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 가피 이야기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빚을 내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
1997년 한국 경제는 고성장을 거듭하다 외환 위기라는 급브레이크로 초유의 상황을 맞게 되고 그 충격으로 차기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는 최초의 사건이 발생한다.
나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상황이 아니라, 빚을 내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지경이면, 정상적으로는 방법이 없는 실질적 파산이 아닌가 말이다.
나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편안하고 순탄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픔이 많았고, 부처님의 가피로 이들 문제를 극복하며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논어』 「자한」 편에서, 태재는 공자를 가리켜 “공자는 성자인가? 어찌 그리 일에 능통한 것이 많은가?”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내가 젊었을 때 비천했기 때문에 능한 것이 많다”고 답했다. 요즘 말로 치면, 소년 가장이었던 공자가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보니 쓸데없는 것까지 능통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아픈 만큼 반드시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픈 만큼 다양성을 갖추게 되는 것은 100%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과 기적 같은 회복
내가 비구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 2002년 대학원을 다닐 곳이 없어서 아는 스님과 함께 울산에 포교원을 개원하기로 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학교 다니는 스님을 사찰이나 주지 스님들이 배려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해서 오늘날 나의 서원 중 하나는 ‘내가 형편이 되면, 대학원 다니는 스님들을 모실 고시원 같은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포교원 준비 과정에서, 갑자기 같이하기로 한 스님이 빠지며 일순간 문제가 복잡해졌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돼 형편이 녹록지 못한 상황에서, 졸지에 두 사람 몫을 감당해야 하니 순식간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빚을 내서 이자를 갚는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안 좋았는지, 언제나 최우선으로 학교를 생각하며 학업만은 유지했던 내가 이때는 휴학을 할 정도였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순식간에 5억이 되었는데, 이때 번개처럼 머리를 번쩍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건 ‘중국에서 단 한 과의 부처님 사리가 있다면 이것이다’라고 하는, 서안(장안) 법문사의 지골 사리, 즉 부처님 손가락뼈 사리를 참배하자는 것이었다. 1986년 탑의 절반이 갈라진 것을 수리하다 당나라 최고의 황실 사리가 발견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리는 당나라 황제도 30년에 한 번밖에 못 본다는, 재위 기간이 긴 황제만 친견할 수 있는 최고급 사리다.
이 지골 사리를 참배하고 빚을 갚아달라는 기도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당시는 형편이 안 좋았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경비를 마련하고, 사리 친견만을 기도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불과 2∼3m 거리에서 사리를 친견하고, 빚을 갚게 해달라며 기도를 했다. 간절한 기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부처님은 무심하지 않았다. 나의 간절함에 가피가 내렸음인지, 이후 보시가 넘치도록 들어왔다. 해서 어찌어찌 3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빚을 갚아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인지, 빚을 갚고 나니 우기의 스콜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보시가 줄었기 때문이다.
해서 다음에는 이제 쓸 것도 좀 만들어달라는 기도를 하기 위해, 다시금 법문사를 향했다. 나는 불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중국 불교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 보니 서안을 답사한 것이 7∼8차례나 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법문사도 여러 차례 참배했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단 한 번도 지골 사리를 친견할 수 없었다.
나에게 지골 사리는 딱 한 번 열렸던 영광이다. 그리고 그 가피를 타고 오늘날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아찔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바로 이런 때 필요한 것이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또 우리는 불보살님의 보호 속에서 행복한, 아니 최소한 불행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기도의 가피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기도의 꽃은 가피다. 그러나 가피는 인과율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기도가 성취되는 것도, 또 초심자라고 가피가 안 내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가피에는 원리가 없는 것일까? 불교는 기적의 종교가 아닌 인과법의 종교이지 않은가!
사실 가피가 내려 기도가 성취되는 것은 벼락을 맞는 것과 유사하다. 벼락은 언뜻 논리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벼락을 맞기 위해서는 비가 와서 대기가 불안정한 것이 좋다. 즉 마른하늘에 날벼락보다는 비 오는 날이 확률이 크다는 말씀. 이를 기도에 대입하면, 일반 가정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유서 깊은 명찰과 성지에서 기도하는 것이 기도 성취에 유리하다는 말이다. 갓바위나 홍련암 또는 오대산 월정사 같은 유명한 기도처는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 우리는 비 오는 날 등산을 할 때는 ‘금속 지팡이를 조심하라’는 말을 듣곤 한다. 벼락은 높은 곳과 금속을 타고 흐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도 성취에 대입해보면, ‘보다 간절하고 목적이 명료한 기도가 가피를 입을 확률이 커진다’고 할 수가 있겠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기도의 발원으로 ‘소원 성취’나 ‘가족 건강’과 같은 큰 범주의 막연한 내용을 적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기도가 잘 성취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도로에서,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지는 등 어떤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이때 당사자는 ‘도와달라’고 외치지만, 주위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않고 아웃사이더가 되어 주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와주는 것이 맞지만, 여러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특정한 누군가를 지목하며 ‘도와달라고’ 구체화하면, 지목받은 사람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는 군중 속에 가려지는 인간 심리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의 결과이기도 하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막연하기보다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또 단순하고 명료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사자도 집중이 잘되고, 목적도 분명해져 성취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 원리는 불교가 말하는 인과율에 어긋나지 않는다. 즉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기도 성취는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나의 행복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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