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챙기기
제이 L. 가필드
스미스 칼리지 철학과 석좌교수, 본지 편집위원
마음챙김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마음챙김을 실천해야 할까
오늘날 마음챙김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불교 수행법을 답습한다고 내세우는 마음챙김 명상 센터뿐만 아니라 식사와 육아, 심지어는 성관계에 있어서도 마음챙김을 실천하라고 장려합니다. 스포츠 심리학자는 운동선수에게 마음챙김을 하면서 경쟁하라고 가르치며, 군대에서도 저격수와 드론 조종사에게 ‘마음챙김’ 훈련을 실시합니다. 모두가 이것이 심오한 불교 수행법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만일 그렇다면 마음챙김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마음챙김을 실천해야 할까요? 불교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또는 미치지 않는지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마음챙김’이라는 용어와 수행법이 어떻게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그것이 무엇이며 불교 수행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마음챙김이란 현재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저 알아차릴 뿐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즐거운지 불쾌한지,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생각하지 않는 비(非)판단적인 것이라고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매우 현대적인 것이며, 불교 전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현재 순간을 비판단적으로 의식하는 것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우리로 하여금 고통이나 분노를 다스리게 해주는 등 많은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그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고전적 불교 교리에서 이를 권장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으며, 마음챙김을 이런 식으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이 불교 전통에서 갖는 중요한 윤리적 의의를 놓칠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기억과 꾸준한 자기성찰의 결합
‘마음챙김(mindfulness)’이란 단어는 보통 팔리어 ‘사띠(sati)’, 혹은 산스크리트어 ‘스므리띠(smṛti)’의 번역어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팔리어 ‘삼빠잔냐(sampajañña)’, 또는 산스크리트어 ‘삼쁘라자냐(samprajaña)’라는 단어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고, 이 둘이 결합된 것을 일컫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용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사띠’와 ‘스므리띠’는 무언가를 기억하거나 떠올림을 의미하며, ‘삼빠잔냐’와 ‘삼쁘라자냐’는 주의를 제어하거나 집중을 유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의미의 마음챙김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입니다. 불교 문헌에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맹세, 우리가 받은 가르침, 따르고자 하는 원칙, 그리고 깨달은 바를 기억하고 떠올리라고 가르칩니다. 이를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현재 사유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지도하기 위함이나,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가령 누군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나무라고자 한다면, 과거에 거친 말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한 점을 떠올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조금 더 인내심 있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책임에 대한 이러한 기억 혹은 마음챙김은 스스로 더 유해질 수 있게끔 만들어줍니다. 이처럼 스므리띠 혹은 사띠는 무언가에 대한 판단을 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의미의 마음챙김은 집중을 유지하는 것, 마음이 방황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시하고, 옆길로 새면 원래 전념하고 있던 일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는 현재와 직접적으로 연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의 마음챙김도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판단적입니다. 단순히 마음이 방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렇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한 후 방황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입니다. 마음챙김에 대한 이 두 가지 의미를 합치면 불교 수행에서 마음챙김이 이루는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우리의 도덕적 책임들을 떠올리고 마음에 간직함으로써, 단순한 부주의로 인해 이를 위반하는 일이 없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기억과 꾸준한 자기 성찰의 결합입니다.
마음챙김을 위해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샨티데바가 『입보리행론(Bodhicāryāvatāra)』의 「호계정지품」에서 인간의 마음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마음은 야생 코끼리보다 더 많은 피해를 끼칠 수 있는 반면, 마음챙김의 밧줄로 절제된다면 잘 길들여진 코끼리만큼 이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각과 행동을 지도하는 것이 마음이므로, 우리가 따르는 가치를 끊임없이 의식함으로써 마음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오해가 발생하거나 후회할 만한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반면 마음챙김을 통해 마음을 절제한다면, 이는 덕행과 도덕적·영적 성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아무리 인내하고, 너그럽고, 친절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도 그 다짐을 늘 떠올리고 기억하지 않는 이상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짐한 것을 마음속에 잘 상기해 유지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게끔 합니다.
우리는 요리할 때 날카로운 칼이 필요하기 때문에 요리하기 전에 칼을 갑니다. 그저 날카로운 칼을 갖기 위해 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하기 위해 칼을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음챙김을 위해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책임과 가치, 덕성을 발휘해 덜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더 친절하고 배려하고 섬세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리하기 전에 칼을 갈 듯이, 우리의 덕성과 결의가 헛되지 않도록 마음챙김을 미리미리, 틈틈이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챙김은 단순히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며, 도덕적으로도 매우 유의미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챙김이 무엇인지 항상 기억해야 하며, 그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을 잘 알아차려 마음을 다시 마음챙김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번역|권건우, 조연우
제이 L. 가필드(Jay L. Garfield)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스미스 칼리지 철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이 외에도 하버드 신학대학원 불교철학 객원교수, 멜버른대학교 철학과 교수, 인도 고등티베트연구 중앙연구소(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 철학과 겸임교수,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Buddhist Ethics: A Philosophical Explora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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