않는다. 연료가 떨어지면 소멸한다. 감정의 불도 마찬가지다. 연료가 없으면 사그라든다. 그러면 감정의 불에 연료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생각이다. 특히 특정한 감정 상태가 되면 그것과 관련된 기억이 더 잘 떠오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기분 일치성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니 화가 나서 부부싸움을 할 때 배우자가 잘해주었던 것은 눈곱만큼도 떠오르지 않고 서운하게 하고 화나게 한 기억들만 샘솟듯이 떠오른다. 그럴수록 더 화가 나고 또 그럴수록 부정적인 기억들이 더 잘 떠오르게 된다. 불안도 마찬가지고 우울도 마찬가지다. 불안한 사람은 불안한 기억이,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기억이 더 잘 떠오른다. 또 불안한 사람은 안전의 욕구가 지나치게 커서 늘 불안과 관련된 정보에 더 많은 주의를 보내고 더 많이 기억하게 되어 불안이 더 커지고 더 오래 지속하게 된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 관련 정보를 더 많이 처리한다. 감정적인 어려움을 갖는 사람들은 부적 감정과 관련된 생각을 ‘반추’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명상은 이러한 생각들을 쉬게 함으로써 반추의 습관을 소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명상의 효과로 해서 최근에는 상담이나 심리 치료에도 명상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이기에 생각을 쉬게 하는가?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안 하려고 하면 더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렇다. ‘정신 역설 효과’라고 해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떠오른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하얀 북극곰을 단 30초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부탁한다면 성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렇다면 생각은 어떻게 쉬는가? 그것은 마음의 특성 중의 하나인 ‘정보 처리 용량 제한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인간도 정보 처리를 하는 존재이므로 정보를 처리함에 있어서 컴퓨터처럼 용량이 제한되어 있다. 즉 정보 처리를 위해 한 번에 동원할 수 있는 정신 자원에 제한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용량 제한은 인간의 작업 기억 용량은 ‘7±2’라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명상에서는 생각이 아닌 것을 의식 공간에 들여온다. 즉 훈련을 통해 감각에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제한된 정신 자원을 투여하는 것이 주의인데 감각에 주의가 가게 되면 다른 것에는 그만큼 주의가 적게 가게 된다. 탁 트인 도로에서는 옆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운전할 수 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는 운전에만 집중하게 되고 옆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 제한된 정신 자원을 두 가지 일에 나눠 사용하면 두 가지 일에 동원되는 정신 자원은 제로섬(zero-sum) 관계에 놓이게 되므로, 한 가지 일에 많이 집중하면 다른 일에는 정신 자원이 거의 투입되지 않는다.
명상은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이 배워야 할 필수적인 마음 기술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호흡 명상은 호흡 감각에 주의를 둠으로써 생각을 쉬게 한다. 일명 보디 스캔으로 알려진 몸 명상은 몸의 감각에 주의를 보냄으로써 생각을 쉬게 한다. 호흡 명상이나 몸 명상도 좋지만, 필자는 행위 명상을 많이 권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행위 명상은 일상에서 특별히 시간을 내지 않아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면도할 때, 요리할 때, 식사할 때, 설거지할 때, 이 닦을 때, 화장할 때, 청소할 때, 걸을 때, 샤워할 때 등 일상에서 매일 하는 행위를 할 때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즉 행위에 따른 감각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감정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특정한 부적 감정과 관련된 생각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일상의 행위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불건강한 생각을 반복한다. 이러한 일상의 행위는 매우 숙달된 행동이라서 적은 정신 자원만을 사용해도 되므로 남아도는 잉여 정신 자원이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잉여주의’가 생각으로 투입되는데, 감정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불건강한 생각의 반추를 하게 된다. 결국 스스로 불건강한 생각을 매일매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따로 시간을 내서 특정한 상황에서만 생각을 쉬는 훈련을 하는 호흡 명상이나 몸 명상과는 달리 행위 명상은 매일 하게 되는 행위를 통해 생각을 쉬는 기술을 꾸준히 훈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명상은 감정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치유에도 사용되지만, 누구나 명상을 통해 욕구와 생각을 쉼으로써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다. 명상은 스트레스 많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배워야 할 필수적인 마음 기술이라고 하겠다.
김정호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심리학회장, 대한스트레스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덕성여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한국건강심리학회 산하 MMPT 연구회 회장, 서울 심리지원동북센터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명상·마음챙김·긍정심리훈련(MMPT) 워크북』, 『마음을 공부해야 행복하다』,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 등이 있고, 공역서로 『받아들임』, 『긍정심리학』, 『행복심리학』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