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탄생 시
찬탄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지다
비람강생상도(毘藍降生相圖)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올해는 불기 2567년이다. 그런데 불기는 예수의 탄생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서기와 달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것을 기준으로 한다. 즉 2567년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때라는 말씀. 이는 544+79를 한 기원전 623년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통도사 <비람강생상도>에는 놀랍게도 탄생을 “주나라 소왕 24(B.C.972)년 갑인 4월 초 8일”로 적고 있다. 어라! 이게 뭐지?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던 초기, 불교는 중국의 전통 종교인 도교와 충돌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실로 유례가 없는 유치한 논쟁이 촉발된다. 그건 ‘붓다와 도교의 시조 격인 노자 중 누가 연배가 높냐는 것’이다. 이게 뭔 소용인가 싶지만, 연장자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서 이 논쟁은 의외로 중요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은데, 더 놀라운 건 이런 논쟁이 불교가 확대되던 2C∼7C에 걸쳐 무려 500여 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이 지라시급 주장들은 불교가 안정된 후에는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의 탄생이 기원전 972년이라는 주장은 1956년 제4차 불교도대회가 열릴 때까지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로 유지된다. 이렇다 보니, 1775년에 제작된 통도사 <비람강생상도>에는 이런 다소 황당한 기록이 존재하는 것이다.
통도사 <비람강생상도>는 ① 우측 상단에서 시작된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 일행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친정인 콜리국으로 가서 해산하려던 도중 갑자기 산통을 느껴 급히 룸비니 동산에 산실을 설치하게 된다. 이때 마야부인이 선 채로 무우수 가지를 잡자, 붓다는 부인의 우측 옆구리로 까꿍 하며 탄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생아가 걸어 나오는 방식으로 그린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붓다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나오면 마야부인은 그 고통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마야부인에게도 방법은 있다. 마야부인에게는 무우수, 즉 ‘근심 없는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무우수란, 부처님께서 어머니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않고 태어났다는 상징적 의미다.
마야부인의 위쪽을 보면, 하늘에 북·장구·비파 등의 악기가 둥둥 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붓다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에 찬탄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졌음을 나타낸다. 흐르는 듯한 악기의 모습들 속에서 붓다 탄생의 위대함이 들리는 듯하다.
② 상단의 좌측으로 넘어가면, 가부좌한 아기 부처님의 머리 위로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씻겨드리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구룡토수(九龍吐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색색의 용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또 가부좌한 아이의 아래로 작은 용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부처님오신날 사찰에서 사용하던 관욕대다. 즉 조선 시대 사찰의 한 풍경이 부처님 탄생 그림의 순간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통도사 성보박물관에는 이와 유사한 모습의 관욕대가 있어 대비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구룡토수의 아래에는 두 폭의 밭 같은 묘사가 있다. 옆에는 글씨가 있는데, “온정자출(溫井自出), 냉정자출(冷井自出)”이다. 해석하면 따뜻한 물과 찬물이 저절로 솟구쳤다는 의미다. 즉 온수와 냉수라는 말씀.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태내의 이물질을 씻어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나타내는 것이 온수와 냉수다. 그리고 이것이 상징화되는 측면이 구룡토수다. 즉 통도사 <비람강생상도>에는 사실과 윤색된 상징 표현이 위아래로 존재하는 것이다.
③ 그림의 중앙에는 정수리로 강렬한 직선의 오색 광명을 뿜어내는 탄생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고 헐벗은 상태로 묘사되어 있지만, 포스만은 남달라서 그림 전체를 압도하며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통도사 <비람강생상도>에는 “목욕을 막 마치자 주변을 일곱 걸음 걸으셨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고는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도다.’” 실제로 그림을 보면, 천지불 주위로 사각형의 연꽃 틀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훼손되기는 했지만, 일곱 개의 연꽃이 사방에 배치된 모습이다. 이는 일곱 걸음을 걸을 때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받쳤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또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오른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인도의 문화 전통이나 『태자서응본기경』 권상·『이출보살본기경』 권1·『과거현재인과경』 권1을 보면,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맞다. 이는 좌측을 강조하는 동아시아 문화의 특징이 반영되어 변형된 측면이라고 하겠다.
④ 좌측 아래에는 탄생한 붓다를 가마에 모시고 왕궁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행렬의 맨 앞에는 선도하는 깃발과 향로를 들고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길의 더러움을 향으로 맑혀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또 악대의 모습도 목도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마 안의 신생아가 붉은 옷을 입고 머리를 딴(종종머리) 채 점잖은 자세로 앉아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이는 계속 누드를 유지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⑤ 마지막 우측 아래에는 부왕인 정반왕의 궁전으로 어린 붓다가 옮겨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흥미롭게도 쟁반에 받쳐져 정반왕에게 가는 형태가 등장한다. 이때 밖에서 아시타 선인이 와서, 태자는 ‘왕이 되면 대제국을 건설하는 전륜성왕이 되거나, 출가하면 붓다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모습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또 부처님 생애의 한 페이지가, 한 폭의 그림으로 승화되어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에서 총 여섯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60여 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1 댓글
비람강생상도를 스크린샷 후 확대해서 보니까 잘보이네요 ^^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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