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침 산책 속 선 수행

수행하는 공적 생활,
부처님을 만나다

김희옥
헌법적가치연구원 원장, 前 헌법재판소 재판관·동국대학교 총장


부처님 가르침의 체화(體化)
나의 고향 청도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좋은 절이 수다하다. 운문사, 대비사, 용천사 등 경내에 들어서기만 하면 신심이 절로 솟아오르는 부처님의 가르침 터전에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오르내리면서 부처님 법이 체화된 것이다. 어머니는 새벽에 절에 다니시고 불공을 올렸다. 오로지 가족과 자식을 중심에 두고 기원을 하셨던 것이 아닐까.

어릴 적 자라난 고향과 집안의 불교적 분위기는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자연스레 부처님 가르침을 신앙하는 쪽으로 정하여졌다.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동국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대학 생활 중에도 항시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입학하던 해인 1968년 5월 경 무애 서돈각 교수와 함께 봉은사에 계시던 법정(法頂) 스님을 찾아뵙게 되었는데, 그때 스님께서 “톱은 나무를 잘 썰어야 한다” 하신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그때 주위에 있던 어느 분이 나를 그해 동국대 수석 입학을 한 학생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그 무렵 대학 선원에서 탄허(呑虛) 스님의 『금강경』 강의가 한 달간 거의 매일 열린 일이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어느 날 홀연히 직접 부처님을 만나는 종교적 체험도 했었고, 삼보 법회에서 도선사의 청담(靑潭) 스님을 뵙고 마음 법문을 들으면서 큰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소위 고시 공부를 한답시고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해인사 홍제암, 청계사, 회암사, 유가사 등에 드나들면서 기거하는 과정에 항시 부처님 보살핌 안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공직을 맡아 검사로 전국 각급 검찰청에 근무하면서 주말에는 아내 평등성과 함께 주변의 사찰에 가서 수행하고 스님들 말씀 듣는 일이 많았다. 특히 통영검찰청에 2년 정도 근무하면서 용화사에 계시던 일각(一覺) 회광승찬(廻光僧讚) 스님을 뵙고 참 많은 공부를 했고, 스님께서 송광사 방장 스님으로 가시고 필자는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뒤에도 일생을 두고 가르침을 받아 새기고 있다. 1996년 스님의 원적 부음을 듣고 바로 송광사로 내려갔건만 조계산의 새소리, 솔밭에 이는 바람소리만 듣고 올라왔다. 스님께서 나에게 주신 법명 불이(不二)만 남아 있다.

1998년 평택검찰청 청장으로 근무할 무렵, 오래전부터 가르침을 주고 계셨던 오현(五鉉) 무산(霧山) 스님께서 당래(當來)라는 법명을 주시고, “검사 그거 할 만하나. 걸릴 것이 뭐가 있노. 무섭게 해라” 하시던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35년간 검찰·법무부·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의 법조 공직에만 있던 사람이 시절인연인지 갑자기 종립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 무렵 오현 스님께서 ‘만해사업 실천선양회’에서 주관하던 만해마을을 교육·연구용으로 동국대에 기증해주셨다. 총장을 신뢰하니까 보다 더 필요한 동국대에 준다고 말씀하셨다.

2018년 5월, 지리산 산행 중에 스님의 원적 부음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온 사방이 홀연히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고, 바로 설악산 신흥사로 올라왔지만, 설악산 계곡의 물소리만 들렸다.

상행삼매(常行三昧)
당나라 때의 선승 현각(玄覺)은 「증도가」에서 ‘움직여도 선, 앉아도 선이니 어묵동정에 편안함이라(行亦禪 坐亦禪 語默動靜 體安然)’고 깨닫는 내용을 표현했다.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히 있는 그 모두가 선 수행이 아닌 것이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선은 있었고, 보리달마(Bodhi Dharma)가 남인도 향지국 칸치푸람에서 동(東)으로 오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선은 있었다. 육조 혜능(慧能)은 선을 식심견성 내외명철(識心見性 內外明徹)이라고 하며, 모든 법(dharma)이 자신의 마음 한가운데 있으니 마음을 알아 성품을 바로 보면 구름처럼 덮인 어둠이 걷히고 지혜의 바람으로 안팎이 사무쳐 밝아진다고 했다.

