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4경 중 하나 모악춘경, 김제 모악산 금산사

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

꽃비
미륵부처님 

김제 모악산 금산사


김제 만경평야. 이 고장 사람들의 말로 ‘징게 맹게 외배미들’이라 불리는 평야의 한 귀퉁이를 걸은 적이 있습니다. 초겨울 밤이었고, 열나흘 달빛이 빈 들판에 가득했습니다. 한참을 걸어도 제자리를 맴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너른 들과 넉넉한 달빛 때문이었겠지요.


새만금을 등 뒤에 두고 먼 하늘을 바라보자 커다랗고 둥근 산이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처럼 보였습니다. 모악산(母岳山, 794m)이었습니다. 해발 20m만 돼도 어엿한 산 대접을 받는 곳에서 그 높이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능히 우리나라 최대의 곳간을 품에 안을 만했습니다. 어머니 산이었습니다.


금산사는 모악산의 동쪽 자락에 있습니다. 「금산사 사적기」에 따르면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절의 면모를 일신한 것은 진표 율사의 중창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그 내력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나이 열두 살에 금산사의 숭제 스님 문하로 출가한 진표 율사는 변산의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망신참법(亡身懺法)의 수행으로 지장보살을 뵙고 정계(淨戒)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뜻은 ‘미륵보살’에 있었으므로 변산의 영산사로 옮겨 가서 처음과 같이 용맹정진했습니다. 마침내 미륵보살이 나타나 스님에게 간자 189개를 주면서 “너는 이것으로써 세상에 법을 전하고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아라” 했습니다. 스님은 금산사로 돌아와 미륵전을 세우고 미륵장륙상을 모셨습니다. 이로써 금산사는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이 되었습니다.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은 금산사의 신앙 정체성과 역사의 상징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현재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 깁고 다듬은 것입니다.

다들 알 듯이 미륵불은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후 56억 7,000만 년 후에 우리에게 오신다는 부처님입니다. 지구가 태어난 때보다 더 아득한 그 시간은 사실 추상적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곧이곧대로 그 시간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미륵은 ‘큰 자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미륵불을 애타게 찾은 때는 격변기였습니다. 미륵을 자처하며 혹세무민하는 이들이 등장한 때도 그런 시기였습니다. 어찌 됐건 우리에게 미륵은 힘겨운 세상을 건네주는 뗏목이었습니다.


모악산의 봄 풍경은 ‘모악춘경(母岳春景)’이라 해 호남4경의 하나로 일컬어집니다. 봄이 부풀어 오르는 이 계절, 금산사 마당에도 꽃비가 내리겠지요. 그 비를 맞게 된다면, 미륵부처님의 손길인 양 여길 일입니다.

사진│우태하(항공사진가), 글│윤제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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