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서로가 서로의
‘보살’임을
깨달아 아는 일
통곡조차 힘겨운 시절입니다.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살 만한’ 힘이 있을 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마저 힘들 때 우리들이 부르는 이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아픔을 낱낱이 살피는 보살입니다. 그래서 ‘관세음(觀世音)’입니다.
강화읍 외포리 포구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석모도 선착장입니다. 이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석모도를 에돌아 남서쪽 가운데쯤에 이르면 ‘보문사’ 일주문이 활짝 반겨줍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코방아를 찧을 듯 가파른 길입니다. 큰 파도처럼 솟구치던 길이 다하면, 낙가산(267m) 서쪽 자락이 가쁜 숨을 편안하게 안아줍니다. 관세음보살의 품입니다. 그 품에 안기기 전,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몸을 돌려 세워야 합니다. 바다를 보면 비로소 왜 이곳에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머물고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입지의 절이 셋 있는데 이곳 서해의 보문사와 함께 남해금산의 보리암, 동해 오봉산의 낙산사가 그곳입니다. 이를 아울러 삼대 관음기도 도량이라 합니다.
보문사의 창건주와 창건 시기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 스님이 창건했다고 합니다. 금강산 보덕굴에서 수행하던 회정 스님이 이곳으로 와서 보문사를 개창하고 산 이름을 ‘낙가(落迦)’라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갖가지 모습으로 화현해 중생을 구하는 것을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관세음보살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선남자야, 만약 무량 백천만억 중생이 있어 온갖 고뇌를 받는다 해도, 관세음보살이 있음을 알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알아듣고 모두를 고뇌에서 풀려나게 하느니라.”(『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관세음보살님은 선재동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생각하거나, 나의 이름을 부르거나, 나의 몸을 보는 이들의 고통을 여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위없는 깨달음을 발하게 하여 영원히 물러서지 않게 할 것이다.”(『화엄경』 「입법계품」)
우리 모두는 부족한 존재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세상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진정 관세음보살을 본다는 것은,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보살’임을 깨닫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그것이 기도이겠지요. 우리가 보문사를 찾는 이유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사진│우태하(항공사진가), 글│윤제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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