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깨달음의 길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음식에 스민 인간의 마음

『음식 중독』

마이클 모스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刊, 2023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지다
“이모, 나 이거 사 줘!” 편의점에 데려간 조카들이 고르는 간식들은 늘 젤리, 초콜릿, 탄산음료, 튀김과자 등등 자극적인 제품들이다. 아뿔싸, 어린 조카를 편의점에 데려간 내 잘못이 크다. 그러나 배고프다는 조카들에게 빨리 무언가를 사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편의점이다. 이렇게 도시인의 편의는 도시인의 건강을 압살한다. 나는 도리질하며 조카를 달랜다. “안 되겠다, 여긴 건강한 먹을거리가 없다. 우리 과일 사러 가자.” “싫어, 나 콜라랑 과자 먹을래! 배고파!” 이렇게 나는 쉽게 아이들의 유혹에 넘어간다. 조카를 위해 미리 과일을 사놓아도 조카들은 더 자극적인 음식, 중독적인 음식을 원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자극적인 음식으로 길들여 그 음식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마이클 모스의 『음식 중독』은 바로 그 자극적인 음식들의 생산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인간은 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음식의 재료들을 거대한 기업들이 관리하게 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음식을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기보다는 ‘기업’을 통해 상품의 형태로 소비하게 되었다. 음식을 통해 어릴 적의 감각 기억을 자극하고, 사람들을 음식에 중독시키는 식품 기업들은 점점 몸집을 불려 전 세계를 프렌차이즈화한다. 현대인은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서도 ‘친근한 프랜차이즈 음식’을 찾는다. 해외에 나가면 맥도날드가 가장 반갑다는 젊은이들도 많다. 햄버거, 피자, 콜라, 과자, 라면, 초콜릿, 사탕, 젤리 등등 전 세계적으로 ‘익숙한 브랜드’들이 많다. 우리는 해외여행을 가서도 친근한 브랜드의 식품을 찾고, 아이들이 떼를 쓰며 밥을 먹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인스턴트식품을 사 준다. 이런 강력한 자극에 중독되면 자연에서 채취한 음식들이 싱겁고, 맛없게 느껴진다.

가공식품은 뇌를 중독시킨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중독될 수 있는 모든 물질 가운데 뇌를 자극하는 데 음식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가공식품은 빠르게 생산되고, 빠르게 유통되고, 빠르게 소비됨으로써, 소비자들의 뇌를 더욱 빠르게 중독시킨다. 마트에서 빠르게 구매해, 빠르게 개봉하고, 전자레인지로 빠르게 데운 음식일수록, 뇌는 더욱 빨리 가공식품에 중독된다. 설탕과 지방이 따로 작용할 때보다 서로 결합했을 때 뇌를 더 자극한다. 튀김과자, 즉 일반적인 스낵에 들어 있는 지방은 전체 질량의 24%, 설탕은 무려 57%에 달한다. 핫도그나 스파게티, 빵, 냉동 치킨, 심지어 김밥에도 설탕이 들어간다. 설탕과 소금, 지방이 어우러져 음식의 중독성은 더욱 강력해진다. 더욱 무서운 것은 가공식품이 ‘몸’에 남기는 흔적만큼이나 음식이 우리 ‘마음’에 남기는 흔적이다. 사람들은 맥도날드에 ‘추억’이 있기에 더욱 자주 찾아가고, 맥도날드 음식이 편리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그 유해성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경우,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음식으로 위로받는 것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몸에 더 좋은 것’, 설탕과 지방과 인공감미료를 줄인 음식을 홍보하지만, 결국은 설탕, 소금, 기름이 만들어낸 중독의 복합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깨달음의 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일 뿐 아니라 삶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깨달음의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손쉬운 배달 앱으로 음식을 시켜 먹는 것보다는 야채와 과일을 하나하나 고르고 씻고 잘라서 샐러드를 해 먹는 것이 훨씬 오래 걸리지만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다. 느리게 조리하고, 느리게 먹을수록, 덜 자극적이고 더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을 정성껏 해 먹을수록, 내 몸과 내 삶을 돌볼 줄 아는 마음챙김의 능력 또한 극대화된다. 매일 해 먹는 것이 어렵다면 하루 한 끼라도 그렇게 ‘느리게 먹는 법’을 실천해보면 좋겠다. 나의 시간과 나의 정성을 쏟아 내 몸과 마음을 돌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미소를 챙길 수 있는 삶을 꿈꿔본다.

정여울
작가, KBS제1라디오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저서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문학이 필요한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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