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을 찾아오는 졸업생들을 보면 불연(佛緣)에 그저 감사하다 | 나의 불교 이야기

아이들이 당당한 불자로
성장하는 데 마중물이 되기를

백미나
청담고등학교 교법사


나는 불교와의 인연에 감사하는 교법사
나는 교법사로 불교종립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친다. 매일 아침 예불을 올리며 ‘저와 인연 맺은 학생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내가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기’를 발원한다. 학교 법당은 수업 외에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 틈만 나면 친구들과 달려와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로 채워진다. 학교 법당은 아이들에게 법회를 보는 장소이고 교실이고 놀이터인 소중한 곳이다. 졸업 후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하며 법당을 찾아오는 졸업생들을 보면 불연(佛緣)에 그저 감사하다.

부모님과 두 명의 스승은 아이들과 고전분투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의 불교 길잡이
내가 불교를 처음 접한 것은 독실한 불자이신 부모님과 두 분의 스승님 덕분이다. 1995년 이름도 생소한 객사리,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의 아이들 모습은 또래보다 두세 살 많고 흉터를 자랑삼는 입도 행동도 거칠고 머리 스타일, 옷차림이 다소 충격이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교무실은 항상 혼나는 아이들로 넘쳤고 그런 아이들을 법당에서 만났다.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오갔지만 아이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아이들이 궁금해졌고 감히 도시 아이들처럼 문화 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불교학생회 활동을 위해 법당에 오는 아이들에게 법당 예절을 가르치고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끌고 주말마다 사찰 순례를 가고 방과 후에는 인성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처음 어른이 데려가는 소풍이라고 했다. 나는 성격이 까칠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탓에 부모님의 걱정이었고 욕심이 많아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극성맞은 딸이었다.

어린 시절 미국인 목사가 원장님인 감리교 유치원을 다녔는데 매번 기도로 시작하는 간식 시간이 이해되질 않아 혼자 눈뜨고 있던 다소 영악한 어린애였다. 유치원이 끝나면 5분 거리의 절에 달려가 스님을 부르며 책이 많이 꽂힌 서재에서 놀았다. 엄마를 따라 어릴 때부터 다녔던 절은 지암 스님께서 말년에 세운 동명사라는 암자였는데 호랑이 수염을 하신 주지 스님은 어린 내게 부처님 이야기와 함께 광주에 불교 학교가 있으니 크면 거기 가서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법회 때마다 칠판 가득 써주신 『반야심경』을 외우고 『천수경』에 나오는 한자를 배웠다. 열정적인 스님 덕분에 방학이면 소금강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월정사, 등명낙가사, 구룡사, 법흥사 등 사찰 순례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초기 청소년기를 보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고전분투하는 내 모습은 어린 시절 스님께서 보여주신 모습 덕분인 것 같다. 또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잊을 수 없는 분은 대학교 은사이신 권기종 교수님이다. 교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정이 많은 분이셨다. 작은 일도 칭찬해주셨고 질문에는 항상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셨다. 교수님 덕분에 불교 공부가 좋았다. 부루나 존자가 계신다면 우리 교수님이 아닐까 싶다. 교수님께서는 진로를 고민하는 내게 다른 것보다 학교에서 청소년을 가르치는 것을 추천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정확히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많은 제자 중 하나인 내게 항상 자상하셨고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분이다. 학교에 부임할 때부터 힘들 때마다 교수님을 떠올리면서 세련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아이들을 대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생활 28년 차… 아이들이 당당한 불자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서원 세워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특성화고등학교다. 청소년기에 갖춰야 할 생활 예절, 습관은 물론 공부엔 도통 관심이 없고, 수없이 교칙을 어겨 선도위원회에 30~40명씩 올라오고 어려운 형편으로 진로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업 전 마지막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고 법당에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게 해주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 여기고 동분서주해왔다. 지금도 아침 예불에 참석하는 아이들에게 간식 타임을 빙자한 아침밥 먹이기를 한다. 점심시간, 방과 후에도 아이들은 법당을 찾는다. 법회를 보고 목탁을 치고 『반야심경』을 암송하게 하고 칭찬 선물을 준다. 물론 『반야심경』을 모두 외운 아이들은 손꼽으나 시작이 반이니 졸업할 때까지 암송하라고 한다. 생일 법회를 하고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이고 여름에는 아이스티, 겨울에는 핫초코. 지금도 법당 냉장고는 아이들이 주인이고 간식을 채워주는 것이 법사의 몫이다. 파라미타 활동을 통해 청소년 캠프, 뮤지컬, 영화 관람 등 법당에서 문화 체험을 한다. 도반 스님의 절에 가서 자체 수련회도 하고 쏟아지는 별을 보고 미래의 자기 소원도 이야기한다. 지역 동아리 축제에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체험 부스를 꾸릴 수 있게 변했다. 카네이션 바구니, 과일청 만들기, 천연 비누 만들기를 하고 이를 복지관에 나눴다. 아이들 스스로 보시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원봉사 선생님도 생기고 불교진흥원처럼 활동을 후원해주시는 곳도 있다.

가족 여행 한번 못 가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은 적 없던 아이들이 당당해지고 자존감이 생긴 것이다. 초임 법사 시절 종립학교 수련회에 참가하는 우리 아이들은 겉모습부터 요란하고 강한 포스를 뽐내 다른 아이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았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수련회가 끝날 때까지 밤새고 돌아와 녹초가 된 기억들. 습이 되어 지금도 외부 활동을 가면 철야는 기본이다. 지인들이 도량석을 하냐며 농담도 한다. 그랬던 아이들이 지금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알고 의젓하게 변했다. 28년 차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더없이 관대해진 나를 발견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달려오는 저 소중한 아이들이 교법사와 친구들과 법당에서 보낸 학창 시절을 자기 인생의 한 부분으로 기억하고 어디서든 본래 모습 그대로 당당한 불자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그리고 내가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마음은 그림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다 그린다(心如工畵事 能畵諸世間)는 『화엄경』 말씀처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법문을 항상 간직하며 부처님 제자로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불자라서 행복하다.

백미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전문상담교사 1급, 청소년 명상힐링 지도사 1급 자격을 취득했으며 전국교법사단 단장을 지냈다. 현재 청담고등학교 교법사로 재직하며 (사)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경기남부 사무처장을 맡아 청소년 교화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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