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비와 수미선사비 | 문화재의 시선으로 보는 절집 이야기

적거나 남기지 마라,
때가 되면 봄처럼 깨어난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

월출산 전경

달이 떠오르는 산에 푸른 사자가 산다
- 영암 월출산(靈岩 月出山)
내 등 뒤에는 거대한 푸른 사자 한 마리가 산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그 갈퀴 하나하나에 수많은 전설과 영험함을 숨기고, 겨울이면 새벽마다 추운 콧김을 내뿜는 맹수.

푸른 사자의 이름은 ‘달이 뜨는 산 - 월출산’이다. 내 나이가 370세쯤 되었는데, 듣자 하니 저 푸른 사자의 나이는 셀 수도 없다 하더라.

궁금할 테니 먼저 내 소개를 하자면, 나는 영암 도갑사의 가장 안쪽에 사람들 발길 드문 곳, 부도전과 도선국사비각에 있는 비석이다.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수미선사비(보물)’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국가의 보물이라니 어깨가 으쓱하다. 숭유억불 정책이 만연하던 조선 시대에 무려 18년 동안이나 돌을 깎아 나를 비석으로 만들었으니(1655년) 현대의 사람들은 내가 그냥 글자 새긴 바위가 아니라, 수백 년 가치를 지닌 역사적 유물로 보았을 것이다.

전라도 갑 중의 갑, 도갑사 탄생의 비밀
전라도에는 세 개의 ‘갑(甲, 으뜸)’이라 불리는 사찰이 있다. 영광의 불갑사(佛甲寺), 무안의 원갑사(圓甲寺), 그리고 내가 있는 영암의 도갑사(道岬寺)다. 그중 으뜸으로 불리는 절집이 내가 있는 도갑사인데, 천 년 넘은 역사에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많은 이유도 있지만 내 생각엔 신라 시대 큰스님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 때문인 듯하다. 그가 880년(신라 헌강왕 6년) 54세 되던 해에 월출산에 도갑사를 창건한 이후 월출산은 무려 규모 966칸, 승려 780여 명이 수행하는 대가람을 이루기도 했다 하니, 으뜸으로 불릴 만하지 않은가.
구림마을 전경

냇가의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은 처녀
신비로운 것은 2200여 년 된 저 아래 구림마을 처녀의 몸에서 도선국사가 태어났는데, 그때부터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 자를 써서 ‘비둘기가 숲을 이룬 마을-구림마을’로 불린다는 것이다.

신라 말기, 구림마을의 최씨 처녀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물에 떠내려온 오이를 건져 먹었다. 그리고 열 달 후 아들을 낳았다. 최씨의 부모는 소문이 두렵고 부끄러워 딸이 모르게 아기를 집에서 떨어진 커다란 바위 아래에 버렸다. 최씨 처녀는 울며불며 시름하다가 며칠 후 도주해 바위 아래에 가보니 놀라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비둘기들이 날개를 펼쳐 추위를 막아주고, 숲을 이루어 아기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보호한 그 비범한 아기는 15년 후에 화엄사(華嚴寺)에서 출가하고, 깨달음을 얻어, 무설설 무법법(無說說 無法法)의 법문과 음양풍수설, 비보풍수설의 대가가 된다. 그가 바로 영암 도갑사를 창건한 큰스님 도선국사다.

도갑사 가장 맑은 기운… 그곳에 그들이 있다
비석인 내가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지 궁금할 것이다. 도갑사의 가장 깊은 곳에 서 있어도 370년쯤 있다 보면 친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수령 600년 된 도갑사 팽나무, 고려 시대 주심포를 품고 조선 시대 건축양식을 지닌 도갑사 해탈문(국보), 두 번이나 도둑맞을 뻔했지만 신묘하게 되돌아온 해탈문 안쪽 금강역사와 보현동자(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 보물, 조선), 그리고 대웅전을 향해 일편단심 서 있는 오층석탑(영암 도갑사 오층석탑, 보물, 고려) 등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중에 가장 오랫동안 곁에 있어준 분은 고려 시대 이곳에 자리 잡은 미륵전의 ‘영암 도갑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고려)’이다.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온 사람, 여래(如來).

철없던 시절에 내가 ‘명색이 도선국사와 수미선사의 이름이 깃든 비석인데 그분들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을 때에도, 도톰한 눈두덩이, 덤덤하게 다문 입술로 지그시 미소 지으며 답해주시던 여래가 나에겐 꽤 많이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여래 못지않게 도갑사의 가장 맑은 기운 모인 곳에 그들이 있다.

부도전 승탑밭 보이지 않는 곳에 묻힌 이름 없는 승려들. 나는 늘 그들이 왜 이름을 남기지 않았는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듯도 하다. 보름달이 뜬 백 년 전쯤의 어느 날, 귓전을 울리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바람 소리처럼, 허밍처럼 들려서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거나 남기지 마라. 그저 어느 단어가 마음에 남아 싹을 틔우고 때가 되면 봄처럼 깨어나니… 말 없는 것이 말이고(無說之說) 법이 없는 것이 법이다(無法之法)” - 도선국사

달이었을까, 푸른 사자였을까, 도선국사였을까, 수미선사였을까, 이름 모를 승려였을까.

글|정진희
방송작가, KBS <다큐온>, <다큐공감>, <체인지업 도시탈출>, EBS <요리비전>, <하나뿐인 지구>, <희망풍경>, MBC <다큐프라임>, JTBC <다큐플러스> 등에서 일했고,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을 출간했다.

사진|마인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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