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과 미생물, 그들을 제대로 살려야 인류가 산다 | 생태 위기의 문명과 불교사회인의 길

야생과 미생물,
그들을 제대로 살려야
인류가 산다

김규칠
언론인


야생을 대학살해온 인류
지구의 자연 생태계는 미생물을 필두로 하는 야생에서부터 시작했다. 인류는 거의 맨 나중에 등장해 한동안 그 야생의 터전에서 야생과 대칭적 관계에서 오묘한 균형을 이루며 삶을 영위해왔다. 오랜 야생의 사고와 신화의 시대를 거치면서 그 대칭적 관계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신석기 전후로부터 혁명적 변혁의 물결을 일으켜 비대칭적 관계로 현대에까지 이르렀다. 필수 불가결한 야생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분절과 투쟁을 거듭하기 시작해 마침내는 야생을 장악하고 포획하며 지배, 수탈하는 비대칭적 관계로 변질시키고 고착시켜버린 것이다. 그것이 지구 대지와 인류의 역사다. 오늘에 와서는 야생의 자연이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홍적세 말기 전후부터 자행하기 시작한 야생의 대학살은 오늘날 오대양의 바다 생태계와 육대주의 원시림을 마구 파괴함에 이르렀다.

야생의 반격
야생은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내몰리고 밀리다가 아예 송두리째 그들의 터전을 인류에게 빼앗겨버렸다. 급기야는 지구 진화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최대량의 일반적 거주자들이며 가장 주된 역할을 행사하던 미생물의 오랜 생태계를 건드리고 파괴하게 되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미생물과 숙주인 야생 동식물 사이에 오랜 세월 동안 공생과 공사를 거듭하며 함께 살아온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으므로 이제 그 야생 모두는 일제히 함께 들고 일어나 인류에게 대지 자연의 정당한 반격을 단행하고 있다. 자연의 생성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야생의 진화 과정과 행동의 결과를 정확히 다 알 수 없다. 여러 가지 다양한 매개 과정과 연결 내지 복합화 과정을 거친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은 침범과 수탈을 당한 경우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간접적으로 대응하고 반격하는 경향이 있다. 홀로 한 방향으로만 대응하지 않고, 때로는 우회하며 연결 고리를 만들고 복합적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그런 야생의 다변적 연결과 복합 관계의 다양한 파트너가 곤충과 벌레와 미생물이다. 그들 파트너들은 언제나 초대받은 듯 당당히 신속하게 어느새 와 있다. 아니 원래부터 없는 데가 없다. 미생물은 인간의 요량으로 살처분된 야생과 가축의 시체를 넘고 침출수를 타면서 암흑 물질처럼 숨었다가 천지 사방으로 번져나간다. 억울하게 도륙되고 생매장당하는 생명의 불안과 공포, 숨 가쁜 비명이 미물을 더욱 격발시키고 광분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 속의 유·무기물끼리는 매우 오묘하고 비밀스러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은데, 특히 미생물은 하도 민첩하고 복잡 미묘한 데다 유동적이라 고정적인 정체성을 알 수도 없고 그 변화의 향방과 과정을 파악할 수도 없다. 인간은 자연 생물에 대해 그들의 생리적 본능이라느니 돌연변이라느니 하고 쉽게 단정해버리지만 과연 그런지 확정할 수 없다. 유사시 그들이 대응하고 내습해오는 경로와 방식을 판정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야생의 생태계라는 자연법칙 준수해야
경계를 모르고 넘나드는 야생동물, 특히 야생 조류와 곤충과 미생물의 생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보고 깊이 숙고해야 한다. 전문가에 의하면, 야생은 바이러스 세상으로, 우리가 모르는 종만 160여 만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이것들이 다른 동물이나 숙주를 찾아 떠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환경과 생명체와 만나고 섞이면서 어떤 정체불명의 변종 또는 신종 바이러스로 변화 발전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신종 전염병은 인간의 개발 과정에서 위협을 받은 야생동물끼리 밀어내고 옮기다가 어떤 계기에 중간 매개 동물이나 가축 같은 동물과의 연결을 통해 사람에게 옮아온다고 한다. 1998년 말레이시아를 강타한 니파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를 보면, 농지 개간으로 인해 본래의 서식지를 잃은 과일박쥐가 이주를 강제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게 야생동물을 자연 상태에서 밀어내는 요인이다. 쫓겨난 과일박쥐는 망고나무가 무성한 곳 부근의 어느 양돈장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곳의 풍부한 먹잇감은 야생동물을 끌어당기는 요인이 된다. 과일박쥐가 먹고 버린 망고를 양돈장의 돼지가 먹었고, 돼지에서 농장 인부로 전염이 일어났다.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을 일으키는 주역은 중간 매개 동물인데 인간이 이들과 접촉한다. 