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2023년 캠페인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

옷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정주희
기후 캐스터


환경 다큐멘터리가 나를 바꿨다
내 카드 값의 30~40%를 차지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의류’였다. 예쁘니까 사고, 할인하니까 사고, 싸니까 사고, 지금 유행이라며 사고, 계절이 바뀌었다고 사고, 월급 받았다고 사고, 기분 전환한다고 사고, 여행하러 간다고 사고, 여행하러 가서 또 사고… 그렇게 옷을 사면 그에 맞춰서 신발도 사고, 가방도 사고….

나는 비싼 명품 브랜드 의류를 사는 게 아니니까, 명품 옷이나 가방 대신, 비교적 저렴한 옷 여러 개 사는 것은 괜찮다며 그렇게 합리화하고는 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이 지구의 관점에서는 ‘해충’ 같은 존재였다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KBS 환경 다큐멘터리인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보기 전까지는.

나는 단 한 번도 옷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옷’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생각해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보고,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더 이상 합리화하지 않고, 올바르고 환경을 위한 옷을 입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보니, 그동안의 내 의류 소비는 그야말로 빵점이었다.

알고 보니 티셔츠 한 장은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페트병처럼 그것이 재활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이 우리 눈에 명확하게 안 보이니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석유화학공장에서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에틸렌’과 ‘파라자일렌’이 페트병의 원료인데, 이것을 틀에 맞추어서 사출을 하면 병이 되고, 방사 기술로 실을 뽑아내 옷을 만들면 폴리에스터 티셔츠가 된다. ‘합성’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전부 플라스틱이었다. 합성섬유, 합성고무, 합성수지…. 이 중 옷은 합성섬유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대부분은 모두 합성섬유, 즉 플라스틱을 입고 있다. 플라스틱은 단단한 고체 형태의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플라스틱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에 1차로 놀랐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내가 버린 옷들의 향방이었다. 유행이 지난 옷, 작아진 옷, 입지도 않으면서 언젠가 살 빼면 입을 거라 생각하면서 옷장만 차지하던 옷들을 이사하면서 헌 옷 수거함에 굉장히 많이 넣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면 당연히 누군가 입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통해 알게 된 바에 의하면, 헌 옷 수거함에 모인 옷들의 95%가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지만 실제 현지에서는 팔리는 옷보다 팔리지 않는 옷들이 훨씬 많으며, 안 팔리는 옷들은 바로 버려졌다. 강으로 바다로 땅으로. 그렇게 버려진 옷들이 썩지도 않고 쌓여서 거대한 옷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나의 ‘오다우강’은 이곳이 정말 강이었나 싶을 정도로 물이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옷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옷 쓰레기 더미 위를 헤매며 합성섬유 조각을 먹고 있는 배고픈 소의 모습이었다. 정말 해괴하고 기괴했다.

흰색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들려면 2,700ℓ의 물이 든다. 이건 한 사람이 3년간 마실 물의 양이다. 청바지 한 개가 만들어질 때 나오는 탄소는 33kg. 이는 자동차가 111km 이동할 때 배출되는 탄소와 같은 양이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물과 공기 등 많은 자원이 들어가지만, 옷의 수명이 길지 않다. 이유는 패스트 패션, 과잉 생산, 과잉 소비 때문이다.

이 영상을 본 후, 그간의 나의 옷 소비 행태에 대해 정말 깊이 반성했다. 옷장에 옷이 그렇게 가득 차 있으면서도 왜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댔을까?

고백하건대, ‘이 옷 입은 거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렸으니까 새 옷 사야지’라는 마음으로 옷을 산 적도 많았다. 곱씹어보니 나는 남의 평가나 반응에 촉각을 세워서 옷을 구매했던 셈이다. 내가 옷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했다는 사실이 지구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사람은 ‘해충’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책임지지 않는 풍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이후, 나는 옷 보기를 돌같이 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필요한 옷은 사야겠지만, 옷을 살 때마다 오래 입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유행을 좇는 패션에는 눈을 두지 않게 되었다.

새것 사지 말고, 있던 것도 다시 보자…리폼하는 재미
옷 소비에 대한 잣대가 생기다 보니, 다른 소비를 하게 될 때도 내가 진짜 필요해서 사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허기가 져서 사려고 하는 것인지 ‘자체 검열’을 하게 되었다.

옷이나 가방 등은 기본 아이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그러다 보니 남들은 내가 뭘 입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옷차림에 대해 신경 쓰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렇게 작년부터 옷 소비를 줄였더니, 카드 값이 30~40%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몇 번 입지도 않을 옷을 사는 것이 환경에는 무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또 하나 바뀐 점은 ‘리폼’에 눈을 떴다는 거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옷장에는 몇 십 또는 몇 백씩 주고 샀는데 시간이 지나 촌스러워져서 입지 않는 옷들이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을 가졌던 나는 그런 옷들이 꽤 있었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입기에는 너무 촌스러워 보이는 것들. 그 옷들을 리폼하는 가게에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물론 리폼은 손이 많이 가 때로는 새로 사는 가격보다 더 비싸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버리기 아까운 옷을 새롭게 재창조해서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온리 원, 나만의 옷으로 탄생시키는 데 드는 돈이므로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가장 추천하는 것은 안 입는 청바지를 앞치마로 변신시키는 일이다. 옷의 재발견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시도였다. ‘새것 사지 말고, 있던 것도 다시 보자.’ 리폼을 시작하며 내가 만든 슬로건이다. 옷 리폼은 기존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라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 추천하고 있다.

쇼핑에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 줄며 내면의 성장에 집중
처음에는 환경을 위해 옷 소비를 줄이자고 마음먹은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긍정적인 변화도 생겼다. 쇼핑에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줄자, 그것을 다른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었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 시간을 늘렸는데, 그러다 보니 내면의 성장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정말 중요한 건 보여지는 게 아닌 내 안에 쌓이는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옷은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가난해지는 내 통장도 책임지지 않는다. 나날이 황폐해지는 지구도 옷의 책임은 아니다. 한순간의 만족만 줄 뿐이다. 옷장을 가득 채운 옷을 두고도 입을 게 없다고 투덜거렸던 것은, 그 많은 옷이 바로 책임지지 않는 풍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과는 다르게 조금은 넉넉해진 통장을 보는 일은 지구를 위해 더는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나의 뿌듯함은, 리폼을 통해 제품의 사용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나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풍요롭게 한다. 이 풍요로움을 위해서라면 나는 언제나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주희
2014년부터 2020년까지 SBS 기상 캐스터로 활동했다. 현재 기후 캐스터로서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제로마켓/제로식당’ 진행 및 세이브 더 칠드런 ‘아동권리와 기후위기 컨퍼런스’ 연사 등 기후변화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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