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 변화된 삶의 가치가 출가 정진을 이끌다 | 나의 불교 이야기

오늘도 난, 생사를 벗어나
해탈하기 위해 정진한다

목종 스님
부산 대광명사 주지


교통사고를 계기로 삶에 대한 근본 질문과 맞닥뜨린 후 출가 정진
나와 불교와의 인연의 시작은 출가로부터 시작이다. 출가 이전에는 불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절과의 인연도 없었다. 그러다 대학 시절 교통사고로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추돌한 사고였다. 빗길에 미끄러져 부딪쳐서 크게 다친 곳도 없고 택시 차량 손상도 없어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 기사님께 사과하고 사고 현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가려고 하는데 현기증이 나서 잠시 길 가장자리 가드레일에 앉았다. 순간 천천히 연극 무대의 막이 내리듯 시야가 점점 좁아지다 닫히면서 동시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나는 생생하게 이 모든 과정을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이었다. 기억도 전부 사라져서 내가 누구인지 이름, 나이 직업 등등 나의 정체성도 상실하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 등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억하려고 애를 쓰니 한참 후에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이 나고 연이어 모든 기억들과 감각 인지 작용이 회복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삶에 대한 가치 개념에 변화를 겪게 되었다. 왜 사는가? 무엇이 참다운 가치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등등 근본적인 질문으로 몇 달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내일 죽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였다. 그 중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자연 속에서 도 닦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수행이 아니라 호흡, 무예, 술법 등 신선의 도였다. 그래서 학업을 중단하고 호흡과 무예를 배우러 물어물어 범어사 청련암으로 찾아갔다. 당시 무예와 호흡의 대가인 양익 큰스님이 계신 곳이었다. 처음 입산해서는 사찰에 거사로 지내면서 울력도 하고 무예를 배우며 지냈다. 몇 달 지내면서 불교를 알게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해서 해탈 열반하는 것이 본래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음을 깨닫고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후 행자 생활을 비롯해 수계 이후에도 은사이신 양익 큰스님을 모시고 7년간 불사와 수행에만 매진했다. 이후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강원도 삼척 영은사 뒤편 깊은 산중에 토굴을 짓고 십 수년을 정진했다. 삼척 토굴 정진 중 사제 스님과 주위 분들의 권유로 부산 해운대 신도시 포교당 반야원의 주지 소임을 맡게 되었다. 그때가 2004년 7월쯤이니 벌써 19년이나 되었다.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 완전한 행복이다
불교는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 이 삶 속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이나 조건을 성취해서 만족을 얻거나 혹은 선행을 실천해서 욕심을 줄여 만족을 얻거나 번뇌 망상을 버려 구하는 마음을 없애 만족을 얻는 세 가지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보다 선행하는 것이 더 쉽고 선행보다 구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실천해서 만족과 즐거움을 얻는다 해도 몸이 늙고 병들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고 노, 병, 사는 누구에게나 가장 두렵고 고통이며 슬픔인 것이다. 결국은 노, 병, 사에서 벗어나야 더 완전한 만족이며 즐거움인 것이다. 노, 병, 사는 시간이 흘러 몸이 변해 누구나 겪게 되는 현상이다. 즉 몸이 태어나면 반드시 일어나는 고통인 것이다. 그래서 생자필멸이라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이다. 생사를 벗어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무생이라고 한다. 태어나지 않으려면 육신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육신을 구하려는 마음이 이 삶을 마치고 다음 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육신는 왜 필요할까?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과 만족을 얻기 위해 육신을 통한 감각 작용과 행위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 몸은 일평생 매 순간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번뇌 망상이 다 사라진 무심정에 이르면 구하는 마음이 사라져 육신의 필요성이 사라지니 무생을 깨달아 태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님을 깨달아 해탈하는 것이다. 생로병사는 내 몸에 있으니 나의 생로병사가 아니요, 마음이 괴로운 마음, 즐거운 마음, 불만족한 마음, 만족한 마음 등등 아무리 변하고 바뀌어도 나의 마음이니 괴로움과 즐거움은 내 마음의 모습이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괴로운 마음에서 즐거운 마음을 구할 필요가 없으니 열반이요, 구하는 도구가 필요 없으니 몸을 구하지 않아 해탈인 것이다. 설사 구했다 하더라도 생사윤회는 내 몸, 내 마음에 있는 것이요 몸과 마음의 주인인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항상 변하지 않는 이 나를 진여자성이라고 하며 이 자성을 깨달으면 부처라 하니 불성인 것이다. 이 진여자성은 본래 존재하기 때문에 본래성불이요 여래장인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의 지혜인 것이다.

수행과 전법은 다르지 않아
처음 전법의 시작은 발원과 원력에 의한 전법보다는 인연에 순응하며 필요에 의해 하게 되었다. 하다 보니 수행과 전법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수행으로 얻은 지혜의 실천이 전법의 모습인 것이다. 불법은 행복을 얻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나와 너, 가족, 친지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불법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종교적 철학적 이론이나 이상이 아닌 지금 여기의 모습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나 학문보다도, 과학적 지식이나 이론보다도 더 현실적이다. 수행은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이고 이 깨달음의 지혜는 전법을 통해서 완성되어간다. 그러므로 전법은 수행자들에게 의무이자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서툴지만 모든 중생의 이고득락 해탈 열반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다. 나의 불교 인연과 수행 전법 인연으로 조금이나마 부처님 가르침을 홍포함에 도움이 되기를 발원해본다.

목종 스님
범어사에서 출가한 이후 10여 년간 토굴에서 정진하며 공부했다. 현재 부산 대광명사 주지, 서울 지금선원장으로 있으면서 『BTN불교 TV』 프로그램 <신행이야기 가피>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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