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 미국의 참여불교 | 특집, 미국 불교

미국의 참여불교

“삶 속에 뛰어들지 않는 불교는
진정한 불교가 아니다”

박정은
서스캐처원대학교 세인트토마스모어컬리지 종교문화학 강사

사진 출처 | Buddhist Peace Fellowship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붓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참여불교
미국에서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대중적으로 좋은 이미지와 더불어 꾸준히 성장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불교가 개인, 더 나아가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마틴 루서 킹의 인권 운동 사례를 통해 종교의 힘을 생생히 체득한 미국 대중에게 지난 반세기에 걸쳐 불교가 미국 사회 곳곳에서 불러일으킨 변화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함께 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붓다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정치, 사회,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불교, 이것을 참여불교라 한다.

틱낫한 스님의 참여불교,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며 참여불교 단체들 생겨나
미국 참여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 (1926~2022)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등의 저자로 잘 알려진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전쟁 당시, 교육 및 복지 시설을 지어 황폐화된 농촌 사회를 재건하고 피난민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반전 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틱낫한 스님은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불교, 사회와 연계된 불교라는 뜻으로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용어를 저서와 연설에서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 종결을 위한 틱낫한 스님의 미국 방문 및 반전 운동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불교 교리를 공동체의 복지와 평화에 접목해 해석한 그의 참여불교는 당시 불교를 개인 수행 중심의 종교라고 알고 있던 진보 성향의 젊은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수동적이고 개인 중심적인 이미지의 불교가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종교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불교 교리와 사회운동을 접목시킨 새로운 참여불교 단체들이 이후 속속 생겨나게 되었다.

참여불교의 기본 이론을 설명하자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소중하고 가치 있으며 나 그리고 다른 생명체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기에, 다른 존재의 고통과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고통의 원인이 개인의 마음뿐 아니라, 정치 및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도 기인한다고 본다. 즉 붓다의 가르침인 사성제, 연기론, 불이원론, 보살행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불교가 참여불교이다.

틱낫한 스님은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는데 “내가 곧 그대이며, 그대는 바로 나이다”라는 의미로 “상호존재”라는 말을 설명했다. 내 삶과 다른 생명체의 삶이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수행의 목적을 개인의 해탈 차원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에 둔다. 따라서 참여불교는 불교의 기본 교리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해석한다. 예로써 틱낫한 스님이 제안한 상호존재의 14계에서는 전통적 오계 중의 하나인 “도둑질하지 않겠다”를 다음과 같이 새롭게 해석한다. “고통이 착취, 사회적 불의, 절도, 억압에서 기인함을 인식하며, 내 마음속에 자애심을 기르는 한편 모든 중생 및 동식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가진 시간, 에너지, 소유물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겠습니다.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타인의 소유물을 탐하지 않을 것이고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겠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희생시켜 이익 보는 것을 묵인하지 않겠으며 지구 모든 존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영향으로 미국의 참여불교는 명상과 사회운동을 결합시켜, 재가자 중심으로 여러 참여불교 단체가 결성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참여불교 단체는 불교평화연대(Buddhist Peace Fellowship)이다. 로버트 에이킨과 앤 에이킨 부부, 넬슨 포스터 등이 1978년 하와이에 처음 설립한 불교평화연대는 198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로 본부를 옮겼고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참여불교 단체이다. 초창기 대부분의 주요 멤버는 중산층 백인 엘리트들로 기독교 평화 단체와 연합해 반전, 반핵, 비폭력 운동 등 초교파적 사회운동을 추진했다.

