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의 백신은 명상이다 | 최고의 건강관리, 불교에 답 있다

명상으로
마음 건강 지킬 수 있다

문일수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의과대학 교수


‘코로나 블루’ 팬데믹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마음 건강이 얼마나 취약한지 경험했다. 어울리지 못하고 물리적, 정신적 거리가 멀어져 외톨이가 되어 외로움을 감내하는 것이 어려웠다. 코로나 팬데믹은 끝났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코로나19 국민정신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감소하고 있지만, 우울과 자살 생각 경험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습관이 되어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 또한 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은 ‘코로나 블루(Corona Blue)’ 팬데믹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에 대한 불안과 무거운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겪는 우울감 또는 불안감을 ‘코로나 블루’라 한다.

이제 코로나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더라도 정신적 건강의 위해 요소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제4차 산업사회는 ‘언택(untact, 비접촉)’을 더욱 확산시킨다.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의 활용으로 온라인 생활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럴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인간의 정서는 일반적으로 어둡고, 스산하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마음의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왜일까? 우리의 먼 조상의 삶을 생각해보라. 늘 사나운 포식자가 나타나지 않는지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자칫 경계를 놓치면 잡아먹힌다. 우리 조상은 주변 환경에서 산재하는 위험 인자에 대한 민감성을 발달시켰다. 바로 뇌의 편도체이다. 편도체가 만들어내는 경계심과 불안감은 인류의 존재 지속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부정적 심리 현상을 낳는다. 지금은 옛날같이 위험한 환경이 아닌데도 쓸데없이 경계하고 불안해하는 습관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편도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편도체는 감정 중추로서 인간의 풍부한 감정과 느낌을 불러일으켜 우리의 삶을 우아하고 다채롭게 물들이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존재 양식(Being Mode)의 삶 vs. 헐레벌떡 양식(Doing Mode)의 삶
코로나 블루 대처 방법으로 ‘가벼운 운동 또는 산책’을 선택한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그다음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 개발’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었다. 설문에서 ‘명상’은 선택지에 없었다. 그것이 답인데도 말이다. 외로운 언택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불안감과 외로움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는 마음 운동이다. ‘명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은 모습을 떠올린다. ‘에이,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바쁘다 바빠.’ ‘Doing Mode’의 삶이다. 추구(doing) 양식의 삶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쉽게 표현하면 ‘헐레벌떡 양식’의 삶이다. 눈앞에 닥친 일을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삶이다.

하지만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명상의 본질은 ‘깊은 길’을 가는 것이다. 목표는 깨달음이다. 무아, 평정심, 사랑 가득한 현존(現存), 편향 없는 연민심과 같은 고도로 긍정적인 특성들을 함양하고, 내적인 자유를 얻는 것, 즉 ‘해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비잉 모드(Being Mode)’의 삶이라 한다. 굳이 번역하자면 ‘존재 양식’의 삶이다. 이는 ‘나’를 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지금·여기에서 명료하게 깨어 있는 ‘현존(現存)’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 해방되고, 나아가 모든 사람·존재에 대한 사랑 가득한 관심을 갖는 삶이다.

‘존재 양식’의 삶은 고결한 행복(Eudaimonic Well-being)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는 탐욕에서 벗어남에서 오는 출리락(出離樂), 욕망에서 멀리 떠남에서 오는 원리락(遠離樂), 평화로운 마음 상태인 적정락(寂靜樂), 올바른 깨달음에서 오는 정각락(正覺樂)이다. 붓다는 ‘이러한 종류의 즐거움은 추구되어야 하고, 수행되어야 하고, 증가되어야 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맑은 행복감’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반면에 추구 양식의 삶은 쾌락적 행복(Hedonic Well-being)을 추구하는 삶이다. 감각적 쾌락에 의존하는 애욕락(愛欲樂), 부정락(不淨樂), 범부락(凡夫樂), 세속락(世俗樂)이다. 이는 ‘탁한 행복감’이다. 붓다는 이러한 종류의 즐거움은 멀리하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최근의 연구는 고결한 삶은 염증을 줄이고,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유전자 및 항체를 생산하는 유전자들의 표현을 증가시키고, 쾌락적 삶은 반대로 나타났다. ‘탁한 행복’은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코로나 블루’를 위한 백신, 명상
다양한 명상 방법이 있지만 밑바탕에 깔린 핵심은 사띠(sati, 알아차림)이다. 팔리(Pali)어 sati는 염(念)으로 한역된다. ‘念’, 즉 지금[今]의 마음[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띠는 드론과 같다. 드론을 띄워놓고 나의 마음과 행동을 관찰해 실시간으로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 사띠의 기능이다. 결국 사띠는 분석·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의 마음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림하는 마음 운동이다. 명상을 하기 위해 꼭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을 필요가 없다. 명상을 행위 형태로 분류하면 앉아서 하는 앉기 명상(좌념), 걸으면서 하는 걷기 명상(행념), 생활 전반의 행위에 알아차림하는 생활념이 있다. 생활념에는 식사를 하면서 하는 공양념, 누워서 하는 와념 등도 포함된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언제든지 알아차림만 하면 훌륭한 명상이다.

왜 명상을 하라고 할까? 사띠 수행[알아차림 명상]은 사띠(알아차림)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명상인 ‘들숨날숨 호흡 수행’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서 알아차림하지 않는가. 근육운동이 근육을 발달시키고, 에어로빅이 심폐 기능을 발달시키듯 사띠 수행은 알아차림 기능을 발달시킨다. 뇌과학으로 보면 사띠는 인지 기능에 속하기에 사띠 수행은 인지 조절 신경망의 기능을 강화시킨다. 인지 조절 신경망이 강해져서 알아차림이 잘되면 마음을 잘 조절할 수 있다. 예로써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림하면 화를 멈출 수 있다.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가 올라오는 것을 아는 순간 화는 멈춘다. 우울과 불안도 마찬가지다. 나의 마음이 우울함을 알면 ‘어, 내가 왜 우울하지?’ 하고 빠져나온다. 그렇지 못하면 우울의 넝쿨에 사로잡히고 만다.

명상은 현존하는 삶을 영위
이처럼 사띠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기는 마음의 힘이다. 따라서 사띠 수행은 마음 근육, 마음 탄력성, 마음 에너지를 키우는 마음 운동이다. 마음은 본질적으로 인식 대상의 속성을 따라 이어가게 되어 있다. 연관된 마음을 만드는 뇌신경 회로가 서로 연결되어 연관 신경망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하면 대략 10초마다 다른 생각이 일어나는데, 보통은 어떤 생각과 연관된 생각이 이어진다. 누구나 살면서 괴로움을 주는 화살을 맞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붓다는 두 번째, 세 번째 이어지는 연관된 화살을 맞지 말라고 했다. 마음이 한 존재에 머무르면 그 존재에 꺼둘린다. 그 존재에 사로잡혀 마구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디 그렇게 존재[대상]에 머무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선종 육조(禪宗六祖) 혜능(慧能)을 깨닫게 했다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다.

명상으로 사띠 힘이 커지면 자신을 온전히 성찰하며 현존(現存)하는 삶, 존재 양식의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존재에 끌려감에서 생겨나는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문일수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서 유전공학 석사, 캐나다 UNB 생물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칼텍(CalTech)에서 뇌과학을 연구했다. (사)한국생명과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동국대 WISE 캠퍼스 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오온과 전오식』, 『의근과 의식』, 『붓다 깨달음의 뇌과학: 마음을 만드는 뇌의 구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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