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쯤 붓다와 같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까? | 나의 불교 이야기

냉정과 열정 사이

신성현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나는 사람의 외모와 성품을 지녔던 인간 존재로서의 붓다에 대해 이해한다
나는 동국대 불교대학 불교학부 교수이다. 불교학을 공부한 지는 40년이 넘었고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도 30년이 훌쩍 넘는다. 다른 업(業)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는 오로지 외통수 불교학자인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이는 불교학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무불통지(無不通知) 도인(道人) 정도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둔함 탓인지 경전에 나오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서는 ‘이것은 기둥이다’라고 말하는 수준은 아닌 정도이다. 다행스럽게도 경륜 때문인지 대승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천신·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이 왜 붓다를 장엄하는지도 안다.

자찬하자면 붓다가 어떤 분이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붓다는 신화적·신앙적 존재로서의 붓다가 아니라, 사람의 외모와 성품을 지녔던 인간 존재로서의 붓다에 대해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먼저 붓다의 외모는 탁월했다. 훤칠한 키, 흠잡을 곳 없이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모습의 붓다는 언제나 모든 이의 감탄을 자아내어 견줄 이가 없을 정도였다. 붓다가 먼 곳에서 걸어오면 풍기는 오라(aura)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맞이할 정도였다는 율장의 표현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성품은 어떠했을까? 따뜻할 때는 한없이 따뜻했고, 차가울 때는 더없이 차가운 냉정과 열정을 자유로이 오가는 분이셨다. 붓다가 제자들을 만나면 언제나 먼저 건넨 말은 열심히 수행했는가 같은 말이 아니라 “밥은 굶지 않았는가, 생활하는데 곤란함은 없었는가?”였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의 따뜻함과 인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붓다의 성품에서 배우는 지혜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바카리라는 비구가 병이 심해서 옹기장이의 집에 앓아누워 있었는데 곧 자신이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붓다를 뵙고자 원했고 붓다는 즉시 병문안을 갔다. 바카리는 붓다를 뵙자 애써 일어나려고 했으나, 붓다는 그를 만류하면서 편안하게 눕도록 한 뒤 법문을 해주신다.

초기 경전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에서 붓다의 따뜻함을 볼 수 있다. 병든 제자를 위해 몸소 병문안을 가시고, 자신의 몸도 언젠가 사라진다면서 바카리만을 위해 마지막 법문을 전하시는 붓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떠한 교조의 권위도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카리스마도 찾아볼 수 없다.

한편 붓다는 냉정해져야 할 때는 한없이 냉철한 태도를 보여주셨다. 때때로 외도들이 허튼 주장을 하면서 붓다와 대론을 펼칠 때에는 냉정하게 비판하고 나무랐다. 이는 제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바차고타라는 한 외도가 붓다에게 찾아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한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제자들은 해탈했을 때 그들은 어디에 가서 태어납니까?”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간 뒤 붓다는 불에 타고 있는 나무의 비유를 들어 바차고타에게 되묻는다. “나무가 불에 타는데 그것이 모두 타고 불이 꺼졌을 때 그 불은 어디로 갔는가?” 이에 해탈한 자가 죽은 후 어떤 상태로든 다시 태어나길 기대하면서 자신 있게 질문했을 바차고타는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가 바로 실망해 낙담할 것을 알면서도 붓다는 한없이 차갑게 답변하신 것이다.

제자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붓다는 냉정함을 잃지 않으셨다. 붓다께서 깨달은 뒤 얼마 안 되어 수많은 출가자들이 승단 안에 들어왔다. 대중이 커지는 만큼 그중에는 점차 비행(非行)을 저지르는 자들도 생겨났다. 붓다는 이들을 통솔하기 위해 하나하나 규정을 계율로 제정하셨다. 또한 제자가 자신과 가깝다고 해서, 혹은 그가 처한 상황이 안타까워서, 또는 연민을 느끼셔도 그냥 넘어가시지 않았다. 잘못한 제자에 대해서는 냉정할 정도로 차가웠다. 예를 들어 출가자로서 중요한 문제인 애욕과 관련해 아릿타라는 비구가 ‘애욕을 실행해도 도에 장애되지 않는다’며 붓다의 가르침에 반하는 잘못된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붓다는 삿된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아릿타를 처벌하는 동시에 이에 동조만 하더라도 가차 없이 벌해야 한다고 엄격하게 대처하신다. 아마도 동조한 비구는 이러한 처벌에 대해 가혹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붓다는 이를 눈감아준다면 교단의 질서는 망가지며 종국에는 쇠퇴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야 거부를 배우는 나는 언제쯤 붓다처럼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까?
붓다의 이러한 태도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의 성정은 따뜻하고 온화하며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본디 천성이 그러하고 집안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든 부분도 있다. 거절하지 못하며 남이 조금이라도 잘해주면 쉽게 곁을 내주며 이내 상대에게 경계가 사라져버린다. 나의 따뜻함은 처음에는 상대를 기쁘게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상대는 이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며 더 많이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는 나를 떠난다. 이렇게 냉정하지 않은 나의 행동은 나에게 상처를 남기며 상대와는 전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고는 한다.

지나고 보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될 때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한편으로 편안함을 느끼고는 했다. 그러나 사람을 안 만나니 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참으로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불교학 중에 율장을 전공한다. 율장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동사는 ‘버린다’, ‘떠난다’, ‘걷는다’이다. 그리고 그 목적어는 바로 애착이다. 애착을 버리고 애착을 떠나며 애착을 (버리기 위해) 걷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명예, 재산, 쾌락 등에 집착한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람이다. 붓다는 안거 중일지라도 여인이 나를 좋아하다면 안거를 그만두고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하셨다. 붓다가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신 이유도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작금에 들어 거부[no]를 배우고 있다. 때로는 냉정이 열정보다 어렵다는 것도 깨닫는다. 나는 언제쯤 붓다와 같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까?

신성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장과 불교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와 생사문화산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대승계율연구』 등의 저서를 비롯해 계율, 교단사, 불교윤리와 관련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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