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즐기는
온전한 쉼
멍때리는 명상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지친 뇌를 쉬게 하는 신조어 ‘멍때리기’
서울숲이라는 도시공원 옆으로 나 있는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마루 위의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모두 한 방향으로 숲을 바라보게 하는 조그만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휴대전화도 무음 상태로 해놓아야 한다. 방문한 손님들은 단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온다. 숲을 바라보며 ‘멍때리기’를 하는 것이다.
멍때리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속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멍때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 시간 낭비만 하고 있다고 핀잔을 듣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멍때리기는 바쁜 삶에 휴식을 주고 지친 뇌를 쉬게 하는 ‘활동’을 일컫는 신조어다. 이렇듯 202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는 멍때리기라는 활동을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아마도 멍때리기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그리고 끊임없이 자극하는 SNS 때문에 잠시도 쉬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에 휴식을 선사하는 일종의 명상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뇌는 항상 일하거나 생활하는 곳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재충전(refreshment)이 된다. 생각을 비우고 멀리 바라보는 것은 뇌뿐만 아니라 눈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데, 충분한 시간을 두고 멍을 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상쾌해지고 눈이 편해진다.
멍때리기는 한국에서 생겨났지만, 한류 붐을 타고 해외로 알려졌다. 미국의 유력 방송사 NBC의 <투데이 쇼(TODAY Show)>에서는 ‘스트레스받으시나요? 한국의 웰빙 트렌드 멍때리기(hitting mung)’를 해보세요’라는 기사로 멍때리기를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심리학자 니스벳(Elizabeth K. Nisbet) 박사는 멍때리기가 산림욕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숲이 주는 긍정적인 자극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산림욕이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혈압과 심장 박동수를 낮추는 효과가 있듯이 멍때리기도 직접 자연 속으로 가지 않아도 숲에 있는 것처럼 뇌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멍때리기가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2014년부터 해마다 꾸준히 열리는 멍때리기 대회 때문이다. 이 대회는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시간 낭비인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주는 즐거움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유명 연예인들이 참가해 점점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2016년에는 가수 크러쉬가 90분 동안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멍을 때려 1등을 차지했다. 멍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한 여성이 한 말은 상당히 유명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좋습니다. 마음이 좋아요.”
실제로 멍때리기는 명상과 같은 효과를 선사한다고 한다.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동안 심장 박동수가 안정되며 동시에 뇌가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반작용으로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활동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멍때리기는 한국에서 이색 퍼포먼스로 시작해 지금은 이색 스포츠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멍때리기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필자는 문득 오래전에 일본인 친구를 따라 덩달아 참여했던 나이칸 심리 치료(內觀 治療: Naikan Therapy)를 생각했다. 명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 친구를 따라 미국 서부의 불교 사찰에서 진행했던 나이칸 치료를 경험했다. 나이칸 치료는 일본의 정토신종의 스님들이 자신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 사용하던 수행법을 1950년대에 한 스님이 심리 치료로 개발한 것이다.
나이칸 심리 치료에 참여하면, 먼저 법당의 한 모퉁이에 병풍을 두르고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만든다. 그 작은 공간에 반가부좌로 앉아서 하루를 보낸다. 이게 나이칸 치료의 시작이다. 뭘 하라는 지시도 없었다. 화장실 가는 일 말고는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었다. 철저하게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나는 고독과 적적함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오만 가지 불편한 감정과 생각이 떠올랐다. 저항이 일어나면서 짐을 싸서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번잡한 모든 생각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잠잠해지면서 자신과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튿날 나이칸 지도자는 감사의 마음에 관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며 집중적으로 성찰하게 했다.
내가 나이칸 치료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누구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성찰의 시간이었다. 옆에 아무도 없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분명 따분하고 불편한 시간이지만, 어느 순간 고요함과 함께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념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명상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명상의 방법이다. 명상을 통해 뭔가 대단한 것을 원하는 모종의 미묘한 욕구를 내려놓는 방법은 멍때리기처럼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명상이다.
생각에 꽂히면 오히려 다른 마음을 볼 수 없다
명상을 배우러 온 초심자들이 명상을 그만두는 이유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잘하려는 마음의 이면에는 뭔가 좋은 것을 얻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나이칸 치료와 멍때리기 활동에서는 이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 그냥 내버려 둔 채 숨만 쉬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것저것 지나가는 마음의 모습들을 간섭 없이 보게 된다.
유명한 명상 지도자 타라 브랙은 자신의 수련 시절을 회상하면서 뭔가를 얻으려고 애썼던 마음의 부작용에 대해 말한다. “명상을 수행하면서 나는 내 명상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자책했으며, 나 자신이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긴장하게 되었으며 현재의 순간에 감사할 줄 몰랐다.”
나이칸 지도자는 끊임없이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빗대어 다음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권한다.
부유한 후원자들이 잇큐 선사(일본의 유명한 선승 一休, 1394~1481)를 연회에 초대했다. 잇큐 스님이 연회에 도착했을 때, 그는 누추한 걸인의 옷차림이었다. 그를 알아보지 못한 주인은 그를 쫓아냈다.
잇큐 스님은 집에 가서 자색 비단 예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연회의 주인은 큰 존경심으로 그를 연회장으로 영접했다. 잇큐 스님은 자색 비단 예복을 벗어 방석 위에 살포시 놓으며 말했다. “당신이 조금 전에 이 옷을 초대하신 것이라고 분명히 보여주셨으니, 이 옷을 놓고 소승은 물러갑니다.” 스님은 점잖게 인사하고 연회장을 떠났다.
명상을 통해 무엇을 만나려고 하는가? 생각에 꽂혀 있으면, 오히려 다른 마음을 볼 수 없다. 마치 집 앞의 행인 중에서 어떤 이가 보살인가 눈이 빠지도록 찾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이는 환영하고 어떤 이는 내쫓는 꼴이 되어버린다. 위의 이야기에서 만약 연회의 주인이 누가 오든지 간에 상관없이 모든 오가는 이를 환영했다면, 잇큐 선사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명상 수련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구분하기 시작하면, 수행자는 점점 힘들어진다. 아마도 이런 부작용을 알기에 나이칸 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병풍으로 만든 작은 공간에 그냥 머물러 있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멍때리기는 명상을 수행하는 이에게도 도움을 주는 좋은 수행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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