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더
의젓하게 만들어준
점심 공양의 기억들
정여울
작가
나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스님들
어린 시절 아빠 손에 이끌려 정릉 기슭의 한 절에 갔을 때 나는 스님들이 나를 어른으로 대접해주시는 것이 좋았다. 스님들은 다른 어른들처럼 나를 ‘꼬마야’라고 부르지 않았다. 꼬박꼬박 내 이름을 불러주시고, 심지어 나이 어린 나에게 존댓말을 해주시는 스님들도 있었다. 우리 아빠에게 ‘아저씨’나 ‘부장님’ 같은 세속의 호칭이 아니라 ‘처사님’이라고 불러주시는 스님들의 깍듯함도 좋았다. 내 마음속에서 ‘처사님’은 멋있는 어른, 존경받을 만한 어른의 다른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아버지를 ‘처사님’이라고 부르시는 스님들의 눈동자 속에 말없는 존중의 빛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겨우 초등학교 3, 4학년생에 불과한 나를 누구보다도 어엿한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해주셨다. 어린 나를 난데없는 토론의 대상으로 삼아주시기도 하고, 나무나 꽃 이름 하나하나, 사찰에서의 예절 하나하나를 무엇이든 가르쳐주시려고 하는 정성스러움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절에 가면 갑자기 빛의 속도로 어른이 된 기분이 들곤 했다. 그 사람의 나이나 지위나 재산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스님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나는 어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행복한 착각을 안겨 준 스님들과 함께한 점심 공양
나는 몇몇 스님들에게 밥뿐 아니라 간식도 많이 얻어먹었다. 바삭하게 튀긴 한과와 튀각, 윤기가 잘잘 흐르는 약밥이나 달콤한 영양갱을 챙겨 주시는 스님들도 있었고, 향기로운 녹차를 다관에 담아 나를 얌전히 정좌시키신 후 어른처럼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마시게 만드는 스님들도 계셨다. 하루는 큰스님과 아빠와 나 셋이서 한 방에 모여 점심 공양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지 못했다. 초등학생 시절이라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물 반찬을 싫어했던 내가 그날만은 두말없이 나물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던 생각이 난다. 파래김과 콩자반 등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음식이었지만, 그날 스님과 함께했던 그 점심 공양에서 나온 반찬들은 신기하게도 훨씬 더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반찬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릇 하나하나에 담긴 만든 이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음식들이었다. 유난히 편식이 심했던 나는 검정콩이나 당근을 고스란히 남겨 엄마의 야단을 듣곤 했지만, 스님과의 점심 공양 시간에는 아무런 반찬 투정 없이 밥 한 그릇을 어른처럼 뚝딱 비워내곤 했다. 게다가 그 밥상머리에 한자리를 딱 차지하고 앉아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나는 큰스님과 아빠는 물론, 다른 보살님들과 스님들, 공양주 보살님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다 알겠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짓기도 해 어른들을 기막히게 했다. 어른들과의 겸상, 특히 스님과의 겸상은 나에게 한달음에 어른이 된 느낌, 조숙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가 된 것 같은 행복한 착각을 안겨주었다.
고작 '한 끼'가 아닌 하나의 길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연대감과 우정의 징표
뭐니 뭐니 해도 잊을 수 없는 절밥은 어린 시절 초파일의 점심 공양이다. 열한 살 때쯤이었을까. 나는 항상 조용하던 그 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 것은 처음 보았다. 나는 그때 생애 최고의 비빔밥을 먹었다. 그것도 항상 최고의 숙녀로 대접받았던 평소와 달리, 끝도 없이 몰려드는 신자들 인파 때문에 누구도 나에게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의 점심 공양은 정말 초간단 레시피였다. 달걀도 없이 오직 나물만으로 된 비빔밥에 고추장 듬뿍, 열무김치 약간, 그리고 흰떡이나 쑥떡으로 된 절편.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예불을 드리는 모습도 처음 보았고, 그토록 알록달록하게 맵시를 뽐내는 연등들이 사찰의 천장은 물론 마당까지 가득 드리운 것도 처음 보았으며,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점심 공양을 차례차례 치르는 남녀노소도 처음 보았다. 누구도 윽박지르지 않았고, 누구도 얼굴 붉히지 않았지만, 어림짐작으로도 천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점심공양을 치르고, 전광석화처럼 설거지를 하고, 금세 분주함을 씻어내고 또 다른 예불 태세로 전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러다가 점심 못 얻어먹을 수도 있겠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는지, 나를 늘 살뜰히 챙겨 주던 스님들이 다른 어른들과 ‘진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셨기에 토라졌는지, 혼자 조금은 처량하게 비빔밥을 먹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빔밥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맛볼 수 없었던 최고의 레시피로 기억된다. 수많은 보살님들이 모여 까르르 웃으며 정담을 나누고, 그러면서도 손으로는 엄청난 양의 나물을 무치고 고추장을 퍼 올리고 서로 들러붙은 절편을 엄청난 속도로 하나씩 떼어내는 모습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다. 이제야 그 알 수 없는 경외감의 실체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무릇 믿음의 표정이란 그런 것이구나. 어쩌면 무언가를 향해 쉬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사람들의 점심 공양은 이렇게 그저 ‘밥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도 어떤 신성한 오라가 깃드는 것이구나. 내가 그날 먹은 비빔밥은 단지 ‘한 끼’가 아니라 하나의 길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를 향한 연대감과 우정의 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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