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사랑은 모든 종교에 있다 『신의 역사』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세상 모든 종교 속에 깃든
신의 사랑에 관하여

『신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지음, 배국원 · 유지황 옮김, 교양인 刊, 2023 

신의 역사 속에 깃든
‘인간의 사랑’을 발견하는 카렌 암스트롱
카렌 암스트롱의 강연을 유튜브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동서고금의 철학과 신학을 아우르는 그녀의 경이로운 박학다식함도 눈부셨지만, 더욱 큰 감동을 준 것은 그 모든 신의 역사 속에 깃든 ‘인간의 사랑’을 발견하는 그의 혜안이었다. 카렌 암스트롱은 ‘저기 저 고통받는 사람이 나라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를 끊임없이 헤아린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한 다음,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거부하세요.” 그녀는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군대의 강력한 힘이나 전술이 아니라, 전쟁에서 거의 모든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프리아모스왕의 눈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눈을 반짝이면서 프리아모스왕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카렌 암스트롱의 이야기에 관객은 몰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불타오르는 아킬레우스. 그는 헥토르를 잔인하게 죽이고도 모자라 그의 시체를 질질 끌고 다니며 ‘트로이의 왕자’이자 트로이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헥토르를 모욕했다. 그런 아킬레우스의 막사에 밤에 몰래 찾아가 목숨을 걸고 ‘내 아들의 시체를 돌려달라’고 탄원하는 프리아모스의 마음. 그것은 왕의 마음도, 전쟁에서 승리를 꿈꾸는 남자의 마음도 아닌, ‘사랑하는 아들을 영원히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에게 호소한 지점은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을 전쟁에서 잃을까봐 공포에 떨고 있는 당신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내 아들의 시신을 돌려주기만 하면 그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탄원하는 프리아모스왕에게서 ‘한 나라의 왕’이 아닌 ‘한 인간의 쓰라린 슬픔’을 발견한다. 카렌 암스트롱의 강연을 듣던 관객들은 어느새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고, 나 또한 울고 있었다.

‘신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는 시간은 전 세계 모든 종교에 공통되는 것
한때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녀로 살았던 카렌은 환속해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었고, 그녀는 ‘신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는 시간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전 세계의 모든 종교에 공통되는 것임을 설파한다. 그녀는 『성경』은 물론 공자의 『논어』와 이슬람의 『코란』과 불교 경전까지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신의 사랑은 기독교만의 배타적인 소유물이 아닌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가르침임을 강조한다. 그때 말하는 신의 사랑은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에게 군림하는 절대적인 권력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가장 고통받고, 가장 슬퍼하는 존재를 향한 사랑이며, 그것은 불교의 자비(慈悲)에 가까운 것이다. 자비와 연민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존재의 네트워크 속으로 진입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길, 그것이 카렌 암스트롱이 수녀의 길을 벗어나 어디서든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학자이자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신의 역사』는 카렌 암스트롱의 사유를 집대성하는 역작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종교에 갇히지 않는 그녀의 방대한 사유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치열한 학문적 기록이기도 하다.

“존중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일 때만 의미가 있다”
카렌 암스트롱은 자비와 연민, 공감과 환대야말로 이 험난한 세상을 버텨내는 마음의 열쇠임을 여러 강연과 저서에서 강조한다. “연민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생존의 열쇠입니다.” 자비와 연민은 ‘나’와 ‘너’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유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를 ‘우리’로 바라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타인 속에 깃든 나, 내 속에 깃든 타인을 합쳐 ‘우리’라는 존재가 되고, 바로 그 ‘우리’라는 거대한 공동체적 사유 속에서는 연민과 자비, 환대와 공감이야말로 최고의 생존 비결이 되는 것이다. 너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므로. 내가 혹시 당신의 고통을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당신의 고통’으로 건너가려는 몸부림은 연민의 시작이며 자비의 시초다. 『신의 역사』를 읽다 보면 종교뿐 아니라 철학, 민주주의, 역사, 문학을 아우르는 카렌의 드넓은 사유의 바다로 뛰어들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렌 암스트롱의 명언은 이것이다. “존중은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일 때만 의미가 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진짜 어려운 존중, 이 갈등과 분열의 세계 속에서 우리 시대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존중은 바로 ‘나와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사람’을 향한 무한한 존중이 아닐까. 우리는 갈등과 분열 한가운데서도 기필코 인간에 대한 경의와 존중을 잃지 않는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다.

정여울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