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행복을 위한 수행에서 보리심을 위한 수행으로, 마이트리아 타라하우스 | 현대 수행센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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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과 보리심의 길로 안내한다


풍요롭고 역동적인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공(空)
티베트 불교에 관한 그의 법문에서 누군가 이 같은 질문을 했었다.

“사물의 고정된 실체가 있는지 관찰하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공은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드는 한편 정해진 속성이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꽉 찬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달라이 라마의 시를 유독 사랑하고 유머가 넘치는 그는 법상 앞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작은 책이지만 수많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아마도 이 종이는 브라질의 열대우림에서 자란 나무에서 온 것일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 나무는 수천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옥한 토양에서 자랐을 겁니다. 열대우림에는 매일 비가 오죠. 이 책에서 그 비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적도의 태양이 발산하는 뜨거운 열기도 담겨 있어요. 그 태양은 주기적으로 우리 은하의 중심부를 회전하고 있고, 은하는 태양과 같은 수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졌죠. 이 책에는 그 별빛들이 깃들어 있고, 별들은 중력장을 만들고, 중력장은 시간과 공간을 왜곡합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왜곡된 시간과 공간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마치 책 내면으로의 여행을 이끄는 가이드이자 연금술사와도 같은 그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그의 손에 들린 책은 전 우주를 반영한 것이었고, 그것은 곧 공이고 연기였다.

“그래서 제 스승 중 한 분은 ‘공은 풍요롭고 역동적’이라고 말씀하셨죠.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물은 그 어떤 것으로도 발전할 풍부한 가능성이 있어요. 공은 실체의 결핍이자 무한한 잠재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양에서 법문할 때는 공(emptiness)이라는 말보다 무한(infinite)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공성 명상은 백 개의 자아를 죽이는 산과 같은 무기
공을 이해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공을 분석하고 사유한다 해서 진정 이해할 수 있는가? 등과 같은, 그 당시엔 하지 못한 질문을 이제야 그에게 새삼 하게 된 것은 티베트 불교의 법문이나 수행에서 유독 강조하는 것이 공(공성)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온갖 명상법이 12첩 반상처럼 차려진 탄트릭 기도문 안에는 ‘공 명상’이 마치 밥상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될 김치와 같은 메뉴처럼 올라와 있다. 귀의발보리심과 사무량심 다음으로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공 명상인 것이다. 나 자신을 포함한 만물이 가슴 가운데로 녹아들어 정광명에 머무는 상태라니…. 형이상학적이어도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그 상태를 아무리 짐작하고 상상해봐도, 공 만트라를 아무리 중얼거려봐도 당최 실감할 수 없는 공의 맛을 대체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모든 문제는 이원적으로 인지하고 경험함으로써 자아와 현상의 본질을 모르고 오해하는 데서 나옵니다. 3대 달라이 라마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물에 비치는 달과 같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그것을 진짜 달로 생각하고 기분 따라, 날씨에 따라서도 다르게 보지만 공성을 공부하는 사람은 하늘에 뜬 진짜 달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개념으로 뇌가 가공한 것을 실체로 생각하지만 실체는 그 모습대로 존재하지 않아요. 7대 달라이 라마는 공성에 대해 백 개의 자아를 가진, 그런 자신을 죽이는 산 같은 무기라고 하셨죠. 분별심을 기반으로 한 자비심은 반드시 한계가 따르기에 공성을 날개처럼 달고 수행해야 합니다. 마음을 공성에 두되, 부정적 생각과 행위에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이 세상에 벌어지는 것들에도 관심 있게 주시하면서 양쪽 모두에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결코 유쾌함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라마, 글렌 멀린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이 같은 조언과 당부도 곁들였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 작은 책처럼 우주 전체를 반영하고 있고 영향을 받고 있죠. 따라서 우리 자신이 우주와 분리되었다는 느낌 또한 환상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공하다는 것은 우주에 퍼져 있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상호의존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들이라는 뜻이에요.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더는 고독할 수 없게 됩니다. 어디에 있든지 우주와 함께하기 때문이죠. 공을 이해할수록 모든 것 속에 녹아 있는 수많은 상호관계를 읽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온전해지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연기, 공을 가르친 겁니다. 자, 마음을 자유로운 상태로 두기 시작하고 명상으로 깨어나세요. 이 세상을 춤추며 돌아가는, 실체 없는 꿈처럼 보세요. 마음이 창조해낸 환영으로 보세요. 이 세상 모든 도시와 마을을 어떤 마술사가 만든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이 소리를 반사되는 메아리로 듣고 (…) 이렇게 인식하다 보면 공성이 드러날 테니까요.”

