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절들 | 나의 불교 이야기

나의 불교는
내가 체험한 절

손인호
시인


나의 기억에 아로새겨진 절들
경전 같은 절을 만날 때가 있다. 바다를 향한 단애에 나비처럼 앉은 암자나 산 전체를 캔버스 삼아 세밀화로 그린 산지 승원, 일 년에 꼭 하루 개방되는 철옹성 같은 수행 도량과 장엄한 협주곡을 들려주는 천년 고찰, 그리고 정갈한 조각보를 닮은 비구니 사찰과 온정신을 일깨우는 적멸보궁, 절멸 이후의 세상 같은 폐사지, 고향 집처럼 푸근한 장독대 같은 절들….

그 품에 안겨서 가지런히 손빗질을 하듯 곳곳을 음미하고 탐닉하다 보면 세상 어느 불경에서도 찾지 못할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곳이 바로 극락이고 정토구나! 그럴 때면 절은 깨달음을 시각화한 감동적인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불교는 내가 체험한 절에 다름 아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아로새겨진 장면들과 신스틸러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튼, 하려 한다.

웃픈 얼굴의 북어 한 마리
영화로 치면 <서편제>쯤은 되지 않을까. 희한한 목어를 보러 가자는 H 사진작가를 따라 완주 화암사를 찾아가는 미로 같은 길이 그랬고, 당도하자 나타난 공중 누각 같은 절집의 자태가 그랬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이빨이 다 빠져 귀신이 되어가는 극락전의 행색이 그랬고, 정면으로 마당에 덧붙여진 넓은 마루에 그저 지붕만 얹은 꼴의 우화루가 그랬고, 우화루에 매달린 말라비틀어진 북어 한 마리가 그랬다.

너무도 엉뚱하고 생뚱해서 그냥 울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은 왜일까. “아, 묻지 마”라는 듯 귀찮은 듯 비웃는 듯 짱뚱어를 닮은 웃픈 얼굴을 한 목어의 부제를 ‘오직 모를 뿐!’이라고 붙여본다. 이런 기상천외한 물건을 만날 때마다 궁금하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한이 이런 풍광을 연출했을까? 만약 목어가 페르소나였다면 그 연출자는 맺힌 한을 풀었을까, 아니면 업으로 다시 환생해 어느 이승과 구천을 떠돌고 있을까. 저도 모르게 아리랑을 흥얼거렸는데, 그것은 아마도 진도 아리랑이었던 것 같다.

해인사 싸리비의 기억
절집의 기품은 마당에 나 있는 빗질 자국에서도 나온다. 어떤 성보와도 견줄 만한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른 빗질 자국을 보면 그대로 무릎 꿇고 참회하는 마음이 된다. 그런 ‘싸리비화’를 만나게 되면 으레 한구석에 싸리비들이 붓처럼 잘 정돈되어 보관되어 있다. 마당을 화폭 삼아 싸리비 붓으로 고사리 당초문 같기도 한 무늬를 엄격한 간격과 은모래 위에 난 썰물 자국 같은 유려함으로 조화롭게 신필을 휘두른 이는 처사님일까, 어느 스님일까 식사 시간이 되어 공양간에 절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그런 싸리비를 오래전 해인사에서 처음 보았고 당시 청동 대불 건립 사업을 추진 중이었는데, 마당 한구석에 놓인 그것에 절을 올리고 적은 단상이 있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본 싸리비/가을이 오면 이 싸리비가 낙엽들을 솨악 솨악 모으겠지//내 마음에도 커다란 싸리비 하나 만들어/잡다한 생각 나부랭이들/허튼 욕심, 바보 같은 버릇/솨악 솨악 쓸어버리고 싶다 (하략)

다비 장례사의 땀과 불
다비식을 주관하는 장례사는 소방관과 닮아서 불과 맞선다. 소방관이 불을 죽여서 인명을 구하는 성스러운 이들이라면 다비 장례사는 불에 불을 더해 어느 주검을 완전히 연소시켜 어떤 삶을 영원토록 완성한다. 꼭 한번은 다비식을 참례하고 싶었는데 역시 H 사진작가가 인도해주었다. 그곳은 부처님오신날 하루만 일반인에게 문을 여는 내밀한 수행 사찰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전직 대통령 6명의 장례식을 진행했고, 법정 스님을 비롯해서 무수한 큰스님의 다비식을 치른 유재철 장례사는 오랜 경험을 통해 다비식의 시간을 압축했다. 세 개의 긴 연통을 통해 바람을 불어넣어 지펴낸 불로 마침내 법구가 재가 되자 제자 스님들이 달려 나와 일제히 사리를 수습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를 실제로 들으면서부터 진공 속으로 들어간 듯 먹먹했다. 9월 초의 뙤약볕 속에서 엷은 초록빛을 띤 백색 연기가 하늘 높이 승천했고, 커다란 불이 연기를 먹듯이 따라 올라갔다. 다비식에 참례 온 불자들은 불이 사그라지면서 점점 더 작은 동심원이 되어 모여들었고, 마지막 불이 꺼지면서 한 점이 되어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죽음’을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본 최초의 경험이었다. 법구가 완전히 연소되도록 장례사는 불을 다독였다. 그는 불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어르고 달랬는데 얼굴에서 가슴으로, 등에서 허리로 우두두 떨어지는 땀이 비늘처럼 반짝였다.

‘버리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으셨다’는 고우 스님은 그깟 사리 한 톨조차 남기지 않았고, 스님이 남긴 말씀은 나중에 들었다.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전해라.”

절 하나에 목숨 하나 살릴 듯
절에서 심장에 담아온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다름 아닌 절이다. 수국사 새벽 예불 때 보았던 어느 할머니 불자님의 절. 그야말로 지극한 정성으로 온몸을 던져 조아리는 성스러운 움직임 앞에서 나는 불자보다는 불량자에 가까웠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들릴 듯 말 듯 입만 달싹달짝 움직이며 툭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스님의 독경이 끝날 때까지 끝도 없이 느릿하게 접었다 폈다. 나비가 날개를 접어 툭 떨어지는 모습과 닮았달까. 그렇게 애절한 몸짓은 다음 생에도 다시 볼성싶지 않았고, 혼신을 다한 기도는 개인 차원의 기복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치 절 하나에 누군가 목숨 하나 살릴 것 같았다.

어쩌면 절이라는 경전은 그렇게 꽃피우는 것이 아닐까. 깨달음의 길이라는 철벽을 뚫은 위대한 수행자가 붓다라면 철벽을 녹여 업장을 소멸시키는 그런 몸짓을 행하시는 우리 곁의 거룩한 불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어서, 나는 또 절에 가곤 한다.

손인호
시인. 시집으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가 있다. 법정 스님을 만나뵌 적은 없지만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기고한 「해인사 싸리비」 시를 읽으시고 스님의 저서 『혼자 사는 즐거움』에 소개해주신 인연으로 불교 관련 칼럼을 쓰며 영종도에서 육체노동으로 땀 흘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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