도시 빈민층 복지 사업, 재소자 교화 사업 등 지역 공동체 복지로 눈 돌려
미국의 초기 참여불교는 명상과 사회 변화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를 세웠지만 곧 지역 공동체 복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도시 빈민층 복지 사업, 재소자 교화 사업 등 적극적이고 직관적인 개입을 통해 공동체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구체적인 사회 변화로 관심을 두었다. 1996년 버나드 글래스먼은 젠 피스메이커스(Zen Peacemakers 평화를 만드는 선)라는 단체를 창립해 사회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 사업을 펼쳤다. 글래스먼이 일찍이 1982년에 뉴욕에 만든 그레이스톤재단은 노숙자를 위한 주택 건설과 에이즈 환자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불교평화연대 또한 베이스(BASE), 즉 사회참여를 위한 불교동맹(Buddhist Alliance for Social Engagement)이라는 프로그램을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운영하면서 노숙자 지원과 재소자 교화 등의 사업을 벌였다. 이 단체의 계간지였던 『터닝 휠(Turning Wheel)』은 2003년에 “블랙 다르마(Black Dharma)”라는 특집으로 불교와 흑인 인권을 중점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렇듯 재소자 교화 사업은 여러 참여불교 단체들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불교 수행, 특히 명상은 재소자 교화에 큰 효과를 보였다. 명상이 재소자들의 마음 수행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는 『더 다르마 브라더즈(The Dhamma Brothers)』라는 다큐멘터리에 잘 나와 있다. 2007년 미국 앨라배마의 한 교도소의 중범죄 재소자들의 위빠사나 명상 수련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불교 명상을 통해 어떻게 중범죄자가 교화되는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인종차별 등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고통 해결에 불교 역할 대두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 문제, 특히 흑인 인권 문제는 여전히 미국 불교의 한계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대다수의 불교 개종자들은 중산층 백인들이다.

보시행과 같은 전통 불교문화와 의례에 익숙한 아시아계 미국 불교인들과 달리 백인 불교 개종자들은 주로 명상을 통한 영성 회복에 초점을 둔다. 즉 여전히 대다수의 백인 불교 신자들은 불교를 정치와는 거리가 먼, 개인 중심의 마음 수련과 영성 회복의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2020년 5월 백인 경찰의 과한 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인종차별의 심각성에 대해 경종을 울렸을 때,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반성한 종교 집단 중의 하나가 바로 불교계였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 종교문화학 교수인 앤 글레이그(Ann Gleig)가 『트라이사이클(Tricycle)』이란 불교 잡지에 2020년 7월 24일 기고한 글에 의하면, 조지 플로이드 사건 직후 미국 불교계에 새로운 화두가 떠올랐는데 바로 인종차별로 인한 집단적 고통 문제이다.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집단적 고통의 해결을 위해 불교인들이 같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과 생태 문제에 목소리 내는 미국 참여불교 단체들
인종 문제와 함께 미국 참여불교가 관심을 둔 문제는 바로 환경문제이다. 매년 일어나는 미국의 대형 산불은 심각한 대기오염을 발생시켰고 특히 주거환경이 열악한 저소득층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환경과 생태 문제에 관심을 둔 대표적 참여불교 단체는 하나의지구승가(One Earth Sangha)이다. 크리스틴 바커와 루 레너드가 2013년에 만든 이 단체는 환경파괴 위험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교육 및 다른 불교 단체와의 연대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참여불교 단체들은 “생태불교(Eco-Buddhism)”, “녹색불교(Green Buddhism)”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기후변화 등의 위기에 맞서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참여불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삶 속에 뛰어들지 않는 불교는 진정한 불교가 아니다.” 보살의 마음으로 다른 존재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고통의 원인을 찾아 없애려고 함께 실천하는 불교가 바로 진정한 불교라는 것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불교는 미국에서 그 의미와 전파력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정은
강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앨버타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한국 불교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박사 논문: 일제강점기 총독부 문서와 승려들의 호적 연구를 바탕으로 쓴 「Clerical Marriage and Buddhist Modernity in Early Twentieth-Century Korea」, 2016).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박사후 연구원,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스캐처원대 세인트토마스모어컬리지(St. Thomas More College) 종교문화학과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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