줌을 통한 글로벌 법문과 고통을 함께 치유하는 ‘정광명 클럽’
글렌 라마의 법문에는 오래된 시(이야기)와 유머가 따른다. 그래서인지 유쾌함과 따스함이 있다. 그는 마치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와 함께 지혜를 실어 나르는,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과도 같다. 탄트라 명상지도자이며 티베트 불교 학자인 그는 캐나다 출신으로 1972년에 다람살라로 건너가 달라이 라마의 제자가 된 이래로 달라이 라마의 전생 스승들인 깝제 링 도르제창, 티장 도르제창을 비롯해 라마 툽텐 예세, 라마 조파 등 티베트 불교의 주요 스승들을 모시고 불교 교학과 수행을 지도받았다. 이후 다수의 불서를 연찬했는데 30여 권의 그의 역저서는 아마존 명상 서적 분야 베스트셀러로 영어 외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신비한 환생의 유산, 위대한 지도자』를 비롯해 『보석 같은 지혜』, 『위대한 길에서 마음닦기』 등이 있다. 현재 그는 고령에도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온·오프라인 법문과 수행 지도를 통해, 불교 서적 집필을 통해 법을 전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여러 명상 센터와 사찰 등에서 법문과 로종 관련 안거를 이끌기도 했는데, 처음 그 계기가 된 것은 일찍이 한국 승려로 출가해 16년간 수행을 했고 인도와 히말라야 불교와도 인연이 깊은 청월이라는 제자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신라 불교의 통합주의적 성격을 되살려야 한다며 여러 차례 법문을 청했고, 그것을 계기로 한국 첫 방문이 이뤄지면서 현재는 그의 법맥을 따르는 상가인 마이트리아 타라하우스가 운영되고 있다.

“수행 성격상 규모가 크진 않지만 줌을 통해 라마님을 모시고 각종 탄트릭 가르침과 관정식을 비롯해 예비 단계의 현교와 4단계의 밀교 수행을 하고 있어요. 일요일 오전엔 한국인 수행자들을 포함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법문을 듣는데, 최근엔 라마님이 폴란드에 머물고 계셨어요. 그 나라 시간으로 새벽 3시였고 앞서 다른 법문이 있었는데도 피곤한 기색 없이 법문을 해주셨죠.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상대가 원하면 법연을 맺고 겸손하게 자리를 지키며 어디에서든 지도해주시는 모습에서 항시 수행자로서의 영감과 감동을 받게 됩니다.”

타라하우스를 책임지고 있는 청월 님은 일요 법회의 진행과 통역 외에 평소엔 ‘정광명 클럽’이라는 줌 모임을 만들어 매일 아침과 저녁, 상가의 회원들과 아미타유스 수행을 하고 있다.

“아미타유스는 건강과 장수, 풍요를 가져오는 밀교의 대표적인 치유 수행입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상가 내 건강이 좋지 못한 분을 초대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죠. 한 수행이 끝나면 라마님의 허락과 관정하에 또 다른 수행을 돌아가며 진행하고 있어요.”

개인의 행복을 위한 수행에서, 보리심을 위한 수행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수행자들이 모인 ‘정광명 클럽’에는 20~40대의 젊은 층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게 된 계기는 남다른 데가 있다. 서재경 님(30대, 쉐랍 도르제)의 경우는 해외 티베트 불교 단체인 라마 조파 린포체의 FPMT와 라마 예쉐 닷컴과 먼저 인연이 닿아, 한국에도 이들 린포체의 법맥과 같은 수행 단체가 있다는 정보와 함께 타라하우스를 소개받아 수행을 하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인 친가의 영향으로 어릴 때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는 장윤화 님(30대, 잠파 라모)은 20대 후반에 어머니의 권유로 어느 티베트 린포체의 법문을 듣고 ‘인생은 고통이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수행의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수행하면서 뭔가 보인다든지 자각몽을 계속 꾼다든지 하는 변화를 겪으면서 꿈에서 무얼 해야 할지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그것에 답해줄 수 있는 분을 몇 년 동안 찾아 헤매다 타라하우스를 알게 되어 본격적인 수행을 하게 되었죠. 이젠 궤도를 바로잡았다고 할까요.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마음껏 창조해 놀던 자각몽 단계에서 벗어나 내가 단지 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란 걸 깨달았죠. 수행은 죽어서도 갖고 갈 든든한, 비빌 언덕 같아요.”(웃음)

수행으로 인한 변화는 비단 자각몽에서만은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시야가 넓어지며 변화가 일어났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갖게 되었다.

“처음엔 수행한 내용을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웠어요. 가령 수행 지침에는 내게 좋지 못한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수행의 일환으로 삼으라 하는데, 사회생활에서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면 감정 기복이 생겨 적용이 안 되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내게 고통을 주는 저 사람 역시 괴롭고, 모든 게 마음 내기에 달렸다는 걸 인지하니 동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더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어요.”

20대인 박규원 님(20대, 츄케 라모)은 건강을 위해 수행하게 된 경우다.
“아버지께서 건강을 위해 티베트 불교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죠. 제가 또 꿈을 많이 꾸다 보니 꿈 요가를 배우는 것도 좋겠다고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일단은 마음이 이완되고 혈액순환이 되면서 차가웠던 몸이 따뜻해졌어요. 마음이 이완되어 있으니 직장 생활에서도 상황 판단과 행동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시작은 제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수행이었지만 이젠 보리심과 깨달음을 위해 수행합니다.”

그녀의 말에 ‘나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데 누굴 위해 깨달으란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 보리심이란 용어조차 거북스러워하던 때가 떠올라 뜨끔해진다. 그땐 어찌 몰랐을까. 공의 지혜로 바라보면 나도 너도 그 무엇도 따로 존재함이 없다는 것을….

함영
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출판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곰탕에 꽃 한 송이』, 『노란 문 공양간이 열리면』,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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