이들 매개 동물에는 돼지, 청둥오리, 사향고양이, 낙타, 천산갑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매개체를 통해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할지 인간이 예측하기는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사람과 가축과 야생동물과의 관계를 연기법적 존재 연쇄의 고리로 묶어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대처를 통제적 사고만으로 밀어붙여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영원불변의 법칙과 질서란 없는 것이지만 지구 생태계의 유한한 세계 내에서 사람, 가축, 야생동물의 연기적 연쇄 관계는 원래 야생의 생태계 질서에 의해서 조절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원천적 생태계 질서를 존중하는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야생을 야생으로서 지켜주며 인간의 침범을 최대한 삼가는 실천, 즉 야생의 생태계라는 자연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건 일차적으로는 야생을 회복하고 지키는 것이지만 진정으로 인류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 몸 안팎의 미생물을 자연의 법칙에 거슬러 대우하면 곧바로 우리 몸과 세계의 생태계에 큰 변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한 미생물의 근본적 삶이 위험을 느껴 스스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우리 인류에게는 반격과 질병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당하는 팬데믹이고 감염병이다. 종전처럼 박멸적 전략으로는 인간이 절멸당할지 모른다. 늦어도 2030년경부터 한 세대 안에 지구온난화를 더 이상 지속시키는 흐름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 지금처럼 멸종 위기의 야생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그들의 터전과 삶을 마구 침범하고 도륙한다면 바이러스와 슈퍼 박테리아 등 야생 전체의 계속되는 돌연변이 발생과 내습은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신이며 치료제며 미봉책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 변질되는 대자연의 생래적 공습에 대처하기에 역부족으로 당황하고 급급하다가 마침내 지구적 삶의 일대 카타스트로프를 맞이할 것이다. 이제는 근본적 성찰을 통해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다. 우리는 여기에 필요한 성찰과 전환의 구체적 실천과 관련해, 불교적 정신과 사상에 더욱 투철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불교인이 앞장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먼저 지구 생명의 방어를 위해 대지와 생명에 대한 침탈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추고 지연시켜야 한다. 그와 병행해 대지와 대지가 낳은 생명의 유지를 위한 최선의 체제를 모색하는 작업으로서 사회구조와 제도의 개선 내지 개혁에 획기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인식과 사고 및 가치의 전환을 위한 의식 전환 운동에 종교 및 교육과 문화계의 연대적 활동이 필요하다. 이 세 차원은 동시에 일어나고 서로 보강하며 보완해주도록 움직여야 한다. 획기적 전환과 실천에 나설 사람들의 용기와 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른 생명의 그물망과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교감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재연결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상호 교감은 대지와 다른 생명에 대한 고마움과 친절을 표현하는 행동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세계의 정세를 간파할 줄 알고 세상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경험하며, 대지와 생명의 진실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킬 불교적 현대화 운동이 시급하다. 이러한 과정에 우리들 자신의 정진 과정과 화쟁적 노력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제대로 지키고 누리기 위해서라도 인간만을 위한 인간 중심의 사고로는 부족하다. 다른 생명들, 야생 동식물과 미생물의 존재 의의를 지켜주고 살려주어야 한다. 그런 연기법적 이치를 붓다는 2,500년도 더 전부터 누누이 일러주었다.

김규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 대학 신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엔나대학과 와세다대학에서 연수를 마쳤다. 외무고시에 합격해 18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BBS불교방송』 사장,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과 이사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불교가 필요하다』, 『활생문명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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