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새벽 예불 기다리는
소종(小鐘)만큼만 되었으면
문태준
시인, 『BBS제주불교방송』 총괄국장
불교와 어머니
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내 어머니 덕분이다. 경북 금릉군 봉산면 태화2리에서 태어난 나는 어머니를 따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직지사의 말사인 용화사를 다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래 걸어 절에 이르러서는 어머니를 따라 석불 앞에서 절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어릴 적부터 찾아간 절은 관음 기도 도량이었고, 또 내가 절을 올린 부처님은 관음전에 계시는 석조관음보살입상이었다. 나는 아직도 선이 부드럽고 보기만 해도 성품이 인자해 보이는 이 부처님이 좋다. 시골집에 갈 적에는 이 용화사를 참배한다.
내 어머니께서는 틈이 날 때마다 관음 기도를 하신다. 아침에 일어난 그 자리에서나 밥을 짓는 아궁이 앞에서나 어디에서든 관음 정근 기도를 하신다. 불교대학을 다니신 적은 없지만, 절에서 나눠 준 기도집을 조석으로 들여다보곤 하신다.
내 졸시 가운데 「어머니는 찬 염주를 돌리며」가 있다. 시는 이러하다.
“어느날 어머니는 찬 염주를 돌리며 하염없이 앉아만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머리를 숙이고 해진 옷을 깁고 계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꽃, 우레, 풀벌레, 눈보라를 불러모아서. 죽은 할머니, 아픈 나, 멀리 사는 외숙을 불러모아서. 조용히 작은 천조각들을 잇대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어둠, 계곡 안개, 타는 불, 높은 별을 불러모아서. 나를 잠재울 적에 그러했듯이 어머니의 가슴께서 가늘고 기다란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슴벌레, 작은 새, 여덟 살 아이와 구순의 할머니, 마른 풀, 양떼와 초원, 사나운 이빨을 가진 짐승들이 모두 다 알아온 가장 단순한 노래를 읊조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는 찬 염주 속에 갇혀 어머니가 불러모은 것들을 차례로 돌고 돌다 명명(明明)한 겨울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는 염주를 돌리며 기도를 올리시는 어머니에 대해 쓴 시이다. 이 시에서 쓴 것처럼 나는 지금껏 어머니의 이러한 모습을 곁에서 보아왔다. 어머니의 기도는 “가장 단순한 노래”인데, 그 까닭은 어머니의 기도가 간절하고 순일하며, 또한 기도의 내용이 모든 생명 존재들이 염원하는 기도의 내용과 동일하기 때문이요, 아울러 어머니의 기도가 모든 생명 존재들의 안락과 행복을 축원하는 그 일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시작한 불교 공부
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므로 불교 공부를 문학을 통해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만해 스님의 시와 산문, 조지훈과 서정주의 시 등을 통해 불교를 이해했다. 요즘에 만해 스님의 시를 다시 읽으니 「고적한 밤」에서의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와 같은 시구와 시 「해당화」에서의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와 같은 시구에서 여전히 큰 감흥이 일어난다. 이규보의 불교시나 소동파의 시도 더러 읽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4학년 때인 1994년 겨울에 시인으로 등단을 했고, 이듬해 졸업을 했는데, 아버지께서 취업을 권유하셔서 불교방송에 입사 지원서를 내고 불교와 논술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출제된 불교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나는 『육조단경』의 말씀을 적어 냈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김인환 교수님으로부터 한 학기 동안 『육조단경』을 공부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불연을 꽃피운 불교방송
불교방송에 입사해서는 보다 깊게 불교를 공부할 수 있었다. <무명을 밝히고>, <경전공부>, <불교강좌>와 같은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법문을 듣고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기회가 많았고, 불교학자들과 스님들을 뵐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대 종교학과 윤원철 교수님과 중앙승가대 김상영 교수님을 진행자로 모시고 <무명을 밝히고>를 제작했던 그 시기는 지금 돌아보면 내게는 참으로 귀한 시간들이었다. 특히 김상영 교수님과 함께 설날 특집 대담을 위해 청화 스님, 천운 스님, 성수 스님, 도법 스님을 직접 찾아뵙고 법문을 들었을 때에는 환희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불교의 경전들과 선어록도 살펴보게 되었다.
불교시에 대한 공부도 함께하게 되었다. 뒤늦게 대학원에서 서정주 시편들에 드러나는 불교적 상상력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우리 시단의 현대 불교시를 폭넓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불교문예』의 편집주간을 맡아서 잡지를 출간했던 경험도 매우 유익했다. 이 일을 하면서 설악 무산 오현 큰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셨고, 스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시와 삶에서의 불교적 안목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2020년 여름부터 제주불교방송에서 근무하고 있다. 1996년에 불교방송에 입사를 했으니 적잖은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스님들을 뵈었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선래(善來)’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에는 반갑게 맞이함과 모심의 뜻이 담겨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불연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부처님과 부처님의 말씀과 스님들을 잘 모시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졸시 「새벽에 문득 깨어」에서 썼듯이 찬별이 돋는 새벽에 “법당 예불 기다리는 소종(小鐘)”만큼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삶도 시도 그만큼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했다.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아침은 생각한다』 등이 있다.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애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박인환상, 김광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제주불교방송』 총괄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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