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것과 연결된 나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 절집의 나무와 숲

나무를 관찰하는 것은
나의 세계를 새롭게 여는 일

신준환
동양대학교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


관찰은 잘 보고 드러내어 살펴서 아는 것으로 성숙의 시간이다
필자 주변에는 나무를 제대로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무를 잘 관찰하라고 한다. 그러면 대뜸 그렇게 쉬운 걸로 공부가 되겠냐는 표정을 짓는다. 그럴 때 “여러분이 나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 통념을 떠올리는 것일 뿐입니다. 남의 생각에서 벗어나 여러분이 나무를 관찰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그제야 미소가 떠오르며 알 것 같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필자의 말을 이해한 것이지 나무를 관찰하는 것이 어떤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할 수 없이 설명이 길어지면 나무를 관찰하는 방법을 쉽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현대인은 지식을 이어받는 데 익숙하므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 알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관찰 방법을 알려주면 그들이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흉내를 내도록 하는 것이니 여전히 문제가 된다. 우리는 개혁이 어렵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관찰도 그만큼 어렵다. 개혁은 구태를 바꾸는 것이지만, 관찰은 잘 보고 드러내어 살펴서 아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그 대상을 따로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결된 나의 세계를 새롭게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관찰은 나를 새롭게 여는 일이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계속 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새로 보이는 것은 없고 그냥 막막할 뿐이라며 답답해한다. 필자의 경험을 들려주며 막막함을 견뎌내라고 한다. 새로운 것을 관찰하거나 공부를 할 때 며칠이 지나도 아는 것은 없고 시간만 낭비했다고 아쉬워하지만, 알고 보면 그 시간에 지식은 축적하지 못했어도 자신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막막함을 먹고 사람이 크는 것이다. 시간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아예 한 학기 동안 아무 나무나 정해서 아무것이나 관찰한 후 그 결과를 발표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처음에는 과제의 성격에 의아해하던 사람들이 연말의 발표 시간에는 매우 즐거워했다.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던 자기만의 뭔가를 본 것이다. 그 나무를 늘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찌해서 그런 것을 못 보고 지나왔는지 놀라우면서도 기쁘다고 했다.

남의 생각이 아닌 내가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나무에 대한 지식이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남이 알려준 지식을 많이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보다 내가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공부를 해보면 정통 학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좁은 영역 안에 갇혀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사실 정통 학문의 세계에서는 질문의 방식이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다. 일부러 지침을 주고 질문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도 학문의 세계에는 기존 지식(선행 논문)이 중요하고 이런 지식을 더 확충하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 논문 심사 행사에서 재미난 일들이 벌어진다. 필자의 학창 시절에 박사 논문 발표 최종 심사에서는 공개 발표가 원칙이었고 여기에는 학부 학생들도 참석할 수 있었다. 박사 논문 신청자가 발표를 마치면 질문 시간이 있는데 보통 교수들과 대학원 학생들이 질문을 하면 자로 잰 듯이 답변을 잘한다. 어느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대비를 한 것이다.

이런 공방이 오가고 나면 심사위원장이 “오늘 학부 학생들이 참관하고 있는데 공부를 위해서 질문하는 시간을 주겠습니다” 하고 아직 학사 학위도 없는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학생들이 그냥 호기심에 몇 가지 질문을 하면 앞에서 청산유수와 같이 답을 하던 박사 논문 신청자가 더듬거릴 때가 꽤 많다. 학부 학생의 질문이 너무 엉뚱하기 때문이다. 생각조차 못 했던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냥 호기심에 한 질문에 선배를 너무 쩔쩔매게 했다고 질문한 후배가 더 당황할 때도 있다. 공부는 정말로 흥미롭다.

물론 학문은 일정한 형식이 있고 거기에 맞추어야 더 탄탄하게 발전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문의 큰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어 그것과 다른 질문을 하면 별 관심을 얻지 못한다. 즉 남의 관심을 끄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삶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관심 사항을 질문해야 한다. 식물 분류 전문가에게 꽃이나 열매가 없는 식물의 이름을 묻는 것은 실례가 된다. 전문가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질문도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꽃 진 자리가 말라비틀어져 시들어가면 그것이 쓸쓸해 보이다가도 문득 아름다움을 느껴 이름을 물어볼 수도 있다. 이런 것을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그는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따짐을 벗어나서 나를 고집하지 않을 정도로 절실할 때 무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신준환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수목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동양대 산림비즈니스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다시, 나무를 보다』,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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