선은 바로 정(定)이므로 좌선이 효과적인 선택일 것이지만, 이 정은 자세나 행의 정은 아니므로 어묵동정이 모두 선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좌중의 선이 좌선이고 행중, 즉 움직임 중에 이루어지는 선을 상행삼매라고 한다. 삼매(samadhi)는 역시 정(定), 정수(正受)의 뜻으로 선일 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의 깨달음을 얻은 35세에서 열반에 이르는 80세까지 천하를 걷는 일 속에서 그의 불교를 완성하고 인류를 구했다(on the road). 그리스 시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도 소요와 산책에서 학문을 이루었고, 루소와 니체·키르케고르의 철학도 걷는 일 안에서 나왔다. 공자는 그의 천하 주유·산책을 72년에서 딱 멈추고 떠났다.

나는 감히 아침 산책을 상행삼매, 즉 선수(禪修)라고 생각하고, 거의 매일 새벽에 집을 나선다. 30대 초반 젊은 검사로 지방에서 근무한 시절부터 시작해서, 70대 중반을 내다보는 오늘까지 아침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거주지의 여건이 좋을 때에는 부근의 절 법당까지 이르러 잠시 앉아서 마음을 고르고, 다시 걷기를 계속한다. 이것이 나의 불교 수행이고, 선 수행이다. 근간에는 집이 봉은사 부근에 있어서 더욱 아침 산책·법당·선 수행이 저절로 잘 이루어진다.

아침(새벽) 산책을 마칠 무렵이면 떠오르는 햇빛은 무량광(無量光)·무량수(無量壽)의 상징처럼 내리비치고, 온 대지는 밝아오면서 우리 사회는 사람 사는 터전으로 돌아온다. 그 속에 나의 선 수행이 있는 것이다.

무량광·무량수로 상징되는 ‘Amitabha·Amitayus’의 햇빛은 새벽에 반드시 비추게 되고, 힘차고 내면이 뒷받침되는 나의 걸음걸이는 선, 즉 식심견성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러한 불교 수행이 나의 공·사적 생활을 보다 명확하고 보다 명철하게 들여다보고 어둠을 걷어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의 상행삼매는 오늘도 계속된다.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사는 기쁨
인도의 브라만교에서는 사람의 일생을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바로 학습기(學習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와 그 후의 유행기(遊行期)다. 50세 정도까지는 공부와 사회 활동·가족 돌보는 일을 하고, 그 후에는 숲에서 개인의 수행을 하고, 천하 산책을 하면서 일생을 마감하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임서기도 지나고 유행기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임서기·유행기처럼 계속 걸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원칙으로 구체적 기본권으로 종교 신앙의 자유·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자유롭게 걸림 없이 산책·수행할 수 있는 좋은 사회에 우리는 부처님 법을 새기면서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이 지닌 헌법적 가치 속에 부처님을 만나서 모시고 수행하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사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

연기(緣起)의 옷을 벗을 무렵에는 빛이 사라지고 사위가 어두컴컴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이처럼 계속 걸어가겠지만, 언젠가는 그 어두컴컴하고 어쩌면 깜깜하다고 하는 동굴에 다다르겠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보다 더 빛을 다오, 빛을(Mehr Licht !)…!’이라고 하면서 훌쩍 떠나겠지. 그때까지는 나의 걸음·산책, 즉 상행삼매는 실증적 또는 관행적으로 지속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부처님을 만나는 불자의 생활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상행삼매 수행을 계속한다.

김희옥
동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인도 힌두스탄대학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법무부 차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동국대학교 총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헌법적가치연구원 원장 겸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판례형법』, 『판례형사소송법』, 『형사소송법연구』, 『주석 형사소송법』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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